서가를 뚫어져라 보다가 커다란 공에 있던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서가를 이곳저곳을 보다가 그 검은색 빈칸 뒤편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벽지를 조금 뜯어내니 뭔가 열 수 있는 열쇠 구멍이 나타났다. 수한은 그 구멍에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밀어 넣었다.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커다랗고 납작한 물건을 꺼내야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꿈쩍도 하지 않는 서가 때문에 책을 다 내려놓고 움직여야 하나 생각을 했다.
책을 옮기려고 서가에 빼려고 하니 서가가 스르르 옆으로 조금 움직였다. 책을 뺐던 것을 카펫 아래에 놓고는 더 밀어보았다. 조금 밀리다가 딱 막혔다. 그래도 서가 뒤쪽으로 떨어졌던 납작하고 큰 물건을 수한이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되었다. 양장판 문고의 두 배 되는 가로길이로 가죽으로 만든 서류 가방으로 시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어 보였다. 공기도 통하지 않는 곳에 있었던 것치고는 좀이 슬거나 곰팡이가 피지 않고 멀쩡했다. 서류를 보관하는 부분이 끝부분이 덮개처럼 연결이 되어 있었다. 덮개를 덮고 나면 덮개 부분 끝에 동그랗게 달린 핀과 서류 보관 부분의 핀을 엇갈려가며 팔 자를 그리며 한 번씩 풀어내는 방식으로 묶여 있었다. 그걸 다 풀어내고 안쪽에서 서류를 꺼냈다.
서류를 하나씩 넘겨 훑어보다가 수한은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글씨 담긴 종이와 자신에게도 문제 해법을 넘겨준 삐뚤빼뚤 글씨가 담긴 종이가 번갈아 가며 있었다. 한참을 보다 보니 결국 아버지도 수한처럼 꿈의 기전을 밝혀내려고 했던 것은 같았다. 아버지의 접근법은 수한과는 달랐고 그 삐뚤빼뚤이가 제시하는 답도 달랐지만, 결국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다.
마지막 5단계라고 생각했던 수한과는 달리 아버지는 또 다른 단계가 있다는 걸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종이에서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한 삐뚤빼뚤이의 답은 없었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한이 아끼던 커다란 공의 보관함 안에 뭔가 있었다. 그것을 처음 봤을 때는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열쇠와 같이 넣었던 주머니를 뒤졌다. 비어 있는 주머니만 손이 휘젓고 있었다.
뒤쪽으로 빠진 서류 가방을 찾느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주머니에서 빠졌을지도 모르고 아까 서가를 움직이려고 열쇠를 꺼내다가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카펫 아래 내려놓은 책들 사이사이를 살폈다. 책 한 권 한 권 들춰가며 톺아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종이에 대한 해답을 삐뚤빼뚤이는 해주었는데, 아버지는 그걸 알지 못했나 생각했다.
한참을 찾다가 이내 없어진 것을 알고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종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꿈의 과학적 기전을 이미 몇십 년 전에 알고 있었으면서 왜 발표를 하지 않았을까? ‘의식은 어디서 올까?’란 마지막 문제제기는 또 뭘 알아내려고 했던 것일까?’
병원 의사와 간호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으로 와서는 아버지와 연결된 고리를 찾느라 땀도 흘리고 집중했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몸이 까라지더니 눈이 스르륵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