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숨소설] 타밈 8화

by 연이

“아빠!”


수한은 아들의 부르는 소리에 놀라 깨었다. 6살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이 자신을 쳐다보며 얘기를 더 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아빠의 얘기를 들으며 뭔가 적고 있는 것를 보면서 수한은 열심히 자신이 연구한 것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자신의 아버지가 제기한 문제를 과학적 논리를 덧붙여 설명했다. 아들이 씩 하고 웃더니 뭔가 생각이 났는지 적기 시작했다. 한참을 적더니 메모를 아빠에게 내밀고는 엄마한테 간다며 사라졌다.

바지직 소리와 함께 수한은 허리 쪽에 고통을 느끼며 깨었다. 자신의 허리 쪽으로 손을 넣어 으스러진 것을 꺼냈다. 커다란 공 모양 보관함을 아까 열고는 반쪽을 카펫에 놓았는데, 가라진 몸이 이쪽저쪽 뒤척이면서 부순 모양이었다. 눈을 떠보니 이미 어두워져 달빛 어슴푸레 서가를 비추고 있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카펫에 늘어놓은 서류들이 조금씩 흔들거렸다. 가죽 서류 가방에 차례대로 챙겨서 넣고는 가죽 덮개를 덮었다.


자신이 잠들기 전에 찾지 못했던 종이가 어딘가 있을 텐데 찾지 못했다. 달빛에 비친 서가가 반쯤 열린 벽면을 보니 낮에는 보이지 않던 형상이 보였다. 므네모시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이 그려져 있었다. 강렬한 햇빛에 비칠 때는 잘 알 수 없었는데, 서가의 뒤쪽 벽지는 달빛에 비치니 다른 곳과 달랐다. 더 밝다고 해야 하나... 아까 가죽 서류 가방이 있던 곳에 종이 한 장이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으로 살짝살짝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다 챙겼는데, 챙기지 못한 종이라면 자신이 찾지 못했던 종이가 아닐까 하여 손을 뻗어 잡으려 했다.


종이를 집다가 뭔가 벽지 뒤쪽에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톡 눌러보니 쑥 들어가면서 찢어졌다. 서가를 밀 수 있는 부분까지 최대한 밀고는 서가 뒤쪽 벽지를 더듬더듬하여 들어가는 부분의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다 뜯어내고 나니 문이 있었다. 바깥에서만 열쇠로 열 수 있고 안에서는 잠글 수 없고 열 수도 없는 문이었다. 문에 돌려진 열쇠를 살짝 잡아 문을 열었다.


원래 서가는 두 개의 서가로 되어 있고 가운데를 축으로 동그랗게 돌아가는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까 열쇠 구멍은 서가가 돌아가게 하는 자물쇠이자 서가 뒤쪽에 있는 방으로 연결된 문의 열쇠 구멍이기도 했다. 서가가 동그랗게 돌아가면서 문은 앞쪽으로 돌출되기 시작했다. 수한을 감싸고는 서가가 벽처럼 되고 아까 그 문이 돌출되면서 마름모꼴 모양의 갖춘 방이 되었다. 뭔가 작동하기 시작한 방은 빨간색에 파란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려 수한은 문을 밀었지만, 안에서는 절대 열 수 없었다. 수한은 마지막 잡은 종이를 하얀색 불빛으로 읽어보려 했지만 손도 다리도 하얘지고 몸도 하얘지더니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눈이 감겼다.


아버지의 서재다.


며칠 밤을 새웠는지 모를 아버지는 눈이 퀭하고 몸이 말라 더 초췌해져 보였다. 그냥 밀랍인형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상태에서도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연필을 입에 물고 머리를 갸웃갸웃하면서 뭔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화이트보드로 가서 뭔가 적고는 다시 종이를 보며 무릎을 탁 치며 칠판에 가서 다시 뭔가를 적어 넣었다.


어린 수한은 그게 참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버지 졸졸 따라다니며 그것을 보기도 하고 주위에 있던 책들을 집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아버지가 써놓은 흐릿한 화이트보드와 칠판의 수식과 그림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서재의 책들은 이제 더 이상 수한에게는 재미가 없었다. 아버지는 뭔가를 적고는 수척해진 몸을 카펫에 뉘었다. 수한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재미난 뭔가를 발견했는지 초롱초롱해진 눈은 그걸 빤히 쳐다봤다. 종이에 삐뚤빼뚤 쓰기 시작했다. 아빠는 5개의 문제를 내고 사라졌다. 수한의 여섯 번째 모닥불 생일 파티를 해주고 행방을 감췄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는 울고 있었고, 아빠는 그 이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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