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없다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서재의 암막 커튼이 활짝 제쳐지면서 커다란 눈이 아버지와 수한을 발견하고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유리창을 깨부쉈다. 커다란 눈은 아버지를 단숨에 삼켜버리곤 수한에게 달려들었다. 꿈에서 한 것처럼 숨을 참기 위해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자신의 코앞까지 달려든 눈은 자신의 방향을 서서히 돌리더니 하늘로 사라졌다.
의식의 세계는 아주 작았다. 그리고 아주 넓었다. 아니 정확히는 측정할 수 없었다. 작다고 생각하면 작고, 크다고 생각하면 컸다. 현실 세계에서는 둘 중 하나만 존재하지만, 의식의 세계는 현실 세계의 이분법적으로 특정 지워지지 않았다. 의식의 세계 중앙의 의식의 탑은 하얀 탑으로 수식이 가득했다. 의식의 탑 주변을 반짝반짝한 소용돌이가 올라가고 있었다. 단순한 소용돌이인 줄 알았지만, 수억만 개의 수식들이 하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수한은 넋 놓고 보고 있다가 의식의 탑 문에 다다랐다. 커다란 눈이 지키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말한 문은 없었다.
자신의 꿈속에서 쫓아다니던 커다란 눈과 똑같이 생긴 것이 탑 중앙의 문을 지키고 있었다. 문에 적힌 수식은 단 줄이었다. 수한은 적힌 수식의 의미를 이미 여기로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도망갈 수 없었다. 수한은 커다란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커다란 눈은 수한의 생각과 의지를 읽었는지 커다란 입으로 바뀌더니 수한의 머리를 댕강 잘라 삼켜버렸다. 그 순간 수한의 머리와 분리된 몸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수한의 의식은 수억만 개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탑 안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의식의 탑 중앙을 지키던 눈보다 100배나 더 커다란 눈으로 수억만 개의 수식이 흘러들어 갔다. 수한의 의식이 더 커다란 눈에 다다르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뱉어냈다. 하얀색 작은 원형의 수한의 의식을 커다란 눈은 흥미가 생겼는지 수억만 개의 수식 중 일부를 수한의 의식에 흘려보냈다. 수한은 갑자기 들어온 엄청난 수식으로 부르르 떨었다. 의식의 세계에서 고통은 현실 세계의 고통과는 달랐다. 자기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그 고통의 근원이었다. 커졌던 원형은 줄어들면서 고통도 점점 약해졌다. 수한은 더 커다란 눈앞에 둥둥 떠 있었다.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이곳에서 조금 있었으면 알 텐데, 이름이 필요한가? 자네가 온 현실 세계에서 ‘타밈’이라 부를지 모르지.”
의식의 세계에서는 굳이 말이란 자체가 없이 그저 생각만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하기야 의식의 세계에서 굳이 이름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타밈이란 존재와 대화를 하는 그런 존재가 또 있을까?’
이름이란 다른 누군가가 나를 부를 때 존재하는 것인데, 자신을 불러줄 다른 누군가가 없는 이곳에서 이름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더 커다란 눈은 자신에 대해 ‘타밈’이라 현실 세계에서 부를지 모른다고 했다. ‘완전무결함’을 뜻하는 히브리어라는 것은 아버지의 서재의 어느 한 서적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수한은 의식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관장하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자신 앞에 있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기보다 마음이 편했다. 어쩌면 과학자라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존재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고 있지요?”
수한은 타밈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알고 있다. 너의 처리를 어떻게 할지도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타밈은 흥미로웠는지 수한의 의지를 받아들였다.
타밈은 수한의 의식에 조금씩 수식의 흐름을 넣기 시작했다. 수식을 풀어내며 동화되어 원형의 크기가 점점 커져 갔다. 수한의 의식은 점점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움이 극에 달하자 떨림은 수한의 의식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타밈은 다시 수식을 흘려보내며 수한의 의식의 끝을 준비했다. 떨림이 최대로 증가하다 의식의 탑 내부로 튕기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튕기면서 수한의 의식은 결국 먼지처럼 사라졌다. 타밈은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수억만 개의 수식을 빨아들여 처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