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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Oct 08. 2021

[교행일기] #70. 빗금 체크

빗금 체크


연이는 벌써 몇 번째 결재 올린 것을 취소하는지 모르겠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집중력이 떨어졌나? 그건 아니다. 지금은 연이의 뇌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오전 시간이고 앞으로 점심을 먹기 전까지 3시간 더 쌩쌩하게 돌아가야 할 타이밍인데, 첫 번째 실장의 지적받은 결재가 벌써 세 번째 다시 올리고 있었다. 연이는 잠시 결재를 올리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공간 같은 업무를 하면서 발생한 실수는 잠시 다른 곳에서 생각을 하면 해결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연이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자주 깨져봤으니까.


깊은 산속에서 계곡을 따라 흐르는 졸졸거리는 물소리, 풍성한 나뭇잎을 가진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며 나는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확 터진 곳에서 불어오는 싱그럽고 깨끗한 향을 가진 바람 향이 연이에게는 필요했다. 마음의 안정. 이런 도시에서는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래서 연이만의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 곳을 학교에 마련했다. 그곳이 꽃이 피던 화단이었고, 등나무였고, 수업이 모두 끝난 운동장을 바라볼 수 있는 차양막 쳐진 아래에서 두 번째 계단이었다. 나름의 규칙을 정하면 모두 연이의 생각 의자가 되었다.


생각하는 곳에 가서 큰 심호흡을 두 어번 한 후 자꾸 틀리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처음과 다르게 같은 실수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그 이유가 연이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했다. 집안의 문제나 잠을 못 자지도 않았고, 점심을 많이 먹고 졸린 오후의 시간도 아니었다. 생각을 더듬어 봤다.


그래, 조금 평소보다 더웠다. 인디언 써머일 수도 있으니 더운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실수의 결정적인 이유는 되지 못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그러다 몽당연필이 생각이 났다. 그래. 한동안 빗금 체크를 하지 않고 손으로 짚어가며 일을 했다. 그게 더 빠르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연이의 판단 착오로 지금 결재 3번으로 귀결이 되니 타당성이 명백했다. 결재를 올리는 순간마다 전화가 왔고, 전화를 끊고 나서 연이가 어디까지 했는지 알 수 없어 책을 읽었던 부분을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읽는 그런 오류가 자꾸 발생을 한 것이었다.


빗금 체크는 단순히 확인을 하기 위한 확인 용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전화가 와서 신경이 흐트러졌을 때 연이가 한 곳을 표시하기 위한 기표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게 가장 컸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자리에 일어나 엉덩이 묻어 있을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행정실로 다시 향했다. 일단 몽당연필을 다시 찾아야 했다.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교행, #교육행정직, #교행일기, #학교, #직장생활, #연이, #따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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