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다 마음 깊숙이
연이는 계절 옷을 바꿔 입고 있는 그 중간에 서 있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라치면 노랗다 못해 갈색으로 변한 잎들이 바닥에 뒹굴기 시작했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도 은행나무의 노란 잎도, 캐나다의 국기에 그려진 단풍잎도 푸른 옷을 버리고 저마다 노랗고 빨간 옷을 입은 후 바닥으로 추락했다.
건조한 기후에 맞춰 수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은 '낙엽'이라 불리며 인도의 흉물처럼 한 동안 돌아다녔다. 누구에게는 인도의 흉물이었지만, 연이에게는 매년 이맘때만 할 수 있는 놀이 겸 소리를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건조한 기후로 바짝 말라버린 나뭇잎은 밟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거렸다. 그 바스락 소리는 연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꼬마 연이는 달동네도 아닌 산동네도 아닌 언덕 동네에 살았다. 대전 동구에는 그런 언덕 동네가 즐비했다. 골목과 골목 사이는 폭이 어른 두 명이 나란히 지나가면 피할 수 없는 작은 담벼락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그런 동네였다. 누구나 큰 소리로 '누구야 놀자'하면 동네에 있던 모든 꼬맹이들이 나와서 놀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동네 꼬맹이들과 놀다가 꼬맹들의 엄마가 하나 둘 저녁을 먹으라는 소리를 듣고 모두 돌아갔다. 연이는 그날은 언덕 꼭대기에 있던 날망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대로변을 두 번 지나 엄마가 일하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잘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던 길은 밤이 되니 전혀 다른 길처럼 보였다. 연이는 여차하면 뒤로 돌아 날망집으로 뛰어가기로 하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 하지만, 엄마가 일하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시계가 없었지만, 걷다가 보면 가게에 가끔 시계가 있던 것을 기억했다.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 한참을 넘었는데, 연이는 길을 잃었다. 무섭고 두려워졌다. 이러다 날망집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엄마랑 돌아오는 길에 나뭇잎이 넓은 잎들이 가을에 떨어지면 바스락 소리가 난다고 말한 것이 생각이 났다.
이 길이 아니다. 바스락거릴 만한 나무가 없다. 샛길로 나 있는 길로 들어서니 유난히 풍성한 잎들이 있던 나무가 많이도 나뭇잎을 떨궈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하면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올 것 같았다. 한참을 바스락거리며 운동화가 닳도록 바닥의 나뭇잎을 밟고 다녔다.
"연이야~~~"
다행이다. 엄마가 날망집에 들어갔다가 연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연이를 찾으러 나온 것이다. 그렇게 가을이 오면 비자발적 가출에 대한 연이의 마음이 깊숙이 다가온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웃음도 나온다. 그래서 바스락바스락 연이는 나뭇잎을 밟고 다닌다. 마음의 위안을 위한 의식처럼...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3"
5년 전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달리 연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둔 시즌 3(연이의 기억)는 연이가 겪는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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