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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Nov 15. 2021

[단미가] #03. 파리한 '초췌'에 초심을 빼앗기다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03

파리한 '초췌'에 초심을 빼앗기다


초췌하다(憔悴하다/顦顇하다)
병, 근심, 고생 따위로 얼굴이나 몸이 여위고 파리하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모르겠다. 여기가 어디고 왜 연이가 지금 이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연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누워있던 연이는 하얀 천정을 보고 깨어났다. 처음에는 눈의 초점을 안 맞아 뿌옇게 보여 그런 줄 알았는데, 눈을 움직여 하얀 천정의 끝을 찾기 위해 눈동자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끝을 쳐다보았다. 그 끝을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이 돌아오면서 깨질 듯한 미친 고통은 머리가 아닌 몸 전체에서 전해오고 있었다.


'헉'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흘러 의식이 끊어질 즈음 고통이 갑자기 멈췄다. 식은땀에 온몸이 축축해진 연이는 벌떡 일어나 이곳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렸다. 하얀 벽, 하얀 천정, 하얀 바닥. 빛과 어둠의 경계가 없어 흡사 바닥과 벽과 천정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이상한 장소가 아닌 공간에 와 있다는 것을 연이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가 지구 상의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 즈음 다시 아까의 고통이 서서히 연이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이 전해지고 있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하면서 복부를 심각하게 뾰족하고 얇은 칼로 마취 없이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전해질 즈음 연이의 고통에 찬 신음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연이는 꿈과 현실의 중간 어디 즈음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이 짧은 비명 같은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연이의 방문을 열었다. 온몸을 둥글게 말고 극심한 고통을 식은땀을 흘리며 참고 있는 연이를 보며 그대로 둘 수 없어 빠르게 119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들것에 들려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이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연이의 앞뒤로 위치한 그들의 움직임의 진동이 연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 즈음 다시 찾아온 극심한 고통에 속수무책으로 연이의 몸을 가누기 힘들어졌다. 연이의 의식을 잃지 않게 하려는 응급대원들의 노력에도 연이의 의식을 저 멀리 하얀 방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잠시 의식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하얀 천정에 링거 주머니가 보였다. 여전히 초점은 맞지 않지만 고통은 참을 만한 정도로 낮아져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응급실 당직의사가 연이를 보자마자 문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런 거죠?"

"오늘 새벽부터요."

연이는 배에 힘을 줄 수 없어 입으로 내는 소리는 작디작았다. 의사는 연이의 왼쪽 허리 부분과 복부를 손으로 살짝 가볍게 누른 것 같은데 연이는 감전된 몸처럼 고통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요로결석이네요. 검사를 더 진행해봐야 알겠지만요. 일단 가장 센 진통제를 놨으니, 아프면 얘기해주세요."


극심한 고통에서 잠시 떨어지니 생리현상이 몰려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되어 의사에게 말을 하니 링거 주머니를 거치대를 걸어주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려고 일어나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를 지켜보던 간호사가 달려오는 것을 연이는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한 단어가 떠올랐다.


"초췌"


거울에 비친 모습은 '모습'이 아닌 '몰골'이었다. 열심히 하려고 이쪽저쪽 뛰어다니며 일을 하고 그렇게 하고도 시간이 모자라 물 마실 시간까지도 줄이고 학교에서 초과근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집에서 EVPN으로 일을 하며 어떻게든 일이 원활하게 흘러가게 하려고 애를 쓰던 작은 연이가 거울에 비취졌다. 한참을 쳐다보다 생기를 잃은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진 낯선 얼굴이 되어 있는 연이는 하얀 방에 갇힌 자신을 생각하며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는 것을 진통제로도 막지 못하고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화장실에 들어오던 다른 이의 비명소리에 간호사가 달려오고 연이는 다시 들 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연이는 괜찮을 수 있을까? 또 연이는 다시 초심을 찾을 수 있을까?

하얀 방에 갇힌 연이는 과연 현실 속에 나올 수 있을까?




ABOUT '단미가'(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어의 의슴으로 다가올 때', 일명 '단미가'는 연이가 어릴 적, 학창 시절, 대학교 시절, 공시생 시절, 교행 근무하는 지금과 앞으로 있을 미래를 포괄하여 특정 단어의 의미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연이만의 '연이체'로 독자들에게 들려드리려고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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