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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Dec 24. 2021

[단미가] #08. 어스름한 새벽녘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08

어스름한 새벽녘

 

연이의 기상시간은 새벽 5시였다. 새벽이라고 해야 하는 시간인지 모르지만, 그 시간에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유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힘이 빠지고 머리가 갑자기 수십 년간 쓰지 않아 기름때로 떡칠이 된 기계처럼 끼이익 소리를 내며 멈춰버린다. 바꿔보려 수백 번을 노력했지만, 연이는 바꾸지 못했다.


학창 시절 밤샘을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밤새서 무언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그들의 모습을 열망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은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처럼 마음에 미련을 두었다.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은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어스름한 새벽녘을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밤샘을 하는 친구들처럼 까만 밤을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까만 밤을 부러워했고 눈부신 해를 좋아했던 연이는 해가 뜨기 전 까만 밤하늘에 햇살을 비추기 시작하는 새벽녘을 누구보다 좋아하게 됐다. 하루의 시작을 그때 시작하여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표어처럼 일찍 잤다. 그 시간이 9시였다. 머리가 모자 쓰려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냥 모양으로만 존재하는 시간이 그 시간이다. 펑펑 잘 돌아가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해가 지면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감추려 아침을 해가 나오기 전에 맞이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이 기상시간을 지켰는데 공무원이 되고 나서 더 많이 누릴 줄 알았던 이 좋은 어스름한 새벽녘을 맞이하는 기분을 요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일과 삶이 분리되는 순간이 오면 또 누릴 수 있겠으나, 아직은 무리다.


오늘도 "어스름한 새벽녘"의 고요한 향기를 맡고 싶다.



ABOUT '단미가'(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어의 의슴으로 다가올 때', 일명 '단미가'는 연이가 어릴 적, 학창 시절, 대학교 시절, 공시생 시절, 교행 근무하는 지금과 앞으로 있을 미래를 포괄하여 특정 단어의 의미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연이만의 '연이체'로 독자들에게 들려드리려고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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