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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Feb 06. 2022

[단미가] #09. 아련하고 따뜻한 '은은한' 기억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09

아련하고 따뜻한 '은은한' 기억


지금의 초등학교와는 다른 '국민학교'를 다니던 연이는 교과서와 공책에 준비물까지 넣은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오전반 오후반이 있던 시절에 아침에 무슨 일이라도 먼저 하려는지 그렇게 일찍 깨었고, 오후반 보다 오전반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이 떡볶이와 튀김을 먹는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하며 지나가고는 했다. 먹고 싶은 것보다 양 많고 오래 먹을 수 있는 것을 꼬마 연이는 지금의 가성비를 따져가며 용돈을 쪼깨 쓰고는 했다. 


안개가 언덕 위 골목길을 점령할 때면 냅따 뛰어내려오거나 후다닥 뛰어올라가는 골목길이 위험천만한 곳이 되어버렸다. 사람 두 명이 지나가기도 버거운 그 길로 자전거도 다녔고 가끔은 오토바이도 다녔다. 


안개가 잠식한 눈을 대신하여 희미하게 보이기는 길을 따라 귀를 쫑긋 세웠다. 자전거의 브레이크 밟을 때 나는 단말마 같은 끼익 끼익 소리나 멀리서도 들리는 몇 대 안 되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구분하게 해 줬다. 누구 집의 청국장 냄새도 누구 집의 기름진 생선 굽는 냄새도 잠식된 눈 덕분에 예민해진 후각에 배가 고파졌다.


하루는 고열에 기침을 많이 하던 그날, 아득해지는 정신에 눈을 뜨면 해가 있다 다시 눈을 뜨면 깜깜한 밤이 되었다. 일어날 수도 없는 날이 연속될 때, 어머니가 연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걱정하던 온기가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없는 형편에 찐 밥을 으깨 미음을 쒀 아들 입에 넣어주었는지 딱딱하게 말라 입가가 꺼끌꺼끌해져 혀로 입맛을 다실 때마다 은은하게 퍼져오는 단내를 기억한다.


그런 아련하고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들이 '은은함'에 녹아있다. 




ABOUT '단미가'(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어의 의가 슴으로 다가올 때', 일명 '단미가'는 연이가 어릴 적, 학창 시절, 대학교 시절, 공시생 시절, 교행 근무하는 지금과 앞으로 있을 미래를 포괄하여 특정 단어의 의미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연이만의 '연이체'로 독자들에게 들려드리려고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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