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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25. 2021

[교행일기] #21. 내 첫 사회복무요원, W

토끼의 운명은?

사회복무요원? 공익?


격양된 Y동기의 목소리는 대화창을 뚫고 나왔다.

Y동기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사회복무요원이 벌써 며칠째 잠수를 탔다는 것이었다. 며칠째 사회복무요원에 전화를 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전화도 해보았다고 했다.  집도 찾아가고 보고 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병무청에는 신상(신상변동통보)을 했다고 했다. Y동기의 그 말에 다른 동기들의 맞장구가 대화창에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누구는 병가를 다 썼네 다른 누구는 연가·병가 초과를 했네 하는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연이는 남의 나라 얘기인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옆에서 뭔가 열심히 찾아보는 W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대화창을 다시 보았지만, W는 동기들이 말하는 사회복무요원과는 별개인 듯했다. 아니 별개였다. 연이가 한 달을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사회복무요원, 신상에 관한 자료를 검색했다. 법령이 존재했다. "사회복무요원복무관리규정"


5년 후 연이가 보내온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


연이는 '사회복무요원'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왜 여기서 근무를 하는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면 못 참는 연이의 성격상 법령을 유심히 읽었다. 


'아하. 복무자구나. 호칭도 나와 있네.'

아뿔싸. W에게 연이는 OOO사회복무요원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사회복무요원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대로 불렀다. 연이는 스펀지 같은 꼬꼬마라 아이가 말을 막 하기 시작하여 조금 재잘대는 시기가 오면 아이에게는 할머니, 아이 엄마에게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부를 때 "큰애야"라고 부르면 아이가 신기해서 쳐다보다가 어느 날 엄마를 "큰애야"라고 부르는 것처럼 연이는 W에게 어리석음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성실히 복무하는 W는 대화창에서 동기들 사이 공방이 이어지는 사회복무요원 같은 부류가 아니었기에 더욱 미안했다.



내 첫 사회복무요원, W


연이는 사회복무요원 W와 잠시 유치원에 내려갔다. 토끼가 토끼장을 탈출하여 유치원 놀이터에 있다는 선생님의 제보를 받았다. 자연친화적 학교를 표방하는 연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강아지, 병아리, 토끼를 비롯한 동물과 언덕에는 봄이 되면 각종 꽃들이 화분에 심어지고, 여름에는 우거진 나무가 잎을 풍성하게 피우고, 맥문동, 분꽃을 비롯한 식물들이 학교를 에워싼다고 했다.(W에게 들은 소리다.) 도시에 있었지만, 학교 내에는 시골의 있는 학교와 다름이 없었다.


그런 학교에 말썽꾸러기 토끼가 있다. 그 토끼는 벌써 탈옥 3범이다. 이번이 네 번째이니 4범이 되어 붙잡혀 토끼장으로 끌려갈 처지에 놓일 것이다. 문제는 사회복무요원 W은 토끼를 잡아본 전력이 있지만, 연이는 토끼를 어릴 때 보기만 했지 실제 만져보거나 하지 않았다. 다들 그러리라 생각이 된다. 실제 토끼를 만져볼 기회가 과연 있을까 생각이 든다.


탈주 토끼는 유유히 유치원 놀이터 모래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다 멈추다 또 뛰다 하고 있었다. 실물 토끼다. 진짜 토끼가 나와 있었다. 어떻게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순간 황당하여서 얼어버렸다. 어쩌지 하고 있는데, 사회복무요원 W가 말을 먼저 건넸다.


"연 주무관님, 제가 이쪽으로 몰 테니까 연 주무관님은 저랑 한 걸음 옆에서 서서 몰아서 저기 코너가 있는 벽으로 몰죠."

W의 생각은 코너로 몰아 더 이상 갈 때가 없으면 그때 잡는 계획이었다.


"연 주무관님, 토끼 잡아보셨어요?"

'잡아볼 리가 없잖아. 여기는 도시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W는 아주 자세히 설명을 했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 토끼를 제압한 후 토끼 귀를 잡고 엉덩이를 받치면 아주 순순히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론 설명은 들었으나 과연 그게 될지 몰랐다.


점점 포위망을 조여 탈주 토끼는 유치원 담벼락 코너로 몰렸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흡사 사냥감을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가는 치타가 생각났다. 탈주 토끼에 연이와 W의 두 시선이 고정되었다. W가 움직이면 연이도 움직였다. 탈주 토끼와 1미터. W는 검지 손가락으로 입으로 가져가 쉬! 하고는 손가락 카운팅을 했다. 마지막 카운팅과 동시에 우다다닥. 실패했다. 퇴로를 모두 막았지만, 토끼는 보란 듯이 점프를 했다. 토끼는 토끼였다. 연이는 담벼락을 발판 삼아 점핑을 하는 토끼를 멍하니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30여분 동안 두 어 차례 토끼몰이를 했다. 


하지만, 토끼는 잡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구가 필요했다. 그 사이 시설주무관님이 얘기를 듣고 왔는지 그물 같은 것을 가지고 왔다. 한쪽을 막기가 더 쉬웠다. 더욱 몰기도 쉬워져 W와 연이 사이의 발 밑의 공간도 토끼에게는 기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30여 분 만에 탈주 토끼는 다시 토끼장으로 돌아갔다.


"W군, 아니 OOO 사회복무요원~~"

W는 덧니가 나 있는 얼굴이 벌레 씹은 얼굴로 바뀌더니 이상하다며 자신의 두 팔을 비비며 하지 말라고 했다.

"연 주무관님! 저는 W군이 좋아요. 그렇게 불러주세요."


탈주 토끼를 어렵게 잡아 나름 힘든 일을 한 동지애가 생겨서 그런지 처음 연이를 대할 때 딱딱한 얼굴이 아닌 웃음끼 많은 딱 그 나이 때 W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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