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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27. 2021

[교행일기] #23. 사라진 그들

위기에 빠진 동기들

사라진 K


연이와 연수원에서 옆자리에 앉아 같이 교육 들었던 동기 S가 말을 먼저 모여있던 동기들에게 꺼냈다.

"어째요? K 있잖아요. 안 나온 지 꽤 되었대요."


동기들 무리로 가려던 연이는 순간 멈칫했다. 귀로 들리는 저 소리가 연이가 들은 소리가 맞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K동기라면 말수가 적고 동기 중에도 친한 동기가 없을 정도로 사교성이 없는 편에 속했다. K와 친한 동기라고는 연이와 반장 밖에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해고를 당해서 악착같이 공부해서 들어온 K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연이는 며칠 전 K가 갑자기 대화창을 연 것이 기억에 남았다.


"연이 동기님! OO건은 잘 해결이 되었어요?"

대화창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경우는 무엇을 했는데 잘 안 된다로 시작하여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해결책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자 먼저 대화창을 여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데, K는 그러지 않았다.


"아, 그게 아직 해결을 못했어요.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계속 찾아보고 있어요. K 동기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연이의 질문에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상태줄에 'K가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대화창에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실장님이 연이를 불러서 얘기를 나누느라 어느새 대화창의 연이는 '자리비움'으로 되었다. K의 메시지를 본 것은 그날 퇴근 무렵이었다.


"연이님, 잘 지내셔요."

뜬금없는 메시지였다. 대화창에서 로그아웃되어 K에게 더 이상 메시지를 남길 수 없었다.


동기들은 나름의 추측을 해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연이가 다가오자 동기들은 그나마 제일 가까이 지냈던 연이를 붙잡고 물었다. 다른 얘기는 연이조차 못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남긴 마지막 대화가 아닌 대사만 연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게 마지막 나에게 남긴 말이었단 말인가?'


사라진 K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2월 인사발령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허무하게 동기는 떠나갔다.


OO초 교육행정9급 K 의원면직




드리우는 어둠의 그림자, 불안


연이는 2월 급여에 여념이 없었다. 일단 K에 대한 생각을 접어 연이의 마음속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어야 했다. 2월 급여는 이 주무관님이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오롯이 연이 혼자 해야만 했고, 1월 말까지 실시한 연말정산 결과를 반영해서 연말정산 소득세, 연말정산 지방소득세를 잘 공제해야 했다. 실수를 하며 용납이 되지 않기에 연이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파도를 얼려 마음 안에 가두었다.


하루 이틀 2월 급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급여 관련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연이는 혼자서 이 정도 해내는 자신을 보며 대견스러웠다. 결재판에 급여서류를 정리하여 넣었다. 심호흡 한 번, 두 번. 실장님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연이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실장님의 질문에 나름 막힘없이 대답했다. 교장선생님까지 결재가 완료가 되자 교장실 문 앞에서 다리 힘이 풀려버렸다.


동기들 대화창에서 K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마음 안에 가두었던 감정의 파도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와 연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K동기가 근무한 학교에서도 연이가 근무하는 학교처럼 급여를 해본 사람은 없었다. 실장님도 차석도 급여를 해보지 못해 도와줄 수 없었고, 사교성이 없던 동기는 다른 동기에게도 묻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다고 했다. 어디에도 물을 때 없는 그 막막함에 동기는 스스로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주저 없이 악착같이 공부해 얻은 3년 시간을 하늘로 날려버렸다.


연이는 결재판을 끼고 운동장 쪽으로 나갔다. 1월의 한기보다 마음의 한기가 심했다. 돌계단에 앉아 파도의 쓰나미를 온전히 맞이했다.

'여기도 차석도 실장님도 급여를 해보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리고 ...'

연이는 처음에는 K를 원망했다.

'나에게라도 털어놓지. 나도 같은 상황인데... 그렇게 혼자서 결정하고...'

마지막 대화창이 열렸던 게 떠올랐다.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씁쓸한 신물이 연이의 마음에 뒤덮었다.


그 후 늦은 나이에 들어온 연이와 비슷한 나이 때의 동기들 2명이 더 의원면직을 했다. 연수원에서 모두 같이 점심을 먹던 동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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