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Aug 27. 2021

[교행일기] #53. 뜻하지 않은 사고

뜻하지  사고


8월 28일 일요일 새벽 4시 30분


연이의 기상시간이 평소보다 빨랐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지금은 충남 금남면, 지금은 세종특별시로 편입된 그곳 인근 산에 모신 아버지 산소를 한가위 대비 벌초를 하러 가는 날이다. 엄마와 연이를 포함한 가족 4명이 한 차에 올랐다. 요즘은 다들 벌초대행을 하는데, 우리 가족은 아직도 그것은 조금 아니라는 생각에 매년 내려가서 연례행사처럼 하고 올라왔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연이의 신분이 바뀌고 첫 아버지와의 만남이었다. 10년 공시생을 하면서 작년을 제외한 9년 동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뭘 부탁하고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이맘 때는 아버지에게 부탁 같은 협박 비스무리한 것을 했었다. 열심히 했던 만큼 간절하게 합격하고 싶었다. 뭔가 연이의 일을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사실 연이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신에게조차 부탁하지 않았던 것을 멀리 떨어져 1년에 1번 찾는 이 산 중턱에 묻힌 아버지에게 떠날 때 마음속으로 빌었다.


'아버지,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인데요. 제가 이 꼴로 계속 있으면 안 되겠지요? 그곳에서 보고 있다면 붙게 해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 방해하는 것만 막아주세요.'


작년 이맘때 했던 '부탁(?)'이 생각이 난 연이는 속이 부글부글 댔다. '방해'하는 것만 막아달라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연이의 인생은 연이 것이니까 모든 것은 연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5년 그 해에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심한 감기가 걸렸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상한 병이 창궐하는가 하면, 유행성 결막염에 걸렸다가 각막까지 전염이 되면서 각결막염으로 두 달 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소설이나 영화로 치자면 진짜 주인공에게 시련을 주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막아서는 방해물이 하필 현실 속 연이에게 일어났는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그렇게 해가 뜨기 전에 그곳에 도착해서 해가 밤나무에 가려 벌초하는 동안만큼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마치려고 서둘렀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사이에 시원하게 비가 와서 걱정되었지만, 더 내려가니 그곳에는 오지 않았다. 소나기이었나 생각했다.




8월 28일 일요일 9시 00분


그렇게 도착하니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여름 산의 풀들은 밤새 떨어진 기온에 풀잎 끝마다 이슬을 달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풀 탓에 아버지의 산소를 찾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장을 해 간 묫자리에는 묘의 둔덕을 이룬 흙이 뒤집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또 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산 아래는 불법이지만 여전히 농작물을 심었는지 면사무소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뒤로하고 호박잎이 넓어진 틈틈이 동그란 애호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산의 비탈길은 연이의 거친 숨소리와 비례하게 가팔라졌다.


밤나무가 보였다. 그래. 저 밑이 아버지의 산소였다. 덩굴 잎이 휘어 감고, 밤나무의 묘목이 산소에 어느덧 자리를 잡았다. 산소 주변의 잔디는 왼쪽은 나름 풍성하게 자란 반면 오른쪽은 덩굴 잎이 햇빛을 가려 잔디가 다 죽고 야생풀만 잔뜩 자라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소주 한 잔을 서둘러 올리고는 고무가 달린 장갑을 끼고 벌초 가위를 잡았다. 가끔은 밤나무를 자르기 위해 톱을 들었다. 벌초 대행소에 맡기면 예초기로 깔끔하게 밀어 사진까지 보내주겠지만, 예초기가 아닌 벌초 가위로 일일이 풀을 베어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4명이 열심히 서둘러 준 덕분에 나름 예쁘게 다듬어졌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는 벌초를 해도 힘들지 않고 여행하는 것 같았지만,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다. 마지막에 남은 소주를 모두 산소에 부어주면서 아버지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합격하고 발령 났다고 말해드렸다. 하지만, 가슴에 의원면직을 품은 이야기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말 안 해도 아실 테지만, 연이는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꾸벅 인사를 하고 기다리는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8월 28일 일요일 11시 00분


아직까지 연이의 친가 쪽 작은 할머니는 그곳 시장에서 닭갈비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닭가슴살로 하는 춘천 닭갈비와 다르게 폐계닭으로 하는 작은 할머니표 닭갈비는 시장 사람들의 술안주로 한 점씩 소분해서 팔았다. 작은 할머니에게 인사만 하고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과 다르게 이제는 많이 나이 드신 작은 할머니는 오랜만에 내려왔다며 그 닭갈비를 푸짐하게 철판에 올려서 먹기 좋게 구워주셨다. 연이의 공무원 합격소식에 누구보다도 더 기뻐해 주신 작은 할머니는 이것저것 과일까지 내오며 연이의 합격을 축하해 주셨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던 연이는 몇 점에 밥만 먹었지만, 가족들은 오랜만에 먹는 폐계닭 닭갈비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은 할머니의 정성이라 그런지 모두 비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1시간이 훌쩍 넘게 지체되었다.




8월 28일 일요일 13시 10분


작은 시장 주차장에 세워놓았던 차는 열기를 한껏 머금었는지 차문을 열자마자 열기를 연이와 가족들에게 내뿜었다. 차 안의 열기는 강하게 틀어놓은 에어컨의 냉기와 열렬히 전투를 하더니 냉기에게 그 주도권이 넘겨주며 연이와 가족들은 시원하게 집을 향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1시간쯤 지나 천안논산고속도로 진입했다. 몇 개의 터널을 지났고, 아주 긴 터널을 지나 어둠에 적응했던 눈이 갑작스러운 강렬한 빛에 놀랄 정도로 눈부셨다. 아주 멀리 뭔가 사고가 났는지 몰려 있는 차가 보였다. 터널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서 차가 서있던 것이라 차의 속도를 급격히 줄이면서 비상등을 켰다. 차가 덜컹할 정도로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연이는 뒷좌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괜찮으냐는 말을 하려고 했다.


"꽝!"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굉음과 함께 밀려오는 충격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연이가 탄 차가 받은 충격은 곧이어 앞차에게도 전해졌고 이중으로 충격을 받은 연이와 가족은 한동안 신음소리만 냈다.


연이는 이 사고가 마음에 미치는 쓰나미를 알지 못했다.


이전 22화 [교행일기] #52. 문화 냉동인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