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하루들이 건네는 작은 신호들
나는 오랫동안 삶이 내게서 멀어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흐릿한 유리창 너머에서만 바라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웃음과 일상이 나와는 멀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평범한 풍경이 문득 나를 멈춰 세웠습니다.
등굣길에 들리는 학생들의 웃음과 대화 소리
보건실의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일기장처럼 조용히 쌓여 있는 학생들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건강조사서와 건강검진 결과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순간들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삶이 다시 내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그 작은 징후들이 알려준 거였습니다.
다정하거나 극적인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삶은 그저 “여기 있단다, 너도 알고 있지?” 그렇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나는 그날 보건일지를 정리하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매일 적어온 이 기록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적는 문서인 동시에 내가 다시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일기 같기도 하다고.
그리고, 내가 학교 안에 의료인인 보건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기록인 것 같다고.
불안했던 날엔 기록을 남기기가 힘들어 간단하게 남기기도 하고, 조금 괜찮아지던 날엔 학생들의 호소를 통한 의료적 판단의 과정을 명료하게 기록했던 것처럼.
삶은 매번 명료하고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 그냥 불안정한 미래여도 그 또한 받아들이고 나아간다는 사사실. 어떨 때는 명료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매번 강박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명확하게 이루어야 마음이 놓였던 나를 천천히 놓아줍니다.
그래서 나는 두 번의 벼랑 끝에서 돌아온 이후, 하루의 빈틈마다 작은 신호들을 느끼려 합니다.
학생의 건강이 호전되는 신호.
“선생님, 어제보다 괜찮아졌어요.”
바람이 창틈을 스칠 때 나는 산뜻한 냄새,
보건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나를 감싸는 따스한 햇살
그 사소한 신호들이 모여 평범하게 내가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나갑니다.
삶의 다양한 사소한 신호들을 알아차리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씩 생겨납니다.
그렇게,
삶은 늘 나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