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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일하기 (3) – 리더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Le Français, 그와 함께 일하다

by 츤데레달언니

우리 부서를 대표할 새로운 헤드를 인터뷰해야 한다. 정체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어떤 인력을 채용해야 할까? 현재 있는 헤드는 변하기 싫어하는 보수적인 성향, 조직은 변화해야 한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나는 과감하게 젊고 도전적이며 열정적인 모습의 헤드를 뽑기로 마음먹었다.


인사에서 추천한 여러 명의 후보자들을 면접하면서, 대부분은 실력들이 비슷하였고 준비된 답변도 다들 그럴싸해서 큰 변별력이 없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눈을 통해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후보자를 찾기로 결심했다. 도전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표시라고 생각이 들었고, 나의 파트너가 될 것이므로 내 결정이 맞을 것이라 믿었다. 여러 번의 후보자를 거친 끝에 선택된 그는 프랑스 남부 리용 출신의 중세 프랑스 기사 같은 기상이 엿보이는 젊은 에르베였다.


그는 필드 영업맨 출신이었기에 유통 사장들과 친분이 있었다. 특히 각 지방의 자수성가형 유통 사장들에게는 젊고 활기찬 영업 헤드로 통했다. 마침 우리 브랜드 이미지 역시 프랑스 내 레거시 브랜드 대비 젊고 역동적인 느낌이 있었기에 에르베와는 더욱 잘 어울렸다. 그와 함께 지방 출장을 다니며 거래선들과 석식 자리에서 본 에르베는 더욱 빛나는 존재였다. 아버지뻘 되는 사장들에게 귀여움을 장착하며 열정적으로 제품을 소개하고 협상을 밀어붙였다.


에르베가 우리 팀의 헤드로 영입되면서 팀은 변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속도와는 다른 스피드로 일하기 시작했고, 과감한 목표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일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목표에 대한 동의를 얻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에게 목표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며, 겉으로는 하겠다고 해놓고 뒤에서 안 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본사나 경영진이 던지는 모호하거나 원대한 목표를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에르베를 통해 팀이 목표에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일단, 본사에서 도전 목표가 오기 전에 나는 이미 본사의 목표보다 더 높은 목표를 3개월 전부터 에르베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본사의 기대를 강조했다. 우리의 성공이 전 유럽으로 전파될 가능성, 법인장의 개인적 보상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곁들여 에르베를 끊임없이 설득해 나갔다. 처음에는 그 역시 프랑스인이라 수용하기 어려웠겠지만, 나는 목표를 본사 지원 확보의 기회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팀이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물론 본사의 목표가 도착할 때쯤 에르베와 나는 이미 전략을 마련해 두었다. 눈치 빠른 에르베가 나의 전략을 몰랐을 리 없다. 유럽 다른 나라 리더들과도 소통하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목표를 현지 실무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현지인들은 Top-down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반드시 실무자들과 소통하며 목표의 정당성과 실현 방법을 토론해 팀 전체의 목표로 장착해야만 한다. 이는 지시 일변도의 국내 조직과는 다른 상호 소통의 문화였고, 나는 그 차이를 처음 배운 순간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에르베와 나는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90% 달성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우리는 늘 본사가 준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에르베가 나보다 더 도전적인 목표를 먼저 선언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본사의 지원책을 따내라는 숙제를 주었고, 그의 도전 정신과 성과 덕분에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그 숙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에르베는 본사 경영진들에게도 인기 많은 현지 헤드였다. 본사 리더십 미팅 날이면 프랑스 명품 슈트에 넥타이, 벨트, 구두, 명품 시계를 장착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경영진을 맞이했다. 미팅에서는 큰 목소리로 도전적인 목표와 전략을 발표하고, 저녁 만찬 자리에서는 "Passion illimitée (빠시옹 일리미떼; 무한한 열정)"라는 건배사를 외쳤다. 본사 경영진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본사로 귀임한 이후 그는 VP로 승진했고, 사업은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주요 매장을 가지고 있는 오너의 오른팔로 스카우트되어, 지역 유통을 전국구로 확장하려는 비전을 실현하고 있다.

재작년 파리 여행에서 그는 니스에서 파리까지 달려와 오랜만에 나와 저녁을 나누며 변함없는 파트너십과 우정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퇴직한 내게 걱정 말라며 새로운 길이 올 것이라고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는 나와 일하는 동안 정말 좋은 파트너였고, 그의 이력의 시작점을 열어준 나에게 끝까지 의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짜 프랑스 시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프랑스 시장과 문화가 던진 진짜 숙제'를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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