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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일하기 (5) – 마케팅에 문화를 담다

미식의 나라에서 마케팅을 시작하다

by 츤데레달언니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다. 만국 공통의 단어인 레스토랑이 프랑스어이며, 레스토랑이 발전한 계기는 프랑스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루이 14세 왕권 통치 시절부터 융성했던 화려한 궁중 요리 문화가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밖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는 실직한 궁중 요리사들이 대중을 위한 레스토랑을 열었고, 귀족 문화를 동경하던 부르주아 계층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후원하면서 파리 전역으로 레스토랑 문화가 확산되었다. 지금도 파리 곳곳의 식당 간판에는 'depuis 1880' (since 1880) 같은 개업 연도가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 프랑스의 레스토랑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미식 문화의 중심이었다. 이처럼 미식이 삶의 일부가 된 나라에서, 미슐랭 가이드가 태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인들은 먹는 것에 진심이다. 현지 친구 이사벨은 프랑스인들이 음식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탐구심이 깊다고 했다. ("Les Français trouvent toujours intéressant de goûter quelque chose de nouveau" – 프랑스인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맛보는 것을 언제나 흥미롭게 여긴다고 말하던 그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1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프랑스 거래선들이 한국에 와서 간장게장, 산 낙지, 순대 같은 음식까지 시도하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미국 거래선이 김치 냄새에 코를 막던 반응과는 대조적이었다. 특히 알리에노아라는 여자 PM은 산 낙지를 용감하게 시식하며 흥미로워했고, 순대를 보며 자기 고향에도 비슷한 음식이 (Boudin noir, 부댕 누아르) 있다며 즐거워했다. 그들의 태도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넘는 존중감 이상이었다.


어느 날 실벳이 마케팅 기획서를 들고 왔다. 프랑스인의 ‘열정 포인트’ (point de passion)는 요리에 있다는 현지 설문 결과를 공유하며, 우리 가전제품을 활용한 ‘쿡 마케팅(Cook Marketing)’ 전략을 설명했다. 축구 마케팅이 통하는 영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요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 최고의 미슐랭 3 스타 셰프, 에릭 프레숑(Eric Frechon)을 자사 주방가전의 홍보대사로 선정했다.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나폴레옹이 설립한 문화, 과학, 군사, 경제, 예술, 공공 봉사 등 분야에 프랑스 국가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프랑스 최고 훈장)를 수훈한 그는 광고, 제품 행사 등에 참여하며 우리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소비자 매거진에서도 주방가전은 상위에 랭크되며 시너지를 냈다.


또한 현지 유명 음식점 안내서인 '가이드 샹페라르'(Guide Champérard)를 후원하고, TV 쿠킹 콘테스트를 협찬하며 일반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지화된 문화 마케팅은 소비자의 공감을 얻으며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이후 쿡 마케팅은 프랑스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페랑디 요리학교’(École Ferrandi Paris) 와의 협업으로 확장되었다. 미래의 셰프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 체험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나아가 글로벌 프로젝트 ‘클럽 드 셰프(Club des Chefs)’로 연결되었다. 이는 세계 각국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과 협업하여 실제 조리 경험과 노하우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프로그램으로, 프리미엄 주방가전 시장에서의 신뢰와 혁신을 동시에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에릭 프레숑 외에도 여러 프랑스 셰프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신제품 발표회 역시 프랑스의 문화와 공간을 접목했다. 파리 개선문 인근의 프라이빗한 복합 문화공간, 루이뷔통재단 건물 근처의 아트 갤러리, 그랑 팔레(Grand Palais) 같은 고전적인 건축물이 어우러진 대형 행사장, 그리고 마들렌 인근의 유서 깊은 저택을 빌려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신제품을 소개했다. 이처럼 장소 선정부터 ‘프랑스다움’을 담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되었고, 현지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또한 파리 시청 앞에서는 프랑스 대표 예술 축제 ‘뉘 블랑슈(Nuit Blanche, 백야 행사)’와 연계한 회사 전체로 참여하는 대규모 공개 이벤트를 진행했다. 밤새도록 예술이 펼쳐지는 이 축제는, 브랜드의 예술적 감성과 혁신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단순한 제품을 마케팅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마케팅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마치 프랑스인처럼 현지인들과 일체감이 있었고, 그 일체감은 소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우리는 프랑스 시장에서 점점 더 성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모든 감각을 열고 일했다. 걷고, 말하고, 느끼고, 설득했다. 그 도시에서 나는 ‘마케팅에 문화를 담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파리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도시다. 그 도시의 돌길을 걷고 있노라면, 지금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모를 만큼 현실감이 흐려지는 순간이 많다. 어느 날은 귀족 부인의 마차가 지나갔을 길, 또 어느 날은 담배를 문 예술가가 살롱으로 향했을 길, 그러다가 그날은 분노한 시민들이 혁명을 위해 뛰어갔던 거리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부지런히 다니며 우리 제품을 마케팅하기에 바빴었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걸으며, 오래된 간판이 걸린 작은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내가 그 길 위에서 바빴었던 시절도 추억하면서 말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던 그 프랑스에서,
나는 주재원 인생 처음으로 ‘실적 하락’이라는 파도를 만났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어떻게 그 시기를 견뎌냈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프랑스에서 일하기 (6) – 좌충우돌, 성공과 실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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