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0%만—호흡이 가르쳐준 내려놓기
회사를 떠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규칙적인 일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오랜 직장 생활이 남긴 습관이었을까. 몸에 각인된 루틴을 벗겨내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무엇보다 내게 생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큰 숙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 같다. 늘 아침이면 집을 나서고,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오래된 생활 리듬을—작게라도—계속 지키고 싶었던 마음.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을 떨쳐내고 싶었던 마음.
그래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마음까지 안정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때 떠오른 게 요가였다. 그렇게 나는 요가를 시작했다.
벌써 3년이 되었다.
요즘은 수련을 시작하기 전,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나씩 건넨다.
오늘은 80%만 하자.
오늘은 동작(아사나)의 완성보다 과정의 정렬에 집중하자.
오늘은 호흡에만 신경 쓰자.
오늘은 그냥 선생님 목소리에만 집중하자.
처음엔 역시나 비교부터 했다. 누군가의 동작을 흘끗 보며, 잘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몸을 질책했다. 목표는 ‘동작 완성’이었다. 그런데 요가는 자꾸 나를 다시 내 쪽으로 돌려놓았다. 남을 보는 눈을 거두고, 그날의 컨디션을 이해하며, 그저 수련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는 조금씩 요가에 스며들었다.
수련을 하는 동안에는 몸의 쓰임과, 곳곳에 불어넣는 호흡과, 그 호흡의 길이에 자꾸만 신경이 간다. 가끔은 ‘끙’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하고,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 더 쓰고 싶어지는 과다한 욕구를 어느 날은 멈추고, 어느 날은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다 마지막, 대자로 누워 사바 사아나(Shavasana)에 들어가 깊은 이완을 할 때면—몰아치던 숨이 다시 쌔근쌔근한 일상의 숨으로 돌아온다. 잠이 살포시 들 것 같은 휴식. 그리고 다시 정좌, “나마스떼”로 수련을 마무리한다.
그때 몰려오는 시원함이 있다. 몸의 시원함, 마음의 시원함. ‘오늘을 또 잘 살겠구나’ 하는 마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감각. 그즈음이면 창가에 해가 올라, 커튼 사이로 햇살이 가느다랗게 드리운다. 수련 후 차 한 잔을 마시며 바라보는 아침 햇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직도 호흡은 어렵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호흡이 조금 느긋해지고 깊어졌다. 호흡이 깊어지니 묘하게 마음도 안정된다. 반대로, 동작을 잘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호흡은 거칠어진다.
선생님이 말한다.
“마음을 내려놓고, 급하지 않게 하세요. 동작은 하다 보면 또 됩니다.”
인생이 그렇듯, 결과에 집착하면 힘이 들어간다. 마음을 내려놓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 나이가 되면 알 법도 한데—아직도 난 멀었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경기도 수원의 어느 아파트촌 상가 3층에 있다. 상가에는 수학·영어·미술 학원들이 즐비하고, 근처 초등학교를 품고 있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들락날락한다. 비교적 활기찬 공간이다.
그 가운데 3층, 학원들 사이에 우리 요가원이 있다. 큰 통창에 커튼을 드리우면, 안쪽의 대여섯 명 수련자의 에너지가 흘깃흘깃 밖으로 새어 나온다. 조용하면서도 아늑하게 뿜는 에너지. 어쩌면 옆집 학원생들의 집중에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요가원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이 시기에 만난 나의 동반자들이다. 나와는 스무 해 이상 차이 나는 선생님들. 처음, 새벽 요가를 마치고 배낭을 메고 인근 스타벅스로 가서 공부를 한다는 나를 선생님들은 유난히 신기하게 바라봤다.
사실 그때 내 루틴은 단순했다.
요가—공부—집(혹은 약속).
“회원님 대단하세요.”로 시작하던 눈빛은, 어느 순간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시나요?”라는 측은함 섞인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그 질문으로 나는 보리 선생님과 가까워졌다.
나에 대한 궁금함, 그리고 나 역시 보리 선생님에 대한 궁금함.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요가로, 삶으로, 다시 루틴으로 넓어졌다.
보리선생님은 갸름한 얼굴에 반듯한 눈코입, 조화로운 선한 아름다움을 가진 요가원 원장님이다. 13년 넘게 쌓아온 수련의 깊이와, 요가를 대하는 진정성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청아한 목소리로 수련 가이드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그 목소리의 깊이에 잠겨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런데 보리선생님을 오래 보며 내가 더 자주 떠올리게 된 건, ‘열정’이라는 단어였다. 본인의 일을 계속 확장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 언젠가 더 넓은 곳—예를 들면 뉴욕 같은 도시—에도 요가원을 열어보고 싶다는 꿈을 말할 때의 눈빛. 그 말은 ‘사업 계획’처럼 들리기보다, 요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의지처럼 들렸다.
내가 다닌 3년 동안 보리선생님에게도 결혼과 출산, 육아가 차례로 찾아왔다. 그때부터는 요가를 가이드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삶이 바뀌는 과정 자체도 조금씩 내게 공유되었다. “나중에 뉴욕 가면 같이 와요.” 미소를 지으며 던지는 그 말이, 농담 같으면서도 어쩐지 진심 같아서 한 번씩 마음에 남는다.
어느새 요가는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리고 보리 선생님도, 내 미래의 어느 순간을 떠올릴 때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요가는 내 몸을 정렬해 줬고, 요가원은 내 마음을 붙잡아줬다.
다음 편에서는 요가원에서 만난 또 다른 요가 소 선생님 이야기와,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매트 위로 모여든 몇몇 회원님들—그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었는지도 함께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