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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시간을 두세 시간으로 늘려준 도시, 치앙마이

카페에서 마신 건 커피가 아니라 ‘여유’

by 츤데레달언니

요즘 MZ세대의 트렌드로 많이 이야기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실제로 어떨까?
치앙마이에 머무는 한 달 동안, 나는 그들의 삶을 내내 기웃기웃 바라보며, 가끔은 대화를 나눌 기회도 얻게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우리가 묵은 숙소는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아파트였다.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부엌, 욕실, 거실이 있는 원베드 원리빙 구조로, 대략 18평 남짓 되었던 것 같다. 침실의 큰 침대 아래에는 우리 반려견들을 위한 작은 침대를 놓고 매일같이 지냈다.

하지만 그 애들에게는 옆방에 사는 ‘동종 친구들’의 인기척이 늘 신경 쓰였는지, 제대로 깊이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기다란 복도에는 각 방의 문 앞을 지키는 개들도 있었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문틈을 엿보는 개들도 있었다. 서로를 ‘식구’로 받아들이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치앙마이 복도.jpg

어느 날 문밖에 있는 낮은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공허하게 쉬고 있을 때, 옆방의 젊은 청년도 같은 자세로 쉬고 있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온 자비에르라는 친구였다. 호주 출신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들의 반려견(하운드 계열 같았다)을 데리고 이곳 치앙마이에서 산 지 6개월째라고 했다.

IT 회사의 엔지니어라는 그는 스페인을 떠난 지 6년쯤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회사의 인사발령으로 호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지금의 피앙세를 만났고, 그 뒤로 4년째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정착’이란 시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의 생활에 편리하고, 취향에 맞고, 충분한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고 했다. 직업은 그저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일 뿐이라고 했다. 하운드가 복도 끝에 던져진 공을 물고 오면 그 공을 다시 던지며, 미소를 머금은 채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결혼을 하고 한 번쯤은 정착을 해보는 것도 어떨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떠돌이 삶과 정착 사이에서, 스페인 청년의 마음도 어딘가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매일 아침이 되면, 우리 가족은 치앙마이식 식사를 간단히 하고 길을 나섰다. 남편은 시내 헬스장에서 모처럼 여유 있게 운동을 즐기고, 나는 반려견들과 함께 치앙마이 곳곳의 유명 브런치 가게나 카페를 찾아가 앉았다. 커피를 시켜 놓고 책을 펼치면, 내 양옆에서 졸고 있는 우리 아가들은 어디를 가도 인기가 많았다.

치앙마이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반려견’ 타입의 작은 강아지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길거리에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무리를 짖어 다니곤 했다. 아직 ‘반려견’이든 ‘애완견’이든 집 안으로 들어오기보다는, 동네를 공유하는 존재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리처럼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가족은 치앙마이 사람들에게도,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낯선 풍경이었나 보다. 사람들은 우리 개들 근처로 모여들어 사진을 찍고, 머리를 쓰다듬고,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애들은 첫 해외여행이 자꾸 신경 쓰이는지, 혹시라도 엄마를 잃을까 봐 눈으로, 몸으로, 냄새로 내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카페에 한동안 앉아 있다 보면 여러 유형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카페 안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조용히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들, 여행을 온 것 같은 한 가족, 그 가운데 키 큰 아빠의 등에는 아기 배낭, 거기서 금발 아기가 얼굴만 쏙 내밀고 있었다. 옆에는 유모차 안에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또 다른 금발 아기가 울지도 않고 방긋 웃고 있었다.

유럽 어딘가에서 온 듯한 그 젊은 부부는,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이렇게 멀리까지 여행을 온 것도 모자라, 여유 있게 치앙마이의 대낮을 즐기고 있었다. 그 용기가, 그 태도가 부러웠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는 헬시 푸드, 브라질리언 아사이베리와 샐러드가 함께 나온 헬시를 나누어 먹는 모녀가 있었다. 영국식 억양의 영어를 쓰는 엄마와 십 대 딸은, 치앙마이의 뜨거운 태양마저도 마치 한가로운 오후의 소품처럼 대하고 있었다.

깊은 치앙마이 커피는 짙은 향기로 카페 안을 채우고, 이곳에 온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마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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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나는 이런 여유가 있었던가.’

회사에 다닐 때는 휴가를 내도 늘 마음이 조급했고, 눈은 어느새 핸드폰 화면으로 가 있었다.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이렇게까지 낯설었던가. 치앙마이에서야 비로소 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치앙마이 올드 타운 안의 불교 사원이 있다. 호텔 옆, 카페 옆, 상가 옆에, 우리가 살고 지내는 근처에 친숙하게 사원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갈 땐 옷차림도 경건해야 한다. 급히 태국식 랩스커트를 하나 사서 둘러 입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누워 계신 부처님의 와상을 마주하기도 하고,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석탑을 천천히 돌며 바라보기도 했다. 유구한 불교의 역사에 심취하다가, 줄지어 있는 화려한 연등 줄 아래서 너도 나도 연등을 달고 거기 소원을 써 보기도 하는데, 마치 한국의 절에서 연등 달기 행사와 매우 비슷한 광경이었다.


그렇지, 누구에게나 소원은 있다. 그 소원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달려간다. 그럼에도 혹여 닥칠지 모르는 불행의 씨앗이 제발 비켜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한 번 기도한다.

문득 옛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소원을 말해봐’가 떠올랐다. 나도 냉큼 연등에 소원을 적었다. 가족의 건강, 딸의 취업, 그리고 그 옆에 살짝 남편의 취업도 적어 넣고, 연등을 달며 기도를 올렸다.

치앙마이에서의 기도가, 언젠가 현실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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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온순한 태국인들의 일상 속에서, 때론 오토바이 소리로 하루를 여는 아침은 생동감 넘치기도 하다가 이내 떠오르는 태양과 서서히 더워지는 열감으로 조용히 데워지는 도시이다.

길거리 다니는 자동차도 질서가 잘 잡혀 있고, 거리에 자주 보이는 외국 관광객들로 이국에 이국을 더한 도시. 짙은 커피 향과 어디든 준비된 와이파이 덕분에 디지털 노마드의 워킹 플레이스가 되는 카페들, 방금 갓 나온 쌀밥과 닭죽, 팟타이 같은 여러 종류의 볶음면이 즐비한 자판, 그 옆의 열대 과일 가게들. 집 밖을 나가면 외려 더 잘 먹을 수 있는 도시, 치앙마이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도시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서울의 한 시간을 치앙마이에서는 두세 시간으로 늘려놓은 것 같은 느긋함으로,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혹시라도 또 기회가 된다면, 나는 이곳에 다시 와서 한 번 더 푹 쉬어 보고 싶다. 치앙마이가 허락해 준 그 한 달처럼, 내 삶에도 그런 여유의 시간이 한 번 더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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