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보내는 아줌마의 리얼 라이프
근 며칠 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벌겋게 충혈된 눈, 뒤집어진 피부 가죽,
입을 벌리기만 하면 턱 끝에서 귀를 타고 한 쪽 머리가 찌릿해지는 편두통까지.
신랑은 이런 나를 두고 잠을 좀 자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을 나갔다.
사람이 잠을 못 자니 좀비가 따로 없다, 머리가 달렸다고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귀도 잘 들리지 않는 건지, 들었는데 머리가 인지를 못하는 건지, 반응도 느리다 더불어 손도 느려진다.
잠을 못 자니 생체리듬이 깨지는 건 당연하겠지...
그런데 심장이 마구마구 뛰고, 손아귀 힘도 잘 안 들어간다.
이제부턴 불면증이 아니라 어디 다른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심혈관질환이 있나?
아... 그럴 수도 있는 나이다.
뭐 근육이나 이쪽이 문제가 생겼나?
하긴 유산소만 중점적으로 하니 근력이 딸릴 수도 있겠네...
만약 다른 큰 병이 생긴 거면 어떡하지? '
문득 어린 나의 아이들이 걱정되고 내가 보험을 뭐 뭐 들었더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 운전자 보험 , 실비, 암보험까지 들었는데..
가만있어 보자... 아, 내가 여성질환은 좀 빵빵하게 든 거 같은데 심혈관은 뭐 뭐 들었더라..
근데 보장을 더 들면 보험으로 나가는 돈이 너무 부담인데... 이번 달 돈 나갈 일은 뭐 있었지? ...
아 맞다! 친정 아빠하고 시아버지 생신이 이틀 차이지 참.. 이번은 어떻게 해야 되지?
고모들한테 물어봐야지..
큰 아이는 미술학원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하고, 그럼 영어를 보낼까?
작은 녀석이 언제 뭐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뭘 사라고 했던 거 같은데 뭐였더라?....
어우... 일단 커피를 한잔하고 머리 좀 맑아지면 일을 하던 뭘 하던 하자.'
커피를 타러 가다가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손에 묻은 끈적이를 닦으러 욕실로 들어간다.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보다 얼굴에 난 뾰루지가 신경 쓰여 손톱으로 긁어보기도 하고, 뾰루지 패치를 붙였다가 뗐다가 연고를 발랐다가 닦았다가 짜는 게 낫다 싶어 양손으로 눌러 짜고선 다시 손을 씻는다.
그래놓곤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다. -> (이건 성인 ADHD 증상이라는데 불면증이랑은 상관이 없나??)
욕실에서 나온 나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 뉘었다. 푹 꺼지듯 감싸 안는 소파의 느낌이 좋아서 꼼짝 않고 앉아서 멍하니 시선이 멈춘다.
' 아!... 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지금, 청소기를 한 번 돌린 다음 걸레질을 하고, 밥을 안쳐 놓고 오이를 잘라서 소금여 절여놓고 양파를 사러 나가야 되는데... 그래야 저녁에 오이깍두기에 애들 밥을 먹일 수가 있는데, 뭐 하냐 지금'
얼른 엉덩이를 떼고 청소기를 잡는다. 의자를 빼고 신랑이 아무렇게나 막 벗어놓은 양말을 집어서 세탁기에 가져다 놓고, 소파 밑을 들여다보며 작은 녀석이 미쳐 치우지 못한 장난감을 끄집어 낸다. 신나게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면 이따금 딸내미의 방쯤에서 청소기가 미쳐 빨아들이지 못한 끈적한 스티커 자국이나 슬라임 자국에 잠시 빡이 치지만 후딱 물걸레를 가지고 와 잽싸게 닦아놓고는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진다.
뭐 하나 끝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소파에 잠시 앉아 쉬다가 슬쩍 노곤해져 고개를 살짝 기대면 눈이 자동으로 감긴다. 그렇다고 깊이 자지도 못하고 금세 혼자 놀라서 깨곤 또 가슴이 두근두근해대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두고 버둥버둥 거린다.
'얼른 신발을 신고 나가자!
아! 나가기 전에 뭘 하려고 했더라?
청소기는 돌렸고, 걸레질도 했고, 나가기 전에 뭘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뭐였지??
일단 기억이 안 나네.. 나가서 뭐 사야 되지? 양파하고... '
나가는 길에 보이는 강아지 응가를 치우려 휴지를 찾고, 탈취제를 뿌리고 새로운 배변패드를 깔아주고 녀석이 따라 나오지 않도록 간식을 챙겨서 시선을 돌렸다.
그 와중에 장바구니를 챙기고 내 카드보단 신랑의 카드를 챙겨 나오기까지 한다.
'좋았어!'
그리곤 신나게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해서야 항상 알아차리는 부분.
'아 맞다! 계란 안 샀네?! 깨질까 봐 마트 나오는 길에 들고 오려고 했는데 또 잊어버렸네...
아... 면봉도 안 샀네... 이건 산다 산다 해놓고 맨날 잊어버리네..
하....집에 액젓이 하나도 없네...'
결국은 마트에 두 번이나 행차를 하시는 일이 다반사라 면봉이나, 밴드, 소독약 같은 작은 생활용품은 사야 하는 그 순간 그때그때 쿠팡을 이용하게 되는데 이런 식이라면 꼭 듣는 소리가 있다.
" 소비요정 000씨!, 또 뭘 이렇게 사셨을까? 쿠팡맨이 매일 오네"
" 엄마 또 뭐 샀냥 ~! "
이것들이 뭘 안다고!!!
매번 당당하지만 스스로도 꼼꼼치 못하여 한 번에 장을 잘 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혼자 반성도 해보고
어떤 건 마트보다 싸거나, 우리 집 앞 마트에 없거나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며 스스로 합리화하지만 사람인지라 눈치가 보인다.
'남들은 메모도 안 하고 장만 똑똑이 잘 만 보고 사는 거 같은데
왜 나는 맨날 잊어버리고 빠뜨리고 마트를 두 번 세 번 가는 건지...
나 혹시 치매 이런 건가??'
어느새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신랑을 보며 깍두기를 버무리는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반찬을 다 올리고, 밥을 푸는 순간 알아차렸다.
'앗! 마트 나가기 전에 밥 안치고 나간다 하고 깜빡했네... '
새로 취사 버튼은 눌렀으나 허기진 아이들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못하여 밥이 되고 있는 순간에도 과자며, 빵이며, 젤리를 쉼 없이 까먹고 또 먹고...
'00가 맛있는 밥을 완성하였습니다!"
" 엄마 난 밥 안 먹을래! "
" 나도! "
' ....... '
내 잘못이지...
난 한다고 하는데, 그 타이밍이라는 게 그게 참,,
그렇다고 목에 내가 알람을 걸어놓고 살 수도 없고.
밥이 늦은 탓에 안 먹는다는 아이들을 뭐라고 할 수 없어 신랑하고 둘이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신랑은 맥주 한잔하잔다.
' 그래, 그래도 내가 이런 거에 위안을 얻지, 이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사나 '
싶은 마음에 참 고마운데, 맥주를 따라주고 양말을 벗는 그 사람에게 시선이 멈춘다.
!!!!!!!!!!! (좀!!!! 빨래통에 좀!!!!!)
"이따가 내가 치울 거야."
하....
치우겠지.... 생각이 나면, 이렇게 벗어두고 잊어버리면 내가 하는 거고, 난 그렇게 10년 넘게 하고 있고!
엄마 아빠 오붓하게 맥주 한잔할 시간 벌어주느라 작은 놈은 장난감을 죽 늘어뜨리고 놀고,
큰 애는 콧물 같은 슬라임을 방바닥 여기저기 덕지덕지 묻혀가며 좋단다 ㅎㅎㅎ
한 잔, 두 잔 넘어가는 맥주에 맥을 못 추고 먼저 잔다며 들어와 누웠다.
좀 쉬라고 뉜 머리는 뭐 할게 그리 많은지 생각을 멈추질 못한다.
' 나 오늘 글도 못썼는데 '
' 이번 주까지 자격증 기출문제도 끝내야 하는데, 또 밀리겠네.'
' 회사에 출근하면 뭐 먼저 해야 하더라?... '
' 아 공모전 마감이 7월 언제 까지더라? '
' 그나저나 주제는 뭘 쓰지?... '
' 작은 놈 행사가 언제라 그랬더라? '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눈을 뜬 나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또 오늘과 같은 내일을
every day!
환장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