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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Jul 12. 2024

B급이 좋아!

A에서 B로 넘어가는 시간...






나는 B급이 그렇게 좋더라.

세일하는 B급 상품, B급이지만 상태 좋은 어떠한 것들... B급 감성 영화나 개그들까지.

 A급, 특급이면 훌륭했겠지만 인생사 어떻게 매일 A급만 쓰고 지내고 즐기며 좋기만 한 인생만 살 수 있으랴!

매일 만나는 사람들도, 매일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들도, B급 C급 일들이 더 많고, 

그런 일상들을 처리하다 한 살 두 살 먹어가니 그냥 이런 게 리얼 인생인가 싶다.

그래야 A급을 A급이라고 훌륭히 인정해 주는 기준도 생기는 거고

내가 만난 오늘의 일들이, 사람들이, 상황들이, 내가 툭 하고 던진 B급 감성 유머 한마디에 깔깔하고 터지는 즐거운 시간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다들 B급 감성에 열광하지는 않치만서도 망해 없어져 버리지도 않고 잔잔히 스테디셀러처럼 저변에 깔려 있는 거지.


내 인생이 B급이 되는 건 싫지만, 남들이 보는 나는 B급이려나?

A급은 아니지만 나쁘지는 않은, 딱히 A급으로 올라보고자 애를 쓰고 달려들진 않아도 나름대로 괜찮은 상태.

내 개인적인 만족.








아이들 밥을 먹인 저녁시간, 늘 지내던 루틴대로 셰이크를 타서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실내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굴리며 들을 음악 리스트를 고르고 있는데 문득 내 낡은 자전거가 달리 보였다.

2016년 16만 원을 주고 사서 한동안은 화분 받침대로, 또 한동안은 옷 걸이개로, 또 한동안은 가방걸이 내지는 운동하는 사람의 집처럼 보이는 인테리어의 소품으로 쓰이던 내 자전거...

해도 많이 받아 노랗게 빛바랜, 손잡이 스펀지도 많이 낡아 바스라지는 상태로 먼지도 뽀얗게 앉고, 팔 운동하라고 달려있던 와이어는 탄력을 잃어 운동기구의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

그냥 딱 묶여져 올려져 버린 모습.

"너도 많이 낡았다...."

2년 반 전에야 살을 빼 보겠다며 무작정 페달을 굴리던 때, 그때도 이 모습이었나?

지금이랑 달라봐야 얼마나 다른 모습이었겠나... 

겨우 15분 타고 죽을 상을 쓰던 그때는 자전거 보다 살찐 나의 허벅지가 먼저고, 팔뚝이 먼저고, 앉아있으면 층층이 접히는 내 뱃살만이 내 시선에 가득했겠지.

그 낡아 빠진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굴려 20kg을 빼고 나서야, 이제서야 자전거가 보인다.

A급 상태일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화분이나 올려, 옷으로 덮어놔. 하나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 

노랗게 빛바래고 난 이제야 보인다.

당근으로 자전거를 팔고 새것으로 바꿔볼까 싶은 마음이 들어 검색을 해보니,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자전거가 내 자전거 보다 상태가 좋았다. 간혹 보이는 내 자전거와 비슷한 상태의 자전거는 B급으로 취급되어 아주 저가에 올려놓거나 나눔을 하는 형태로 처리를 하는 듯했다.

기능이 많거나 비싸 보이는 자전거들도 눈에 띄긴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자전거는 간결하지만 딱 자전거를 타는 기능만 있었고 나름 나쁘지 않아서 심플한 자전거만 찾아보다가도 어느 순간  '무슨 기능', '00년도 구입 상태 좋음' 이런 물건만 들여다보다가 결국 못 정하겠지 싶어 그냥 두었다.










오랜 나의 자전거를 본 신랑이 자전거를 바꿔 주겠다고 했다.


" 해 있는데 둬서 스펀지도 삭았잖아"

" 뭐가 좋은지 알아봐! "


막상 사놓고 안 탈 듯했는데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뀐 걸까?

작년에 지나가는 말로 자전거를 바꿔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막상  말을 던지는 나의 마음은 

바꿔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였다.

막상 좋은 거 사달라고 해볼까 싶은 마음에 던져 봤고,

어떤 거 사달라고 해볼까 싶은 마음에 알아봤지만, 뭐는 즈위프트가 되고, 어떤 제품은  안장이 좋고, 

어떤 것은 자리 차리를 하고,  어떤 것은 흔들림이 있고 어쩌고저쩌고... 

다들 나름의 우선을 기준에 두고 장단점에 대해 떠들어 대느라 넘쳐나는 정보들에 질려서, 이렇게 머리 싸매고 바꿀 바엔 


' 나는 그냥  지금 거 탈란다' 였다.

 

오늘은 아주 적극적이게도  검색을 하면서 알아봐 주는 신랑의 모습이 보인다.

헐렁한 티 하나만 입고 벌러덩 누워서 손바닥만 한 핸드폰을 들고 참 열심히도 알아본다.

이것저것 비교에 집중을 하느라 쭉 나온 입모양도 웃기고 

가끔 손가락으로 머리도 긁적인다.

이 아저씨 꽤나 적극적이네 싶다가 작년보다도 조금 더 비어 보이는 정수리를 보면서 

이 사람 내 옆에서 10살 더 먹더니 아저씨 다 됐네 싶었다.

'당신 참 젊고 멋진 남자였는데."


그리고 느닷없이 알았다.


작년 내가 자전거를 바꾸지 못한 이유를...


새것보다는 쾌쾌한 냄새가 나도 내 손때 묻은 내 것이 좋고,

새 자전거를 들이고 나서 길을 들이려면 또 낯가리는 시간이 있을 거 같기도 하고 불편하지  싶기도 하다

A급일 때 못 알아봐놓고  처박아두더니 이제 와서 타는데도 고장한 번 안 나준 고마움도 있고,

무엇보다 옆에서 A급 -> B급으로 변했을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




그렇다고 우리 신랑이 B급은 아니다.

늘 나한테는 특 A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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