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by 큰 숲



지나고 보니 아까운 게 많아진다.

지나고 나니 그땐 몰랐던 순간이 이제야 보인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사진첩을 열어보는 순간

오늘 내로 못 나오고 내일 나온다는 그 말이

좋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28살 나와 몰려다니던 또래 친구들 중 내가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제일 먼저 아이의 부모가 되고, 제일 먼저 경력단절과, 워킹맘을 겪었다.

결혼을 제일 먼저 한 터라, 결혼 후 겪을 수 있는 일의 수순은 늘 내가 먼저 겪었다.

때문에 무슨 일을 겪을 때 터놓고 의논을 할 또래 친구가 없었다.

임신, 출산, 육아, 경력단절, 재취업 등.

나의 순간은 늘 나름대로 치열하고, 아득했으며, 간절했고, 숨이 가빴다.

또래 보다 조금은 빨랐던 시작으로 인해 삶의 템포가 반박자 정도 빠른 삶을 살았다.


내 아이 10살, 내 친구 아이는 이제 갓 돌쟁이.

친구의 아이를 보니 그 시기에만 보이는 특유의 모습이 예쁘다.

한창 육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친구는 초췌한 모습으로 아이의 손을 닦이고, 침을 닦아주고

코를 풀어주고, 식사를 챙기느라 너무 지쳤다고 했다.

제일 예쁠 때라고 하니 데려가서 좀 키워 달라는 장난기 섞인 투정이 돌아온다.


" 진짜다 너 나중에 봐라, 지금 크는 것도 아깝지. "


" 지금 당장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해, 24시간 시중들다 하루 끝나. "


그렇지,

나도 그랬지.




" 근데 있잖아, 지금 보면 너무 그리워"




지금은 내 옆에 누워 잠들지 않는 10살 큰 딸에게도,

엄마가 옆에 붙어있지 않으면 불안해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게.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아기 분 냄새가 났었던 그때가.



지금은 쌀쌀맞은 대문자 T 성향을 가진 아가씨가 다 됐지만

4~5년 전에는 툭하면 귀여움을 보여주는 애교 쟁이었고




어찌나 잘 웃어 줬었는지, 저 웃음 하나 보려고

몸에 좋지도 않은 간식거리를 자주 사줬었던 기억이 나.

지금은 코미디 프로를 보거나 자기 친구들과 놀 때 좀 웃어주려나?




아무 맥락 없이 박스만 있으면 그냥 무조건 들어가 앉아있는 순간도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귀여웠던 것 같아.

지금 시크한 10살 언니한테 박스에 들어가 보라고 하면

내가 왜 들어가야 하냐고 이유를 말해 달라고 하겠지?




이 순간은 정말 기억에 남을 거 같아서...

이젠 둘째가 많이 커 버려서 첫째가 저렇게 안아 줄 수도 없지만

지금은 10분에 한 번씩 싸우거나 같이 놀이를 하는 걸 볼 수 없는 사이라...



아이 둘을 동시에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이 귀엽다기 보다,

아악! 하는 소리가 먼저 나가더라..

어떻게 얘를 닦이고, 어질러진 자리들은 또 언제 치우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

저 때 해 먹은 로션만 몇 개 더라...

근데, 그 로션 값이 아깝기 보다 그냥 이때가 그립다니까?




대체 왜 저기 들어가서 저렇게 응아를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던 순간이라 사진을 찍어뒀었는데,

지금은 이런 순간이 다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응아하는 아이 있는 화장실 문 노크만 해도

왜!

버럭 하는 반응이 오거든.



갈수록 남자아이가 되어가는 둘째는

애착 인형으로 자기 몸집보다 큰 코끼리 인형을 들고 다녔었는데...

이제 인형 든 모습을 보려면,

자기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로 들고 가는 모습 정도나 볼 수 있을까?



몇 개 째인 지 모를 로션을 또 해먹고는

혼나기 전에 지레 겁먹고 먼저 울음을 터뜨리던 아기였는데,

지금은 해가 쨍쨍 한 날에도 로션 따위 바르지 않고 뛰어나가 노는 상남자가 되어가는 중이야.

뽀얗고 뽀동했던 말캉말캉한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겠지.



기저귀 찬 느린 걸음으로

아빠의 엉망진창 기타 소리에

엉거주춤 춤추던 저 모습이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잖아 ..

너무 그립고 예쁜 모습이었더라.

한창 사진첩을 들여다보니까

너무너무 아까웠던 순간들인 거야

아이들 커가는 모습이.

그래도 사진이 있어서 감사하고 다행이다

하고 있었는데,

또 보이는 게 있더라고,



앳된 아이들 아빠.

기껏 10년 안짝이니 무슨 많은 차이가 나겠나 했는데

아니더라,

지금도 입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인데,

피부색이며 웃을 때 잡히는 근육 모양도 변했더라고.

매일 보는 사람이니 느끼지 못했던 거지.



우리 친정 아빠도....

얼굴 주름이며, 팔 피부며 손 주름도

10년 새 많은 변화가 있더라고,

젊으셨더라고....

너무 애들 크는 것만 봤나? 하고 다시 넘겨 봤다니까?

애들 아빠 젊었던 모습엔 웃음이 났는데

친정 아빠 젊었던 모습엔 마음이 찡하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10년 전의 나...

사진첩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내 사진은 몇 장 없더라...

애 낳고 나서는 살도 찌고, 화장도 못하고,

예쁜 옷도 못 입고

무엇보다 잠도 못 자서 초췌한 몰골에

일단 내 생활이 없어지니까 내 사진이 없더라

혼자 찍은 사진이 없어.

아기 잡아주느라 찍힌 거, 안고 있느라 찍힌 것들뿐.


이 사진도 어디 단체 모임 갔다가 집에 돌아오던 날

아이 아빠가 나 바람 쐬어 준다고

놀이공원 데려갔던 건데

아주 오래간만의 외출이라 많이 신났던 기억이 나.


나중에 애들 크면 가야지 했는데.

저 때 사진하고 지금 찍은 사진 보면

많이 다르더라.


아기 사진 찍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내 사진도 찍어 둘걸.

예쁘게 나오고 말고를 떠나서

안 꾸며도, 안 예쁜 상태에서 찍어도

저 나이만의 모습이 있다는걸.

지금에 와서야 알겠더라고.


꾸민다고 예쁜 거 말고.


그러니까,

친구야, 너는 아이 사진만 많이 찍지 말고.

네 사진도 많이 찍어.

살이 찌건, 화장을 안 했던.

준비된 모습 말고도.

그 아까운 시절의 너를 많이 찍어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