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수록 커지는 꿈
난 꽤 운이 좋은 사람이다. 화가가 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세월 나는, 하늘이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다. 신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돌아가며 행운을 나눠줄 텐데, 혹시 실수로 내 이름을 명단에서 빠뜨린 건 아닐까 의심했다. 아니면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듯,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 행운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걸까 싶어, 부지런히 살려고도 해 봤다. 일찍 일어나려고 애썼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무언가라도 하려 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외로웠다.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자신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배웠고, 매일 그렸다. 무언가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사실, 퇴근하고 작업하기에도 빠듯한 하루였다. 그러는 사이에 행운이 하나씩 찾아왔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중에 공모전에 당선되어 틈틈이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페어에 참가할 기회까지 생겼다. 첫 번째 개인전을 열기도 전에 말이다.
아트페어는 미술품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국내외 갤러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해외에는 바젤, 프리즈 같은 유명 아트쇼가 있고, 국내에도 키아프(KIAF), 화랑미술제, 아트부산 등이 열린다. 그중 나는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 이하 바마)에 참여하게 됐다.
갤러리는 아트페어에 참여하기 위해 심사를 거쳐야 하며, 승인을 받은 후 작가를 섭외한다. 갤러리에서 내게 참여를 제안했다는 건, 내가 만든 창작물이 미술 시장에서 통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과연 사람들이 내 그림을 좋아할까? 고민하던 때에, 아트페어 참여는 화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회로 다가왔다.
코엑스나 벡스코와 같은 대형 홀에서 수백 개의 갤러리와 함께하는 아트페어 준비는 의외로 간단했다. 갤러리가 모든 준비를 도맡아 해 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저 출품작을 잘 준비하면 된다. 계약서를 쓰고 나니 기간이 3개월 정도 남았었다. 시간이 부족해 준비된 작품으로 계획을 세우는 중에, 매년 4월 개최되던 바마는 코로나19로 인해 여름으로 연기되었고, 덕분에 신작을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자꾸만 운이 따른다.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출품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사진을 촬영하고, 액자를 맞추며, 캡션과 작가노트를 정리한다. 특히 아트페어처럼 한정된 공간에 다양한 미술품을 보여주는 자리라면, 배치도까지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 같은 부스를 쓰는 작가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내 것이 돋보이게 만들어야 했다.
부산의 여름은 뜨거웠다. 해운대가 부르는 유혹을 뿌리치고 벡스코로 향했다. 입구에는 미술품 운반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조명기구, 사다리, 포장지를 풀어내는 손길들이 분주했다. 우아하게 진열된 전시 공간과는 사뭇 다른, 생생한 준비 현장이었다.
지정된 벽면에 캔버스를 풀고 배치를 마쳤다. 마지막까지 위치를 조정하며 어떻게 하면 더 보기 좋은지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전시 관계자들은 청바지와 운동화를 벗고 단정한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관람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긴장이 확 밀려왔다.
부스 안에는 쉴 틈 없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전시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한데, 누구라도 내 그림이 있는 부스 앞에서 발길을 멈추면 마치 내가 전시라도 된 듯 얼어붙었다.
처음 참가한 바마는 초보 화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트페어도 여느 전시회처럼 미술을 관람하는 일종의 나들이 코스라 여겼는데, 확실히 미술관 전시와는 달랐다. 아트페어는 선택을 위한 무대였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자신만의 보물 찾기를 하듯 취향이 맞는 부스를 방문해 천천히 둘러봤다.
내 또래 혹은 더 젊은 컬렉터들이 출품작을 유심히 살피며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전시장은 컬렉터들에게 작품의 매력을 전달하려는 열기로 뜨거웠다. 작가와 대화를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숨고 싶었지만, 이 시간을 위해 달려온 모두를 생각하면 그럴 순 없었다. 누군가가 내 작품을 소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화가로서 책임감을 느꼈고, 작업을 통해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으로 준비하는 페어는 서울아트쇼다. 서울아트쇼는 오랫동안 꿈꿔온 무대였다. 매년 연말이면 관람객으로 찾았던 아트쇼였는데, 이제는 어엿한 작가가 되어 전시장에 서게 된 것이다. 처음 미술을 시작할 때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음엔 어떤 행운이 찾아올까?
서울아트쇼를 마치기도 전에 벌써, 다음 행운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서울아트쇼와 개인전만 하면 화가로서 여한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자꾸만 꿈이 커진다. 내 작품이 사랑받아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면, 언젠가 키아프나 화랑미술제 같은 권위 있는 아트페어에도 초대받고 싶다. 더 먼 미래엔, 해외 아트쇼까지.
점점 커지는 욕심에 스스로도 놀랍다. 내가 이렇게 꿈 많은 사람이었던가? 더 소름 돋는 건, 꿈을 매일 꾸다 보면 이루어진다고 믿는 자신이다. 행운은 덤이다. 계속해서 그린다면 하늘은 결코 나를 잊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