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이태원에 있었다
망설였다. 이 글을 쓸까 말까, 혹여 이 글이 누군가의 아픔을 건드리는 건 아닐지. 어제 꼬박 하루 자다가 깨어났다가, 우울했다가 떨기를 반복하다가
그저 기억하기 위하여, 또한 애도하기 위하여 글을 쓴다.
29일 저녁 8시 30분, 녹사평 역에 도착했다.
할로윈 코스튬과 분장으로 화려한 이들과 곧 마주하게 될 이벤트의 밤을 고대하며 들뜬 이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녹사평에 내렸을 때, 잠시 뒤로 돌아 내가 내린 열차 안에 그대로 타고 이태원으로 향하는 이들을 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화려하고 들뜬 상태로 흘러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 홀로 탈출한, 내린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생애 처음으로 할로윈 축제 분위기를 즐겨보겠다고 이태원에 간 날이었다. 당초 약속은 이태원 역이었는데 사람이 많을 거 같다고 친구가 녹사평 역으로 약속 장소를 옮겼고, 나는 여전히 들떴지만 조금은 한가로운 그 역에 내려 조금 늦는 친구를 기다렸다.
역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역 안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분주했다. 오징어 게임 코스튬을 입은 외국인도,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얼굴에 분장 스티커를 붙인다고 분주한 20대들도 보였다. 저승사자 옷이나 흰 소복을 입고 걸어가는 이도, 얼굴 전체를 좀비 분장한 이들도... 모두 오랜만의 축제에 들떠 있었다.
루프탑 술집에서 간단하게 피자와 와인을 한 잔 하고 2차로 옮겨갈 생각이어서 좁고 긴 골목길을 구비구비 올랐다. 좁고 구불한 골목을 따라 여러 상점들이 즐비한 곳이라 더 비좁았지만, 메인 스트리트에서 좀 벗어난 곳이라 다닐 만 했다. 들뜬 기분으로 루프탑 술집에서 수다를 떨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하자며 포토존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다가 2차를 가겠다고 나갔을 때가 저녁 10시 30분.
우리는 이태원 역 쪽으로 넘어가서 펍 형태의 클럽에 갈 생각이었다.
대로를 따라 걸을 때 무수한 사람들과 마주했다.
길거리에 앉아 가볍게 술 한잔에 안주를 걸치는 사람들, 코스튬을 입고 살짝은 술 취한 채 흥겨운 사람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페이스 페이팅을 받고 있는 사람들, 코스튬 복장을 입고 부모님을 따라온 듯한 아이, 춥지는 않을까 걱정될 만큼 얇은 옷을 입고도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청춘들도 보였다.
들뜨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어 클럽이 있던 쪽으로 가려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보여서 우리는 발길을 잠시 돌렸다. 원래 가려던 클럽의 1호점으로 가서 잠깐 있다가 다시 그쪽으로 갈 생각으로.
적당히 맥주를 먹으며 춤추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얼마쯤 있었을까... 바람 쐴 겸, 클럽 골목은 어떤가 분위기도 살필 겸 일행들과 잠시 바깥으로 나갔다가 기이한 풍경을 목격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그 골목에 사람들이 한가득 모여 있는 거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만 그 골목이 있는 위치였는데 그 골목으로 통하는 길을 비워두고 양 옆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모여서 걱정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 사이로 들것에 실린 이들이 하나 둘 실려 가는 게 보였다.
- 의사, 간호사, 의사, 간호사!
할로윈 코스튬을 입은 한 남자가 절박하게 외쳤다. 그 와중에도 골목에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퍼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다. 우리 역시 무슨 일인지 모른 채로, 어느 클럽에서 사고가 난 건가 추측할 뿐이었다. 저 골목 쪽에 분명 무언가 사고가 있었나 보다... 저리로 가면 안 되겠다 하고 다시 펍으로 돌아갔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3-4명 정도 다친 사고 정도라고 생각했다. 머릴 감싸고 실려가는 사람이 있어서 칼부림이라도 난 거 아니냐고 수근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클럽이나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건가...하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다시 펍으로 돌아와서는 짐을 챙기고, 그 골목을 떠났다.
무서운 기분에 좀 더 조용한 곳에 가서 한잔만 더하자고 하고 이동했는데 그때부터 하나 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엄마로부터, 다음엔 친구가, 그 다음엔 또 나에게 또 다른 친구가... 압사라고? 뉴스 기사를 최신순으로 찾아봤지만 그때까지는 별다른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질 않았다. 단신처럼 몇 개 기사만이 떠 있을 뿐이어서 여전히 노랫소리로 가득한... 사고 현장에서는 꽤 떨어진 펍에서 우리는 영문을 모른 채 앉아 있다가 자꾸만 무섭고,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서 빠르게 자리를 파했다.
후다닥 짐을 챙겨서 택시를 타겠노라고 대로변 가까이 갔을 때서야 알았다.
도로가 전체 통제되어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무섭도록 울렸고, 살면서 본 중 가장 많은 구급차들이 대로변에 세워져 있었다. 바삐 달려가는 소방대원과 "여기 사고현장입니다!" 외치면서 사람들을 막아서는 경찰과 우리처럼 그 광경에 놀라 얼어 붙어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대로변에 서 있었을 때가 0시 30분 정도 되었을까... 다시 일행들에게 걸려온 친구, 지인, 가족들의 전화를 통해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알았다.
그 이전에 보았다. 들 것에 실린 채로 실려와서 구급차에 태워지는 사람들의 축 늘어진 다리와 팔에서... 생명을 잃어 흡사 마네킨처럼 보이는 모습에서, 모포로 얼굴이 다 덮여진 채로 계속 계속 오는 그 모습이 이미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 무슨 일이야, 대체 몇 명이나... 여기 빨리 벗어나자...
꼭 울 것만 같아서, 더더욱 정신줄을 꽉 잡아야 할 거 같아서 우리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잡아 탈 곳을 만나기 위하여 지도 앱에 의지해서 삼각지역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사이렌이 계속 울려 퍼졌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삼각지로 가면 괜찮을 거야, 같이 이야기하며... 괜히 다른 화젯거리를 꺼내면서 삼각지로 걷는 동안 우리와 같은 이들을 많이 보았다.
통제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사이드의 인도를 따라 많은 이들이 터벅터벅 걸었다.
삼각지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 널브러 앉은 이들과 버스 정류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차를 기다리는 이들, 무언가 넋이 나간 듯한 이들을 보았지만 택시는 잡기 어려웠다. 가게 문들은 다 내려가 있었고, 우리는 또 다시 숙대 입구로 향했다.
숙대 입구 역으로 가까워질 수록 문을 연 가게들이 하나씩 보였지만, 택시는 여전히 잡히질 않았다. 버스를 탈 만한 다른 곳을 찾아나서는 일행을 보내고 친한 언니와 나 둘이 남아서 일단 새벽까지 하는 술집에라도 들어갈 작정으로 열어 있는 술집들을 돌아다녔다.
몇 번의 거절 끝에 2층 술집으로 갔을 때, 한숨 돌리며 자리에 앉았을 때 가게 TV를 통해 처음으로 보았다.
59명이 죽었다고 했다.
너무도 놀란 상태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어떻게든 거길 빨리 벗어나자는 일념 하나로, 무조건 안전한 곳이나 따듯한 곳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해 있던 몸이 축 풀어지면서 서글프게도 배가 고팠다. 2차 먹을 생각으로 간단하게 1차를 먹었을 뿐, 2차에 가서도 거의 뭘 먹지 못한 탓이었다. 간단한 안주와 맥주를 시켜 TV를 보는 동안에도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계속 늘어갔다.
믿을 수 없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현실감이 없어서 친한 언니와 나는 말을 잃은 채로 기사들만 찾아봤고 그 와중에도 지인들의 연락을 받았다.
술집 영업이 끝나는 새벽 4시까지도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버스 첫차라도 타러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의 첫 차 영업 시간이 거의 1시간 넘게 뒤로 밀려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심정으로 택시를 여러 번 호출해보다가 겨우 한 대 잡아서 언니 집으로 함께 향했다. 우리 집이 너무 멀리 있어서 같이 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쩐지 각자 혼자 자면 안 될 것 같았다. 지친 상태로 눈을 잠깐 감았을까 2시간 기절하듯 자고 일어나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마치 커피 3잔은 마신 것처럼 온 몸이 각성된 상태였다.
더는 보면 안 될 거 같은데 누운 상태로 사고 기사 소식을 계속 찾아보다가 일어나 언니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놀란 상태로, 대체 무슨 일이었나.. 찾아보다 보니 사고 현장이 불과 3분 거리에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려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보여서 발길을 돌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만약 약속장소가 녹사평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2차 술집을 찾던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그곳에 있었을 거였다.
불과, 한 순간, 한 찰나,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온 공기를 울리던 사이렌 소리와 실려가던 이들과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 무수한 구급차와 경찰관들까지... 너무 무서웠다. 일부러 다른 이야기들을 섞어 하며 해장국까지 시켜서 나눠먹고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서로가 있어서 너무도 다행이다.. 말하면서 언니는 볼 일이 있어서, 나는 집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나사가 하나쯤 빠진 기분이었다. 우리는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쳤고, 길을 헤매었고, 개찰구를 잘못 보았으며, 지하철로 갈아타서도 순간순간 멍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가족들과 통화하고, 이상하게도 내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던 친척 언니와 통화까지 다 마친 후에 쓰러져 잠들었다.
어제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계속 잤고 오늘에서야 겨우 기력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멍하다. 마치 꿈 같은데 꿈이 아니어서 너무도 복잡하고 심란하다.
꼭 대구 지하철 참사 때처럼... 울리던 전화 벨 소리, 누군가와 통화하던 엄마의 말소리와 거실 텔레비전에서 계속 나오던 뉴스와 부모님의 심각한 표정이 아직 생생하다.
그날 내가 너무도 많이 울어서 부모님은 우리 세 남매를 안방으로 들여 보냈다. 그때는 안방에도 오래된 TV가 한 대 있었는데 몇 시간이고 웅크려서 동생들과 투니버스를 보았다. 무슨 일인 건지 부모님과 함께 TV를 보아야만 할 거 같았는데 무서워서 방문은 열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날 전화기 너머에서 날 다독여주던 할머니도 이제는 먼 곳에 계신데, 꼭 그날의 어린 아이가 된 것마냥 나는 무섭고 또 무섭다. 어쩌면 나였을지도 몰랐다는 생각과 황망한 현실과 그날의 기억이 뒤엉켜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복잡하기만 하다. 마치... 그곳에서 살아나온 것 같다는 생각에 더 기분이 이상하다.
택시를 타고 언니의 집으로 다가서던 그때, 딱 한 블록 정도 남겨두고 차창 너머로 걸어가는 이들을 보았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하고 굳은 채로 걸어가는 세 명의 사람과 일별했다. 분명 누군가의 비보를 들었을 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안전하고 따듯한 집으로 향했다.
미안하다.
복잡한 심경으로, 묵직한 마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한동안 이 기억을 품고서 살아갈 것 같다. 오늘의 글은 지금껏 이곳에 쓴 글 중에 가장 정돈되지 않은 글일지도 모른다. 허나, 쓰고 싶었다. 써야만 할 거 같다는 생각에 한 자 한 자 정신 없이 썼다. 한 며칠 동안은 어느 순간 멍해질 지도 모른다.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다가도 그 사이렌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여전히 대구에서 1호선을 탈 때마다 무서워하고, 시내로 나갈 때면 꼭 반월당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것처럼 무언가가 남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내 하루를 천천히 만들어가게 될 거다.
하루 종일 누워 있던 어제를 털고 오늘 일어나 책상 앞에 앉은 것처럼.
어제 언니 집에 나와서 함께 걸으며 하늘이 너무도 화창하고 날이 좋아서 잠시 말을 잃었다. 오늘 이 글을 쓰며 바라본 창 밖도 여전히 따스하고 맑고, 밝다. 어떻게 글을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그날을 기억하고 오래 애도해야 하겠다.
미안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