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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Aug 03. 2023

'괜찮은 척'까지 해야 하나요, 참고 버티기도 힘든데?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앞서의 포스팅에서 썼다시피 나는 그닥 살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스스로 죽을 용기가 없어서, '뭔지 알 수 없지만' 미련 같은 게 남아 있어서 떠나지 못했을 뿐이다.



전교권에서 놀았던 나는 스트레스가 대폭발하면서 성적이 수직하락했고,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에 여기 올인한다고 나를 몰아세워 문창과 수석 입학까지 했으나 이미 '나락'이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명문대생이 아니었고, 대기업에 간 것도 아니고, 전문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며, 미래 비전도 딱히 없는 '불확실하고' 지리멸렬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발버둥쳤다. 내가 한 선택 중에 후회하는 건 없다. 매 순간 그 시점의 최선을 선택을 했기에 후회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혼자 몇 명분의 일을 하며 나를 갈아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 일에 있어서는 미련도 없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는 말을 매번 들었고, 남의 일을 수습해줬으며, 주로 수습한 것에 대한 대가는 없었고, 본래 사람이란 100번 잘해주다가 1번 못해주면 그 1번으로 욕하는 종족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불공평했고, 억울했고, 울적했지만 별 수 없었다. 인간 세상을 이루는 대다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32년간 살아오며 내가 놓쳤던 건 '나'에 대한 사랑과 존중과 이해다. 나는 늘 달려야 했고 바뀌어야 했고 앞서 나가야 했기 때문에 내게 있어 나란 존재는 언제나 부족한 아이였다. 오늘 종이에 잠시 글을 써봤는데, 쓰잘데기 없는 일과 사람에게 '신경끄기' 연습을 하고 있어서 적어본 거였다. 남들은 성실히 일하기, 열심히 살기를 다짐할 수도 있겠지만(아닌 사람도 많다) 나는 반대다.


1. 타인에게 신경끄기

2. 오해하도록 내버려두기  

3. 성실하게 노력하지 않기

4. 내게 해주는 만큼만 하기

5. 불편한 시간을 버텨내기

6. 망하는 꼬라지를 지켜보기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나는 내 사람, 내 팀, 내 가족이라는 '우리' 의식이 강한 편이라 팀원이라 생각되면 알게 모르게 참 많이 챙겨줬다. 근데 그 '챙김'도 그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지, 그 '챙김'이 너무도 당연한 사람에게는 해줄 이유가 없다.


또, 누구나 그렇겠지만 오해 받는 게 싫어서 매사 더 성실했다. 근데 100번 잘해도 1번 못하면 욕 먹는 판에... 자기들이 오해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할 순 없다. 이제는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애쓰면 시간과 에너지가 들고, 딱히 해소되지 않으며, 지칠 뿐이다. 특히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편인데 대부분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망하는 꼬라지를 지켜보는 불편감,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기류를 나는 이제 좀 멍하니 지켜봐야 한다. 본래 딱 보면 망할 것이 보여서 망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하고 아이디어도 냈는데 별로 쓸모가 없다. 그렇게 해서 망한 들 그 사람은 잘리지 않으니까 '망하는 게 뭐?'라는 반응인 거다. 대다수가 그렇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사람이란 게, 기본 세팅값이 있어서 진짜 최선을 다해 대충하려 했는데도 또 노력해버렸다. 글쎄, 성실과 노력이란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적어도 회사에선 아닌 거 같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손해다. 남탓하는 사람이 승자다. 그들은 오래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들의 뒤치닥거리를 하던 사람들이 다 나가떨어지고 탈주하는 동안에, 힘 들인 일이 없으니 남아 있을 수 있고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뭐든 '대충' 하면 되잖아! 가 된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대충'이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대충하려고 한다 한들, 에너지가 든다. 최소한의 에너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이 필요하고, '대충'하는 사람은 그만큼 구멍을 많이 낸단 소리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엄한 사람을 고문시킨다는 걸 모른다. 당연한 거니까. 딱히 화나지도 않고, 오히려 이젠 걸리적거린다. 그런데 내가 왜 이 글을 쓰게 됐냐면... 그 모자란 것을 내버려두고 기꺼이 내 일을 늘려서까지 일을 되도록 하는 사람에게 자기들에게 '잘' 대해주기까지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살고 싶지가 않다. 왜냐면 뭔가 노력하면 할수록 엉망진창인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살면서 단 한번도 대충 살았던 적이 없다, 언제나 전쟁터 같아서 긴장하면서 살았다. 그런 업종이기도 했지만 나는 3-4인분의 일을 혼자 도맡아 했고 크로스체크해줄 사람도 없어서 내가 구멍 내면 완전 구멍이라 기를 쓰고 정신 차리면서 살았다. 그 결과, 구멍 낸 적 없고 남들의 구멍을 찾아주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남은 건 내게 병밖에 없고, 이딴 소릴 듣는 것밖에 없다.


거기다 회사란 게, 사회란 게 일 덜하고 못하고 안 하는 사람에겐 안 주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만 몰아준다. 고로, 대충 사는 사람은 편안하고 일 열심히 하려는 사람만 고통 받는 게 아주 당연한 수순 같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세월이 지나도, 왜 언제나 이런 사람들과 살아야 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다만 삶을 버텨나가야만 하는 걸까. 태어났기 때문에, 다만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내가 오늘의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내일도 살아 있을 거여서, 내가 내일도 내 입에 밥을 넣어줘야 하기 때문에, 월세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나 외엔 누구도 나를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에... 버텨내야 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오해하도록 내버려두려고 한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라 자기한테 해준 것을 고마워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어느 순간 당연해질 뿐이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사람 탓을 해버린다. 열심히 내달리던 사람은 곧 공격받기 일쑤이며, 사람들은 하나의 타깃을 욕하며 똘똘 뭉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런 자들로 이뤄진 게 바로 인간 세상이다. 나는 이러한 인간세상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지독하게도 지리멸렬하다.


쓸데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따금 아주 감동적이게도, 내가 배려하면 그들 역시 배려로 응답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존귀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만 에너지를 쏟겠다는 의미다. 그 외에는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거다.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건 어쨋거나 내가 회사에 있는데 문제의 사람이 자기와 다른 팀원을 대하는 내 태도가 다르다는 이야길 했다는 거다. 내게 있어 그게 당연한 건데 (심지어 많이 차이도 안 났다, 그냥 좀 더 웃었다 정도?) 그렇다면... 그냥 회사 내에서는 좀 좋아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사무적으로 대해야 하겠다. 불필요한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괜찮은 사람에게 그저 사무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좀 더 전하는 편이 났겠다. 회사란 곳은, 활짝 웃지도 못하게 한다.


이렇게까지 수양하면서까지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의 밥벌이 때문이다. 그게 바로 짜증나는 포인트다. 이날 이때까지 죽어라 일했으면서 아무런 득도 보지 못하고 쥐꼬리 만한 월급을 벌지 않으면 굶어 죽는 위기라니... 솔직히 어딜 가든 똑같을 거라, 다른 회사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


회사가 작든 크든 다 그 모양 그 꼴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인간 세상은 원래 그렇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인간은 언제나 '대체 가능한' 존재이며, 유일무이한 존재란 없다. 하지만 회사나 프리랜서 외주 일을 받아 할 때만큼 어디든 끼웠다가 빼기 쉬운 볼트나 너트 취급 당하는 건 싫다. 사람이긴 해야 할 거 아닌가. 사람이라면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고, 그 일로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어야 한다. 또한 지금 돈이 없으니 자본금이 적은 일이어야 한다.


향후 3년 안에 회사 밖에서 벌어먹고 살 수 없다면 진짜 비렁뱅이가 될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합리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대충 살아가는 게 괜찮다면 상관없지만 나는 지금 버티는 것도 힘들다. 좋은 길이 있고, 더 나은 결과물이 낼 게 분명해서 싸워본 적도 있고 설득해서 좋은 결과를 이뤄본 적도 있지만 결과는 '다음에는 그 이상의 좋은 결과를 바라는 시선과 하지 못했을 때의 질타'뿐이었다. 정말이지 쓰잘데기 없는 일을 위하여 온 에너지를 갈아쓴 셈이다.


비렁뱅이가 되는 날이 오면 그땐 진짜 죽어야 하지 않을까. 이때까지 내가 죽지 않은 건 일종의 '가능성'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런 미래가 없다면 이미 지금도 희망이 없는데 뭐 하러 살아야 하냔 말이다. 그저 밥만 축내는 식충이가 될뿐이고 그 식충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매일 노동하는 개미가 되어야 할 따름이다. 어차피 밟혀서 죽고 말 걸 버둥거리면서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 좀비 따위가 되는 건 싫다. 이미 지긋지긋하고 지리멸렬하며 한계를 넘어섰다. 살기 싫은지 오래되었다. 사후세계엔 날 것이 없으니까 회 먹고 싶어서라도 살 거야 따위의 말을 농담처럼 해댔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요즘 소화도 잘 안 되고 식욕도 없어서 회 따위도, 육회 따위도, 소고기 따위도 그 어떤 산해진미도 살 이유가 되어주진 못한다.


다만 나의 과제는 그것이다. 이젠 진짜 신경끄기를 연습해야 한다. 어차피 날 책임져줄 사람도, 보호해줄 사람도, 말을 들어줄 사람도, 거지같은 하수구에서 날 끌어내줄 사람도 오직 나밖에 없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아까 내가 하지 말아야 할 6가지를 말했고, 거기에 썼던 에너지를 내게로 돌려야 한다.


1. 나의 내면에 신경쓰기

2. 속박하거나 구속하거나 몰아세우지 않기   

3. 진짜 욕망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기

4.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기

5. 성취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6. 좋아하는 것에 맘껏 취하게 해주기


요즈음 내면을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브런치도 나름대로 시리즈로 글을 쓰고 있는 거다. 단 하나 내게 있어서 확실한 건 나는 그래도 조금씩은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고여 있는 게 싫고, 머무르는 게 싫고, 같은 말은 반복해서 하는 것도 싫으며,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싫다. 예전에는 노력하지 않는, 남탓만 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서 좀 더 설득하려고 애쓰고 이해해보려 애쓰고 그러다 지치고 병들었다면 이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무슨 상관인가. 알아서 살아갈 따름이다. 각자.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글이란 건 신기하지 그래도 좀 써내려가다보니까 기분이 한결 낫다. 때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일단, 신경을 끄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만이 나를 보호할 수 있고 오직 나만이 내 편이다. 결국 뭐든 해내는 건 '나'여야 하고, 노력을 가장 많이 쏟아야 하는 것도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내 생각엔 3년이다. 3년 안에 뭔가 달라지지 않으면 너무 힘들 거 같다. 지금도 이미 힘든데... 일단은 남은 하반기 동안 운동, 글쓰기, 책읽기, 마음단련, 명상 루틴을 길러 볼 거다. 지금까지는 목표를 정하면 달리기 바빴지만 스텝 바이 스텝으로 조금씩 천천히 나아지는 걸 직접 체험해야 하겠다.


종국에는 날 몰아세우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흠뻑 빠져서 쓰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결국엔 작가의 마음도, 정서도, 사고도, 신념도, 매력자본도 읽는 사람에게 여실히 전해지는 게 글쓰기니까. 잘 되기 위해, 잘 써내기 위해 나를 다듬는 수밖에 없다. 내가 기댈 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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