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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Sep 13. 2023

병원에 갔더니 '해야만 한다'는 마음도 강박이라네

오랜만에 병원에 갔다. 이미 몇년 전에 찾아가봤지만 딱히 해답은 되지 않아서 한동안 나 홀로 이 무게를 감당하려 해왔다.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한번 더 찾았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는 너무 감정적인 위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처음 본 건데, 몇 마디 안 나눴는데 "뭔지 알아요,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지 않나.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고, 이해했던 종류의 힘듦이 아닐 수도 있어서다. 


이번은 조금 다를 거 같다. 섣부른 감정적 공감이나 입 발린 소리는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감정적인 위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처음 본 건데, 몇 마디 안 나눴는데 "뭔지 알아요,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하는 건 너무 쉽지 않나.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고, 이해했던 종류의 힘듦이 아닐 수도 있어서다. 


다만 이번 선생님은 질문이 많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느꼈나요? 그 당시의 기분은 어땠나요? 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뭐 이런 것들.  나는 질문이 많은 걸 좋아한다. 딱히 감정이 깃들어 있진 않지만 다양하게 물어본다는 건 관심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를 질문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을 테니까. 나 또한 들으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번에는 이야기를 하다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도 일종의 강박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은 후련했고 조금은 불안했다. 조금이라도 쉬거나 늘어지면 불안해하는 마음의 원인을 찾은 거 같아서 좋았고 동시에 이 강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막막했다.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나는 쉬어본 일이 거의 없다. 


대학 졸업 이후 방송국에 취업했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투, 쓰리잡을 병행하며 살아왔다. 방송국 때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었고 사기업에서는 그럴 수 있어서다. 


평일에 야근하면 주말 시간을 내서라도 무언가 했다. 회사의 일만 하면 내가 고여 있을 거 같아서였고, 돈을 좀 더 벌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지금은 사이드 잡을 하고 있지 않다. 지친 탓이다. 약 8년간, 대학 졸업 이후 일에만 매진했다. 온 힘을 쏟아부었고 회사 좋은 일들을 했지만 내게 남은 거라곤 지친 몸뚱아리와 병, 그리고 애매모호한 커리어 뿐이다. 이 애매한 커리어를 쌓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 건 올해 초부터였고 현재 진행형이다. 


무언가 원대한 꿈이 있었던 적이 사실 없다. 나는 내가 스물 여덟에 죽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만 살았고 순간에 충실했고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해왔다. 해야만 하는 것... 나의 동력이자 나를 옭아매는 호승줄이었다. 그것에 칭칭 묶인 채로 살다가 이제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해야만 하는 것으로 내달리는 건 힘들다 > 지친다 > 넋다운 > 하지만 일해야 한다 > 열심히 한다 > 넋다운 무한 반복에 불과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오늘 시간을 내서 내게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텅 빈 백지와 같다. 그냥.. 안 살면, 죽어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 한 몸 먹여살린다고 돈 버는 개고생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일상에 남아 있는 거라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회사 생활 그리고 회사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놓지 않고 있는 글쓰기 정도다. 한때 글이 돈이 될 거라는, 글이 날 회사에서 탈출 시켜줄 거란 원대한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 생각을 하면서 쓰니까 더 안 써지더라. 글은 원래 업이 아니고 부업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소수고 대다수는 투잡 쓰리잡을 하며 글을 쓴다. 어쨋거나 잡(job)은 갖고 있어야 한단 소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벌어 먹이기 위해 노동해야 할까. 열심히 해봤자 아무 소용없고 그저 남들한테 일이나 내던져주는, 내가 뒤치닥거리를 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무수한 이곳에서. 나는 이제 뒤치닥거리를 하고 싶지도 않고, 기대도 없고, 희망도, 꿈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보란 이야기를 병원에서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 


서른 이전까지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고 내 앞의 단기적인 목표를 하나씩 해내면 됐으니까. 잘 되면 잠시 기뻤고 그 다음 일을 하면 그뿐이었다. 그 일은 내게 돈이 되지도 않았고, 좋은 커리어가 되지도 못했으며, 건강을 앗아갔다. 잘못된 쪽으로 힘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가장 큰 숙제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대부분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그냥 산다.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이왕 살 거면 잘 살고 싶었는데 지금의 주소를 보면 망해도 한참 망했다. 망한 상태로 숨 쉬고 있는 것 자체를 납득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납득은 하고 있다. 별다른 수가 없으니까 숨이라도 쉬는 거겠지. 


그래서 병원은 한달 정도 뒤에 간다. 예약이 꽉 차 있었고 직장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저녁 시간대 밖에 없는데 역시나 더 예약이 꽉 차 있어서다.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기분이다. 한동안 몸살에 감기에 비염(축농증으로 진화)으로 힘들었는데 건강이 회복된 이후에도 인생은 나아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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