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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Aug 07. 2023

오늘보다 내일 더, 매일 조금씩 나아가면 그뿐이야

격동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자기계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고는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라는 중대한 깨달음을 었었다. 28에 죽지 못하고 삼십대를 맞았고, 계속될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건 이제 두 가지다. "나 자신 절대 지켜"라는 새로운 좌우명과 영어 공부 말이다.


어려서 나는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일을 반복했다. 여린 편이어서 상처를 잘 받고, 정이 많아서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사람들과 일에 부단한 애정을 보냈기 때문에, 하나는 포기해야 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달려가기 위해서는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는 시간이 매우 아까웠던 거다.


이제는 안다. 나를 몰아세우기보다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 나의 힘듦, 아픔, 번뇌, 고통을 이해하고 나의 강박과 불안, 서러움을 스스로 품어줘야 한다. 누구보다도 날 사랑해줄 사람이 바로 나여서... 나는 언제나 누군가 나를 '힘껏' 사랑해주길 바라면서, 타인에게 많은 인내와 사랑과 감정, 에너지를 쏟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며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호의는 호이(호구)로 비춰지기 쉽다는 걸 알았다. 물론, 나와 비슷한 사람이 가끔 있어서 그들과 좋은 연을 맺어 왔다는 건 좋지만... 극히 일부였다.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어느 때나 날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며, 나의 미래를 위해 힘써 달려나갈 사람도, 내가 애쓰고 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줄 사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여야 한다는 걸 잘 안다. 타인도 그렇게 해줄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상이며 오직 나만이 '내가 원하는 것을 풍부하게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잘 되지 않는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러한 풍부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사랑을 못 받고 컸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어떤 모양이든, 어떤 순간이든 사랑 받고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거 같다는 의미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이상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균형 잡힌 사람이 되었다. 다만, 무조건적인 지지와 위로, 사랑이 내겐 필요했던 거 같다. 사람마다 바라는 게 다르니까. 이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며,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 나여서 그럴 테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걸 내가 해주면 되지! 요 며칠간 바뀐 나의 생각이다.



사진 출처: 교보문고 책 소개 페이지


최근에는 미뤄왔던 독서를 다시하고 있다. 소설을 읽고 인문학, 영성학 서적을 읽고 있는데 친구의 추천으로 김주환의 <내면소통>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려놓음' 개념으로 뭔가 루즈하다고만 생각했던 명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할 만한 찬스라고 했는데 아직 앞부분만 읽었지만 실로 그런 거 같다.


나는 '나이브함'을 싫어하고, 인간이나 세상이 '으레' 그래야한다는 식의 무책임한 담론을 선호하지 않는다. 인지적인 세상, 뇌과학적인 해석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의 베이스가 '뇌과학'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매일 30분씩 읽을 건데 오늘 읽은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대목을 잠깐 소개해 본다.


<내면소통>에 따르면, 내면소통 명상은 "나는 왜 지금 이 무거운 돌을 들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며, 이 하나의 질문에서 여러 질문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악착같이 이 돌을 들고 있어야겠다는 집착은 어디서 왔는가?

이 돌을 내려놓는 것이 마치 삶이 끝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나는 당연히 이 돌을 꼭 들어야만 한다는 당연함은 어디서 왔는가?


이 책에 따르면 자아는 세 가지인데, 각각 기억자아와 경험자아 그리고 배경자아다. 좀 더 책에 나온 예시를 들어 부연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나는 반드시 이 돌을 들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억자아이고 돌이 너무 무거워서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건 경험자아, 배경자아는 이러한 집착과 고통을 조용히 알아차릴 뿐이다. 무거운 돌을 들고 있겠다는 집착을 내려놓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돌을 내려놓는 힘이 곧 마음 근력, 명상은 집착을 내려놓는 훈련이다.


나의 케이스로 바꿔서 생각한다면 "나는 왜 지금껏 내로남불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쏟고, 아무도 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총대 메고 이끌었는가"로 볼 수 있겠다. 내로남불인 사람들이란 걸 알면서도 에너지를 쏟게 한 집착은 어디서 왔나, 아무도 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굳이 해내야 하겠다는 집착은 왜 나타났나, 무리해서 에너지를 외부로 쏟지 않으면 두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마땅히 책임지는 주체가 '나여야 한다'라는 당연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일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과 '같고 싶지 않다'라는 게 컸고, 내가 한 일은 내 이름이 걸린 것이니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게 컸다. 즉, 나는 책임감과 성실함이 꽤 강인한 사람인데 그것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스스로의 믿음에서 시작된다. 한 말은 지켜야 하기에 시작한 것은 끝장을 봐야만 하고, 남들과 같아진다는 건 그들과 같은 레벨로 내려간다는 의미여서 싫었다. 근데, 회사 일이 내 일도 아니고 결국 나에게 아무런 베네핏도 주지 않는다면 회사 프로젝트든, 에너지 도둑인 사람들이든 끊어내면 그뿐이다. 이 생각을 늘 하다가 잘 안 됐는데 지금 좀 되고 있는 건 내가 <나 자신 절대 지켜!>라고 내게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뭐든 내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아프고 병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니까.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여러 책, 영상을 통해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라는 문장만 받아들였을 땐 대체 어떤 걸 어떻게 내려놔야 하는지 막연하기만 했는데 이 책을 오늘 읽으며 생각해보니 분명해졌다. 두려움과 집착의 근원을 찾아보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불안과 두려움에서 멀어지는 게 바로 내면 명상이며 마음 근력을 기르는 방법일 테다. 결국은 해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앞두고도 무수한 생각을 하고 두려워하며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은데 마음 근력이 키워지고 나면 확실히 그러면서 버리는 시간은 없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오늘 읽은 내용 중에 기억 남는 것은 <마음근력이 강한 사람, 즉 자기가치감과 자기존중심을 바탕으로 강력한 자기조절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만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감,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발휘할 수 있다.>라는 대목이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해 왔다. 지금껏 나는 그것이 물질적인 기반(충분한 돈이 뒷받침됐을 때)이 있을 때야 가능한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마음 근력'이 강한 사람이야말로 그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잠시 생각해봤는데 일견 맞는 이야기다.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월급을 조금이라도 올리면, 글이 조금 잘 써지만, 공모전에 붙으면, 당선금을 받으면 조금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하면서 나는 늘 목표를 정했다. 골 라인을 정하지 않으면 자꾸 하고 싶지 않아져서 스스로 관문들을 만들고 그걸 통과하면 다음, 다음...관문들을 만들다가 지쳐 나가 떨어졌다.


그 뒤로는 한동안 쉬면서도 불안하고, 스스로를 탓하고만 있었는데 사실은 '물질적인 무언가'가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게 아니었다. 마음 근력이 탄탄한 사람에게 '평화가 깃드는 것'이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처럼, 건강한 마음에 평화와 안식과 평온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나는 요즈음 지칠 때마다 <나 자신, 절대 지켜!>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 신기하게도 그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좀 차분하고 편해진다. 실상 죽고 사는 문제 외에는 그렇게 불안할 만한 일이 없다. 대부분의 일들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타인을 위해 힘써 봉사하고 돈과 에너지를 써봤자 나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뒤통수를 맞으면 스트레스 대폭발하기 일쑤인데 나란 존재에게 그 에너지와 돈과 시간을 쏟으면 배신할 리가 없다. 내게 쓰는 돈은 곧, 나의 성장에 기여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퍼부어주면 그만큼 안정된 심리상태로 보답해줄 따름이니 나는 이제 나를 돌아봐야 한다.




운동이란 걸 참 못하는 사람인데 약 2년간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그래도 근육이 어디 붙어 있는지, 어딜 어떻게 써야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11월 초까지는 트레이닝을 계속 받으면서 개인운동을 병행하고 끊어둔 PT 회차가 다 소진되면 6개월간 나 혼자 운동을 해볼 생각이다. 6개월이 지난 이후에 스스로를 진단해보고 퍼스널 트레이닝이 좀 더 필요하다 생각하면 모아둔 돈으로 한번 더 해볼 의사도 있다. 동시에 나는 안다. 2년여의 시간이 내게 근력 기초를 쌓아줬고, 이제는 나 혼자 할 마음도 생겼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면 마음 근력 키우기에도 최소 2년의 투자는 필요한 게 아닐까. 퍼스널 PT처럼 돈을 많이 쓰진 않더라도 마음의 양식인 <책>을 내게 먹여주고, 명상하고, 사유하며, 스스로 아껴주는 에너지만 꾸준히 늘려가면 되는 거니 오히려 몸을 갈고 닦는 거보다 쉬울 수도 있다. 혹은, 따라할 교본이란 게 많지 않고 다양한 것들을 읽고 경험하며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야 하니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허나, 지금의 단계에서 쉽고 어려움을 따지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 절대 지켜!>까지의 레벨로는 올라왔다. 어떤 순간에도 우선순위에서 나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소중하며, 사랑해야 마땅한 존재다. 물론, 내 사람들도 나와 같이 사랑한다.


다만, 내 사람의 영역을 쉽게 넓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다 싶은 사람에겐, 아니다 싶은 일엔 크게 에너지 쏟지 않고 불만스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해야 마땅한 일이고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나이브하게, 영혼 없이 그냥 적당히 에너지 최절전 모드로 대해도 되는 거다. 그 사람들이 자기에게 왜 그렇게 대하냐, 좀 더 밝게 혹은 좀 더 따스하게 대해 달라고 한다면 웃으며 "노력하고 있다" 말하거나, "왜 그렇게 오해하냐" 말하고 치우자. 나의 에너지는 소중하고 그런 종류의 사람들에겐 아무리 잘해줘봐야 아무런 득이 남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말게 하는 게 낫다.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내가 더 잘 될 수 있으리란 걸 알고 있다. 지금껏 내가 투자한 많은 시간과 에너지, 애정과 감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뒤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전진할 것이다. 어느 날, 어느 순간이 되면 지금 나의 고민과 고통 그리고 여러 생각들까지 귀엽게 보게 될 때가, "좋았다"고 추억할 때가 오겠지. 그때가 될 때까지 나는 다만 차근차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내일이 없다 생각해서 돌진하는 것밖에 몰랐던 나는,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채찍질하는 것밖에 몰랐던 나는 이제 없다. 내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기로 했다. 과정을 잘 쌓아가면 결과는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당연한 인생의 수순'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요행을 바라지 않겠다. 묵묵히 나아가겠다. 다만,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욕하지 않겠다. 비난해야 의미없는 타인이나 일감에 무의미한 분노를 쏟지 않겠다. 나에게 도움될 일, 내가 잘 할 일, 내가 즐길 일 그리고 함께있을 때 좋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최선을 다하겠다. 선택과 집중,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인데 나는 이제야 제대로 <선택과 집중>을 하려 한다. 언제나 고민하며 '나아갈 길'을 찾아내는 나 자신, 사랑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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