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나는 나의 눈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봇물 터지듯 나올 때가 있다. 그런 날엔 내 안에 무언가가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터트리는 거다. 그래도, 고생했다고 인정해준 것만으로, 펑펑 울었다는 것만으로 진정이 돼서 '앞으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어차피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이제부터라도 대비해야지. 이제 나는 마흔을 준비해야 한다. 스물 여덟에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탓이다.
마릴린 먼로를 참 좋아하는데, 20C 최고의 섹스심벌이라거나 뇌쇄적인 눈빛이라거나 교태로운 목소리라거나... 하는 종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모습 때문은 아니다. 그 모습 역시 매력적이지만 나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좋아서, 그녀를 좋아한다.
사진에서처럼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화사하게 웃는 마릴린 말이다. 계산된 눈빛과 포즈가 아니라, 자기 안의 동심 아닌 동심이 설핏 새어나온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마릴린의 영화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인데, 얼핏 보면 그녀의 캐릭터가 머리가 텅 빈 '돈을 좋아하는' 금발머리로 느껴지기 쉽지만 사실 그보다 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사랑은 변하기 마련, 아름다움은 늙기 마련. 변치 않는 건 오직 다이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다이아야 말로 여자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는 극중 노래 가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돈을 탐하는 게 아니라, 변하기 쉬운 '마음' 대신 변치 않는 '다이아몬드'를 갖고 싶다는 주체적인 목소리다.
생전에 사랑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고, 가장 화려하게 빛나며 동시에 추악한 추문도 끌고 다녔던 마릴린, 죽음마저도 미지의 영역에 있다. 그녀의 표정과 눈빛, 목소리는 사진보다 영화 안에서 더 생동감 있는데 사진으로 볼 때보다 눈이 더 동그랗고 생기 넘치며 귀여워서다. 죽음마저 의문사, 아직까지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채로 죽어버린 은막의 스타, 그녀는 마흔을 맞이하지 못했다. 마릴린 먼로의 가면을 벗고, 노마 진으로, 한 줌의 재로 돌아간 62년 8월 당시 그녀의 나이는 36세였다.
내가 좋아했던 천재들... 김해경이라는 본명을 '이상'이라는 명패 아래 감춰버린 문인은 스물 여섯에 병사했으며, 신 들린 듯한 연주로 한동안 빠져 있었던 랜디로즈는 스물다섯에 사고로 떠났다. 반 고흐와 랭보는 서른 일곱에 떠났으니...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 중에 마흔을 넘긴 이는 베토벤과 소설가 정미경, 최승자 밖에 없다.
까탈스럽고 불 같은 성질머리로 '악성'이라 불릴 만큼 유구한 작품들을 만들어낸 베토벤은, 마지막 순간까지 창작욕에 불탔으나 생활은 망가진지 오래였다고 전해진다. 소설가 정미경의 경우 암 투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걸로 전해지며 그의 생활이나 일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저, 그의 글과 문장과 표현을 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마흔을 넘겨서 살아 있는 사람은 최승자 뿐이다.
어릴 때 나는 내가 요절한 '천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요절'을 좋아했고, 이왕 '요절'할 거면 화려하게 불타고 싶어서 '천재'를 좋아했던 거였다. 광기 어린, 자신의 몸을 넘어설 만큼 '무위'의 영역으로 몰두해서 미쳐버리는,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뿜어낼 줄 아는 사람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창작열망의 대가로 대다수는 생활이 무너져 있었다. 나이브한 게 아니라, 다 찢어발겨서 밑바닥을 보고 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되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의미다.
특히 최승자의 경우 특유의 냉소적이고 비감 어린 목소리, 전율하게 하는 표현들로 내게 있어 그를 넘어서는 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랭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기 어린' 20대의 감각이라면 최승자는 나이와 무관하다. 내가 오래 살아, 남는데도(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언제고 그녀의 문장을 읽더라도 나는 매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될 거니까.
바로 그래서, 나는 불타는 창작에 내 온 몸을 내던지고 싶으면서 동시에 두려워했다. 다른 글에서 쓴 적 있는데 나는 언제나 내가 미칠까 봐 무서웠다. 이따금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때, 분노가 머리 끝을 열고 밖으로 표출될 때 어떤 모양인지 안다.
대체로 그 불 같은 에너지를 잘 갈무리하고 있지만, 그저 춤을 추고 싶은 때가 있다.
제자리에서 덩, 덩 발구름을 올리며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는 거다. 그 감각, 귓전을 때리는 꽹과리 소리와 북 소리 그리고 향피리 소리와 왁자한 풍악에, 바닥에 깔리는 흰 천과 바람에 나부끼는 붉고 검고 파랗고 샛노란 천의 환상에 젖어 있을 때가 있다. 어디선가 방울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흰 고깔을 쓰고 나붓나붓 걸어가는 거다. 아무 것도 속박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무엇도 신지 않은 채로 맨발로 그냥 그렇게 춤을 추고 또 추는 거다. 무엇도 나의 것이 아니며, 그 어떤 것도 내가 될 수 없는... 나라는 자아가 부재한, 채로 살아가는 삶이란 걸 이미 한번은 살아본 사람처럼... 그 세계가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적당히 알아봤고, 적당히 빠져들었고, 언제나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죽고 싶다 생각하는 한편, 미칠까 두려워했으니... 죽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가. 미쳐야 미친다는 말처럼, 내가 미치질 못했으니 '미치지' 못하는 건, '마치지 못하는 건' 역시 당연한가.
모든 사람에겐 여러 모습의 '내'가 잠들어 있다 생각한다. 그렇게 잠들어 있던 여러 모습의 '내'가 순간순간 깨어날 때마다 기묘한 감각을 느끼겠지. 내 안에서 가장 강한 스스로의 모습이라 생각한다면, 이 땅에 붙들어 놓는 '지극히 이성적인,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며 몰입하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는 나'와 '미치는 것이 무엇이 어떻냐는 듯 일찍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활활 타오르는 기묘한 내'가 있다. 나는 후자의 모습에 내 온 몸을 내맡겨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언제나 '방해' 받았고, '멈춤' 당하였다. 내가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생을 지속하는 것이 '민폐'가 될 수밖에 없다고.. 거렁뱅이 꼴이 될 거라 생각해서일까. 내 목에, 산 입에 거미줄 치게 되는 날이 올까 언제나 두려웠다. 누구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아서.
그런 나라서, 마흔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버겁다. 지금이 아니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고 싶어했으면서 죽지 못하고
한껏 창작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었으면서 미칠까 주저했고
한번은 이성의 끈을 놓고 하하 거리고 싶었으면서 민폐일까 주저했다.
누구보다 불 같은 성격을 지녔으면서 대체로 인내하고 봐줬다.
참고, 참고 또 참았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자꾸 지연하는 걸까.
나는 보살이 될 수 없고, 그럴 만한 성격도 아니다.
언젠가는 그리 될 수 있겠지.
내가 정말 제대로 미쳐보고, 땅바닥을 굴러보고, 지랄해보고 불도 뿜어봤을 때... 그때야 가능하다.
여한이 없을 만큼 미쳐봐야, 넥스트 스탭으로 갈 수 있는 게 나란 애인 거 같다는 생각도 요즈음에는 든다.
본래 미치게 살아온 자가 '인생 그렇게 힘들게 가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을 때 더 울림이 큰 법이니까.
나이브, 한 환상 같은 이야기 싫다. 세상은 따듯하고 사랑 가득하다는 말뿐인 말도 싫다. 척박한 세상을 딛고 일어서서 비틀비틀거리는 몸뚱어리로 제가 할 수 있는 '무언가의 말'을 하는 사람이 좋다. 죽지 못한다는 걸 인지한 순간.. 삶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는 걸 납득하는데 무려 6년이 걸렸다. 솔직히 지금도 납득되지 않는다. 웃기지 않나, 죽을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죽음이란 게 내 앞으로 떨어지길 기다리는 일은 마치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영감'이라는 뮤즈가 내게 날아와 내가 쓴 글로 사랑 받길 기다리는 심보와 뭐가 다르냔 말이지.
하지 않으면 무언가 이뤄질리 없다. 세상은 아주 단순한 구조다. 내가 에너지를 쏟는 방향으로, 믿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살아 남으려면 결국, 여기서 내 미래와 돈과 비전과 '새로운 나의 페르소나'를 찾아야 한다.
칼춤을 추고 싶다. 금전적 여력이 생기면 어떻게든 검무를 배울 거다. 오늘 같은 날엔 정말 칼춤을 추고 싶다. 칼날이 휘어진, 월도를 쥐고서 새파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허공의 '무수한 것'들을 베고 또 베고 싶다. 핏물도 흐르지 않고, 피 비린내도 풍기지 않겠지만 내 안에 지저분하게 엉겨 있는 찌꺼기들을 베어내는 심정으로라도. 언젠가 나는 죽겠지, 어느 때 어느 상황에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 알 수 없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이해하자. 화 내지 말고, 마흔을 준비하자. 그냥... 내가 마흔을 넘길 거 같아서,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