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해야만 하는 것 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뭘까. 스스로 물어봤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연말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이것들에 대해 파고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토막 시간이라도 내서 한번 생각해본다.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써야지. 쓰다 보면 떠오르게 마련이다. 나조차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미처 뇌를 스치기도 전에 손가락 끝에서 툭툭 튀어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래,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정리를 해볼까. 알고 있지만 실은 잘 모르고, 영원히 알아가는 사이니까.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가면을 써보지만 그리 쉽지 않다. 그러니 가면을 모조리 다 찢어내고 그 아래 눈을 감고 있는 '나'에 대해 생각하는 거다. 의외의 이야기여도 좋겠다. 오늘 나는 무기력을 탈피하기 위하여 스스로와 거래를 하기로 결심한 '나'란 사람의 이야기를 쭉쭉 써내려갈까 한다.
1. 할 때 하고 쉴 땐 아무것도 안 한다. 머리를 쓰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어떤 상황에 직면하든 '순간'이 내게 마련되면 두뇌를 풀파워로 돌린다. 모든 가능성(비관적, 긍정적)을 떠올려보고 난 뒤에 선택한다. 미시적인, 세부적인 것에서부터 거시적인, 큰 틀의 그림까지 삽시간에 생각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책임지려 하기 때문에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머릿속을 텅 비우고 싶다. 한마디로 프로 계획러와 귀차니스트가 공존한다.
2. 일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일을 하며 겪는 기싸움을 즐기는 편이다. 타고난 몸이 약하고 그러다 보니 겁이 많아서 감당해내지 못했을 뿐이지, 미팅이나 토론/토의 자리에서 승기를 잡는 순간의 짜릿함을 좋아한다.
3. 사무직보다는 현장직에 더 걸맞는 신체적 리듬을 갖고 있다. 마케터 일을 할 때 외부 미팅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사무실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나다니는 것을 좋아해서다. 아마도 작가와 강의팔이를 둘다 하고 싶은 것도 글쓸 땐 안에 있고, 강의할 땐 나가서 사람과 만날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4. 책임감이 강하거나 성실하기 보다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며 '스스로에 대한 기준치'가 높은 사람이다. 그것이 일맥상통하기도 하겠지만 다소 다르다. 이 정도 기준을 하지 못하면 '망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쫓기듯, 나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이며 종국엔 지치기 쉽다.
5. 신체적으로 약한 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맷집이 쎈 편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편인데 근원적으로 낙천적이어서다. 상당히 극단적인 생각까지 다 하고 난 뒤에 결론은 언제나 '뭐, 안 죽음 사는 거지.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다. 지금껏 어떻게든 되어 왔기 때문에 산 입에 거미줄은 안 칠 거라 생각하지만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 신체적 맷집을 길러야 앞으로 살기 편해질 거 같아서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한다. 더 열심히 해야지......
6. 기본적으로 시니컬하며, 가장 평온한 상태일 때는 신랄하며 아무 사심없이 팩트 폭격을 잘한다. 평상시 말할 땐 부드러이 돌려 말하고 배려하는 편인데 (그만 해도 된다 할 정도로) 사회화된 상태다. 본래 세상이나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을 좋아하며, 직관적이나 오래도록 관찰한 결과로서 판단하고자 노력한다. 어느 한 구석에 쏠리는 것을 싫어하며, 가급적 모든 사이드의 면을 보고 난 뒤에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7. 승부욕이 엄청나지만 안 된다 싶은 것은 아예 하지 않는다. 이를 테면 체육이나 게임과 같은 것은 할 줄도 모르고 딱히 관심도 없다. 체육에 있어서는 내게 뭐 못한다 말해도 딱히 노관심인데, 어차피 못해서 나 스스로 기대치가 낫다.
8. 네이버 지도를 보고도 가끔 길을 못 찾고, 나갔던 방향 그대로 돌아오면 되는 걸 방향이 헷갈릴 만큼 심각한 길치다. 다만 간판이나 지형지물을 잘 외우며 한번 갔던 길은 누구보다 빠르게 찾는다. 길치인 덕에 본투비 J인데(계획+완벽주의=근데 해야하는 것만) 여유로운 마인드를 갖게 됐다. 1시간 안에만 찾아가면 되지 뭐... 길은 다 통하게 되어있다, 뭐 그런 것들?
9. 타인에 대해 기대치가 낮으며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기대도 사라졌지만, 기준 이하의 인간을 볼 때면 멀어지고 싶다. (근원적인 거부감이다) 많이 좋아져서 지금은 웃으며 이야길 하긴 하지만, 적당한 선을 긋고 멀리하는 편이 내게 이롭다 생각한다. 나와 쌍성이 맞지 않는 특정 인간군이 있는데 자기 객관화가 안 되며 남탓이 생활화되어 있고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억울해하고 자신에게 애정을 줄 것을 갈구하는 유형(이 유형은 자기 편의대로 상황을 재조립하여 기억하는데 심각한 케이스는 일종의 인지장애가 아닌가 의심되며 편집증적 성향도 좀 있어 보인다)이다. 잘 해줘야 칭찬하고, 정말 열심히 해야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건 아주 당연한 사회적 섭리이자 진리다.
10. 이 악물고 도전~! 해야할 때는 다크팝(빌런 플레이리스트, 리드미컬하고 빵빵 터지는 것)을 즐겨 들으며 좀 릴렉스하고 싶을 때는 리드미컬한 그루비 팝을 즐겨 듣는다. 탱고와 재즈를 좋아하며, 특히 타악기 소리를 좋아한다. 기타 솔로를 좋아하지만 드럼이, 국악에서는 징이나 북, 장구, 꽹과리와 같은 것이 내적인 흥을 불러 일으키는 편이다.
11. <해야 돼> 결심이 서면 불도저급으로 달린다. 나 스스로 해야하는 글쓰기는 미루는데 만약 일로 글을 써야하는 상황이 꾸준히 마련되었다면 나는 이미 데뷔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타인이 주는 소기의 인정이나 소정의 상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정말 '소기'와 '소정'이어도 되는 편이라 문제. 실속이 없다. 친한 언니랑 이야기 했는데 어느 회사를 가든 노예로 그냥 살면 되는데 자꾸 '자발적 노예장'이 된다 했다. ㅎr 자발적 노예장.... 성질이 급하고 한번 하면 재대로 해야 해서 그렇게 되었다.
12. 솔직히 어렸을 때 성질을 떠올려보면 승질머리가 지랄이었다. 뜻대로 안 되면 물건을 던졌고(물론 혼자 문 닫고 던지고 다 치우는 소심함) 주로 내가 해야하는 일이 제대로 안 될 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금껏 내가 해낸 대부분의 성과는 '빡침'에서 비롯된 거였다. 안 돼? 못한다고? 내가 해서 대령하고야 만다! 두고봐! 다 죽여버릴 거야... 뭐 그런 마인드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지금은... 안 그러고 싶어해서 동력을 잃고 표류중인 거 같기도 하다. 분노와 불안의 에너지로 키워낸 성과는 일시적이며, 나쁘진 않으나 장기적으로 그리 좋지도 않다.
13. 챌린지를 좋아하는 편이며 보상이 필요하다. 보상 없다 싶으면 딱히 하질 않는다. 생각해보면 글쓰기에 관심 갖기 시작한 것도 교육청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발탁돼서 얼결에 쓴 글이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부터였으니까. 실상 문학이나 글을 그리 덕후처럼 사랑하진 않았고.. 내가 특별해지기 위하여 이용했을 따름이었다.
14. 나는 언제 어디서나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회사 일이나 어떠한 일이든 거의 부품으로 기능할 뿐이며 내가 없어져도 다른 누군가가 하고 망할 거 같아 보여도 어떻게든 다 굴러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작가만은, 그가 없으면 소설/영상 속 세계과 미완성으로 남기 때문에 대체 불가한 사람에 가깝다. 나의 세계관을 전개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동안에는 말이다.
15. 읽거나 보는 것보다는 쓰는 것을 즐기나, 문장이나 내용이 내 안에 쌓여 있지 않으면 그 어떠한 것도 쓸 수 없다는 걸 안다. <헤야한다>라고 콘텐츠 소비를 부추길 게 아니라 즐기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실상 즐기는 걸 잘 모르겠다. 나는 이날 이때까지 <해야만 하는 것>과 <암것도 안 하고 쉬는 것>으로 이분화된 세상에서 살았으니까. 즐겨보려고 약 2년을 보냈는데 잘 안 되는 걸 봐선 나만의 방법이 있을 거 같다.
16.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보다 좋아하는 건 사회보는 것이다. 함께하는 일원들의 특징과 특장점을 파악해서 고루 발언권을 주며, 그 안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좋다. 이러한 말하는 상황에 있어서는 순발력이 매우 좋은 편인데 딱히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엄청 준비를 많이 한 것처럼 잘 끌어가곤 했다. 진행력은 꽤 괜찮은 텔런트인 거 같은데 어디서 써먹어야 할지 애매하다. 이 진행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덕에(?) 어느 회사에 가든 중간 소통책 /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되곤 했다.
17. 나는 정처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한다. 노래를 들으며 혹은 사람들의 수다들을 귀로 들으며 관찰하고 마냥 걸어다니는 게 좋은데 발바닥이 평발에 가깝고 발목이 부실하다는 단점이 있다. 1시간만 걸어도 좀 아프기 시작하는데 무시하고 3-4시간 씩 걸어왔다... 발목도 좀 챙겨줘야지. 아마도 이렇게 걸을 때가 가장 평온, 여유로운 상태다.
18. 나는 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갓난아기에서 2-3살 때까지가 딱 좋다. 말문이 트이나 여전히 동글동글하고 자기 주장이 막 성립되는 시기다. 그 시기의 아기들을 SNS를 통하여 즐겨보며 인류애가 상실되거나(아, 이젠 뭐 상실될 것도 딱히 없다) 힘든 날에 아기들을 보며 휴식한다.
19.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전에 몇 차례 말해주는 편이나 부드럽게 말해주기 때문에 그게 조언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 뭐, 모르면 멀어지는 거고 알고 서로 맞춰가면 오래 가는 거고 그뿐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나는 내 사람들에겐 <온전한 편>이 되어준다. 그것은 내가 <온전한 편>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20. 근래에는 크롭탑을 즐겨 입고 하이웨스트 패션을 좋아한다. 좀 달라붙는 스타일이 좋은데 체형을 커버하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옷들이 다 좀 말라야 예쁜 옷들이어서 몸무게와 몸매 관리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산다.
여기까지 주절주절 써봤지만 사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다. 오늘 새로 알게 된 건 <뭘 하고 싶으냐>라고 묻는 게 그다지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모두가 원하는 건 돈 많은 백수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까. <어떻게 할 때 평온한가> <어떤 환경에서 활기를 느끼는가> 하는 거다. 나는 정처 없이 걸을 때도 좋지만 나 스스로 무언가 판을 만들고 성취해내거나 완성했을 때 즐거워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위하여,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도 챌린지와 포상을 두둑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단순한 뿌듯함, 과정을 즐기는 마음? 그런 건 없어. 나는 애시당초 돈으로 의지를 사는 사람이다. 해야 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히 미친 듯이 하는 자니까... 의지, 돈으로 사겠어.
이거 원래 되게 길게 썼는데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건지 메모장에서 여기로 옮기다가 다 날아가버렸다. 핳하... ㅋㅋㅋㅋㅋ 뭐,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으니까 짧게 쓰고 마무리할까 한다.
나는 내일부터 40일간 오전 6시 기상과 운동+영어공부 루틴 그리고 매일 30분 이상 글쓰기 루틴을 이어갈 예정이다. 40일간의 도전을 잘 해내면 나는 스스로에게 30만원의 포상을 준다. 이 포상 안에는 내가 계속 눈독 들여온 스마트밴드와 운동화와 운동복과 소정의 악세사리가 이미 내정되어 있다. 본래 소비요정인지라 꽂히면 막 사고 그랬는데... 뭐 이왕 살 거... 챌린지 이행한 뒤에 선물로 내게 주면 더 뿌듯하지 않을까. 우선 더 긴 계획은 세울 생각이 없고 40일간 도전해보고 난 뒤에 다시 리체크해서 조금씩 내게 맞는 '루틴'을 만들어가겠다. 할 게 많다. 점도 빼야하고 두피 스파도 받아야 하고... 뭐 그러하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