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년도가 들어오고 난 뒤부터 많은 고민이 있었다. 만 나이로 서른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결단코 서른이 오지 않을 거라 믿었다. 스스로 28에는 죽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죽지 않았고, 이번 년도엔 오래도록 날 괴롭혀 온 반려 우울증(겸 조증)이 참 많이 괴롭혔다. 그럼에도 10월의 어느 날,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에세이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시리즈처럼 이렇게 길게 쓰게 될 줄 몰랐다. 그날 하루, 하루 내가 살아가는 기록을 남겨둔 이 글이 어떤 이에겐 단순한 '일기'처럼 느껴질 것이고, 어떤 이에겐 되게 공감가는 친구의 이야기처럼 혹은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한번도 진단 받아본 적 없으나 약 20년째 스스로 고통받고 있는 한 환자의 병상 일기다.
이 에세이들을 쓰면서 나는 또 한번 용기를 내서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이나 이러한 병명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종류의 '질환'은 아니었다. 이십년 간 나를 괴롭힌 건 다름 아닌 '강박'이었으니까. 완벽해야 한다, 실수란 없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단어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겠지만, 때론 이렇게 '명명'하고 타자화 시켰을 때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법이다.
나는 참으로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 왔다.
1등 하지 않는 것, 어느 자리에서나 빛나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 마땅한 존재였다. 어렸을 때 나는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나의 존재란 '대체 불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늘 생각해 와서다. 그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삼남매 중 맏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가정 환경이 모두에게 영향을 주진 않으니 그저 나의 '기질' 인 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상담에 지원했고,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다행인지) 뽑혀서 이번주 수요일부터 4회차 상담을 받아본다. 기질 검사를 사전에 해봤기에 그에 따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다니고 있는 정신과는 3번 정도 갔지만 상담 기반에,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대화 위주'로 이뤄져 있어서 마음에 든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질문이 들어오면 그에 대해 답하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흐름인데... 내겐 좀 맞는 거 같다. 뭐든 자기에게 맞는 방식이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이 에세이들을 이 토픽으로 쓰기 시작한 게 7월부터다. 약 3개월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의 감정은 상당히 큰 폭으로 오르내렸다. 본래 '사이클'을 돌듯 우울했다가 괜찮았다가 때론 너무 기분이 좋았다가를 반복했는데 27-28살에 심각성을 느낄 만큼 상태가 악화된 이후로는(과호흡으로 응급실에도 감) 그만큼 안 좋았던 적이 없는데 이번엔... 참을 수 없는 눈물 탓에 괴로웠다.
걸어도 눈물이 나고 앉아도 눈물이 나고 그냥 시시때때로 눈물이 났다. 살아 있는 게 너무 짜증나서 그랬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30대를 맞이했다는 게 화가 나고, 이제 40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너무 벅찼다. 30에 무슨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야 40대에는 회사 밖에서 내 글만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일에 대한 이야길 참 많이 썼는데, 일이 내 인생의 전부여서 그랬었다.
실상 글을 쓰고 싶어서 돈벌이로 일터를 찾았다면서 수치화된 성취가 보장되다 보니 회사에 몸을 갈았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책임을 지고, 미친 듯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건 이제 과거가 됐다. 그쪽보다는 '나'에 집중하는 걸로 '글'에 집중하는 걸로 방향에 옮겨가려다 알게 된 건데 '글쓰기'가 나에게 '즐거웠던 기억'이 참 아련하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쓰고 읽고 몰두하고 몰입하면 가장 즐겁다.
뭐든 잘 질리는 내가 (미친 듯이 하고 질려버림) 17살때부터 지금까지 글쓰기 만은 놓지 않고 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작가란 존재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서만은 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이 끈을 놓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성취욕, 완벽주의에 대한 갈망, 각종 강박을 살-짝 내려놓고 가장 근원에 있는 나를 보면 나는 역시 '대체 불가능하게 사랑받고 싶은' 존재다. 요절한 천재를 그리도 열망하고 좋아하는 것도, 일찍 죽길 바랐던 것도 그 이유였다.
나는 어째서 지금껏 살아 남았느냐.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내일에 대한 기대, 내가 만들어갈 '것'에 대한 희망을 내심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들을 쓰면서, 그리고 여러 감정의 오르내림을 걸으며 결국 알게 된 건 난 생각보다 낙천적이고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비극적인 것, 가장 극단적인 미래(내가 비렁뱅이가 될 거라는)까지 다 바라보고 파고내려가서 그려본 뒤에 결국 내가 선택하는 건 '내일로의 한 걸음'이었다. 가장 극단적인 비관주의자이기에 동시에 낙관적 낙천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우습지만.
이 글을 보면 알겠지만 어느 날엔 희망차고 어느 날엔 우울의 끝판을 달린다. 그럼에도 마지막엔 무언가 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난다. 그러니 10월, 화창한 하늘 아래서 오늘 이 브런치 북을 이렇게 끝맺어야 하겠다.
이제 꽤 쉬었고, 다시 운동화 끈을 꽉 묶고 달려갈 시간이다. 다만... 피가 낭자한, 삭막한 사막과도 같은 전장이 아니라 꽃밭을 내달려볼 생각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나의 글, 나의 작가 생활, 그리고 강의를 향하여 나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니까 나 스스로를 믿어주기로 한다. 내가 바라는 종류의 '대체 불가능한 영원한 사랑', 그 누구보다 내가 먼저 나에게 줘야 함을 지금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는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간다.
물론 또 꺾이고 무너질 것이다. 사이클을 돌듯.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 뭐든, 좀 주춤대더라도 걸어가면 그뿐이다.
이것이 내가 마흔을 준비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계속... 써내려가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