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저씨 Mar 20. 2024

뭐시 중헌디!

숙면이 중허지!

뭐시 중헌디? 도데체가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 영화 곡성의 대사


영화 곡성을 보면 주인공의 딸이 귀신(악마)에 빙의되어 던지는 대사가 있다. 그게 바로 곡성하면 떠 오르는 가장 유명한 대사인 "뭐시 중헌디"다. 30대까지 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이 버려지는 시간이 바로 수면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다 1시가 넘는 시간에 자고,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났다. 하루에 보통 5시간에서 6시간의 수면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난 5~6시간이 수면으로 버려지는 것도 너무 아까워서 4~5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일을 하거나 여가 활동을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나의 수면패턴은 40대 초까지 이어졌고, 수면시간을 짧게 줄이는 것에 대해 뿌듯한 감정을 가지기도 했다. 왠지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숙면을 무시한 나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 년 전 공황장애가 재발한 나는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나에게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지 물어봤다. 공황장애가 심할 때였던 그때 내가 수면을 취하는 건 불과 4시간 내외였다. 그리고 부정맥이 함께 와서 잠을 자는 게 두려워졌기에, 불면증도 함께 겪고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내가 잠을 너무 적게 잔다면서, 최소 7~8시간의 수면을 취하라는 충고를 해줬다. 그전까지 8시간 수면은 사치이고 인생을 낭비한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충고였다. 하지만 우선 내 몸이 살고 봐야겠다는 절박함은 나의 신념을 가볍게 이겼다.


그때부터 나는 잠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우선 잠을 일찍 자기 위해 침대에 눕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새벽 1시~2시에 잠에 들었던 나에게 저녁 10시 또는 11시에 자리에 눕는 것부터가 엄청난 도전이었다. 저녁시간에 일찍 침대에 눕기 위해 저녁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렇게 약 1년 정도를 싸우면서 이젠 밤 10시가 되면, 침대에 눕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침대에 눕는데 성공을 했지만, 다른 복병이 있었다. 바로 핸드폰! 더 정확히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과 같은 OTT 서비스 들이었다. 10시에 침대에 누워도 핸드폰을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2~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서 10시에 침대에 누웠음에도 수면시간은 여전히 새벽 1시 언저리였다. 그래도 고무적이었던 게 새벽 2시 전에는 잠을 청했다는 것이다.


10시에 자리에 눕게 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수면시간은 전혀 늘어나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의 공황장애와 부정맥도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황장애와 부정맥에 더해서 불면증까지 얻게 된 난 절박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큰일이 날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중년 남성의 "고독사"같은 일 말이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바로 자기 전엔 핸드폰을 보지 않는 것. 그리고 잠이 오는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있기로.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난 그만큼 절박했다. 처음 며칠은 고통스러웠다. 누워 있는데, 정신이 맑아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핸드폰을 켜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그럴 때마다, "이러다 진짜 죽는다"라는 생각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핸드폰을 더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처음엔 눈을 감고 있거나 잠을 자는 게 어려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게 되더라도 다시 잠이 드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잠이 드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 수면시간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8시간 이상 잠을 잔 날에는 몸의 컨디션이 달라짐을 경험하게 되었다. 공황장애의 강도도 약해지고 부정맥 빈도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내가 살아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나는 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10시에 침대에 눕지만 1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든다. 그렇지만 수면시간이 단 2시간이 늘어났음에도 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경험하니, 숙면을 위한 나의 노력을 멈출 수가 없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이나 유튜브에서 잠을 줄이고 인생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옆에서 말리고 싶다. 수면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수명과 건강을 1.5배에서 2배 더 늘려주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숙면을 하면 +의 시간을 얻지만, 불면은 -시간이 복리로 늘어난다고 말이다.


뭣이 중허냐고? 잠이 중허지! 


노란 대문 집(나저씨가 아이폰으로 촬영)


매거진의 이전글 3.17일 일요일 아침 10시 30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