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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Nov 24. 2024

사라진 건 없더라. 발견하지 못했을 뿐

  ***

  한 블로그에서 우연히 목격한 작가의 이름이 눈에 번쩍 들어왔다.



  배수아!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나름 문학청년이던 시절에 알게 된 작가였다. 그녀의 책도 몇 권 사서 읽었더랬지.



  이를테면 대표적으로 이런 소설.



  '그, 제목이 뭐더라…? 네 글자였던 거 같은데.'



  이런, 아무리 뇌검색을 해도 통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자그마치 20년도 넘은 일이니 선명하게 떠오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

  그게 뭐가 대수겠는가. 


  뭔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말이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에선 크게 답답해할 일도 못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잘해봐야 5초 컷이겠지?



  나는 호기롭게 인터넷 검색창에 ‘배수아 작가’라고 입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검색 버튼을 누르는 즉시 내가 찾는 정보가 나올 줄 알았다. 왕년에 알던 작가인데 그동안 책을 몇 권이나 더 썼으려고.



  그런데 웬 걸.



  배수아 작가의 출간 이력이 상당했다. 자신의 글을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번역까지 한 터라 결과물은 더더욱 많았다.



아니,
이게 대체 몇 페이지야...?





  ***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작가의 활동 내역이 자그마치 25페이지에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어쩌면 그녀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장은 아니지 않을까?



왕년의 젊은 작가일 뿐이겠지.




  나도 모르게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혹은 오만이었나?




  ***

  나는 산산조각 난 나의 오만과 편견의 잔해를 앞에 두고서 조용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의 견고한 삶 앞에서 그만 부끄러워지고 만 것이다.




  첫 번째로는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작가님을 한물 간 추억 속 인물 정도로 생각했던 것. 


  그다음은 ‘나는 작가님만큼 열심히 살아왔었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도 들었다.



  내가 뭐라고.



  그렇지만 역시 가장 크게 들었던 감정은 따로 있었다.



  반가움.




  ***

  오랜만에 만나게 된 이름에 대한 반가움, 그리고 감사함이었다. 헤어진 옛 연인을 다시 만난 기분…이라기엔 너무 오버하는 것이고. 


  가령 그렇게 친하진 않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랄까.



  각자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또 어디에선가
우연히
마주칠 날이 있겠죠?



  그래, 사라지는 것은 없더라. 다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 내가 찾던 배수아 작가의 책 제목은 '심야통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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