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따뜻한 것이 현대식 동굴 같아요
처음 혼자 영화관에 갔던 건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주로 수업을 들었던 미디어관과 정경관 사이에 시네마트랩이라는 영화관이 있었는데,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상영했어요. 영화에 조예가 깊어 찾아간 것은 전혀 아니었고요. 공강 시간인데 마땅히 하고 싶은 것이 없거나(과제는 늘 많았지만 외면이 필요했..) 약속 시간이 뜰 때 찾아갔습니다. 어떨 때는 관객이 저 혼자인 적도 있었는데요. 그래서 <보이후드>를 보면서 훌쩍거려도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비밀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죠.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취직 준비를 하게 되면서 영화관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바게트 하나로 하루를 버텼는데, 영화관에서 보내는 2시간은 사치 그 자체였달까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오늘 해야 할 공부는 플래너에 빼곡했죠. 공부를 끝내고 나면 친구들을 만나서 사회성을 되찾거나 방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어 체력을 보충했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도 비슷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는 시간은 점점 멀어졌어요.
최근 일태기를 겪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바로 대학생 때 영화관에서 보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잘 모르는 채로 낯선 공간 안에 들어갔다가,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해 놓은 세계에 풍덩 빠지죠. 그리고 세상으로 다시 문을 열고 나오면 내 눈앞의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일상과 잠시 멀어지는 경험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컴컴한 공간이라는 게 동굴 같아서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상처받은 짐승들이 어딘가에 숨는 것처럼 혼자 있을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예술 영화를 보다 보면 여백이 많아서 생각이 끼어들 틈이 많은데요. 장면을 보면서 최근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고, 그 순간의 감정을 다시 느낍니다. 그때 해야 했을 반응을 떠올리기도 하고(약간의 후회를 곁들이며) 스스로에게 주었던 상처를 마주하고 3자의 입장이 되어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라이카 시네마로 향했습니다.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영화관이었는데, 객석은 40석 정도로 소담한 공간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1시간 전에 도착해 영화관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았어요. '다음에는 이런 영화가 있구나', '포스터는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러고는 2층 카페로 올라가 일기를 썼죠. 지금 제 마음을 가장 요동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해결하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따위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조금 있으니 관객들이 하나 둘 카페로 올라왔어요. 차분하고, 조용하고, 에코백을 매는 사람이 많았는데, 묘하게 동지들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본 영화는 <프렌치수프>였어요. 제목만큼이나 뭉근한 사랑이 그려졌습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주인공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쉽게 그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알고 있었죠. 2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그들에게는 다른 형태의 사랑이 있었으니까요. 주변 사람들을 불러 '우리 결혼했어요~' 떠들지 않아도 마음 가장 밑에서부터 서로를 존경하는 관계. 나의 사랑이 감히 당신의 존재를 넘어설 수 없기에, 기다리며 채워가는 사랑이었습니다. 눈물 한 바가지를 흘리고 영화관을 나왔어요. 지금의 제 고민이 조금은 작게 느껴졌습니다. 한동안 연희동 인근을 걸어 다니기도 했고요.
[다음 화 예고]
2화. 볼펜과 노트를 다시 잡았더니 일어난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