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인이 비교에서 벗어나는 법
크게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알람 소리에 채 깨지 못한 영혼은 베개에 묻어두고 몸을 일으켰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했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교수 편을 재생했다. 독특한 분이구나, 말씀을 재밌게 하시는군~하면서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귀를 사로잡는 부분이 나왔다. 세계에서 행복도가 높은 지역인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공통점이 바로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이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다. 나의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포용성에 가깝다.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답을 찾아가며 살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서른에, 서울 한복판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늘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어서 수시로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 기술은 그 비교를 더욱 촘촘하고 빈번하게 만든다. 토스 앱을 켜면 나와 비슷한 연봉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얼마나 소비하고 있는지 알려준다(진짜 보기 싫은데 자꾸 보게 됨). SNS에 들어가면 기업 규모별 연봉 평균 테이블이 돌아다닌다. 평균에 비해 높다고 안도를 한다. 정답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얼마나 정답에 가까운 삶인지를 스스로 점검하면서 나만의 고유성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늦은 밤에 퇴근하는 K-직장인이 자신만의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약간의 억울함이 샘솟았다. 7일 중에 5일, 그 5일 중에 절대다수를 보내는 회사에서는 비교가 일상인데. 그 비교로 내 노동의 가치가 결정되는데. 그걸 어떻게 이겨낼 수 있나. 회사가 변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결국에는 이 나라를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갔다. 정신을 차리자 하면서 고민해 본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다.
나에게 집중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쓰는 버릇이 있는데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입을 열지 않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신과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말하지 못한 표현도 백지 위에선 가감 없다. 아쉽게도 요 며칠은 회사에서 겪은 억울함과 분노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확실히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모호했던 분노를 정리하고, 해결책을 냉정하게 찾아냈다. 어쩌면 자기 치유일 것이고, 나만의 예술을 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그리고 아름답다가 '나답다'에서 왔다고 한다. 역순으로 가보자. 나다운 걸 했을 때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했을 때 '예술'에 이른다. 내가 가장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도구를 찾아서 내 마음속 부유하는 생각을 가시적으로 만들어냈을 때 비로소 예술가가 된다. 아름다운 존재로 떠오른다.
우연히 만난 글귀로 오늘의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수준의 자해입니다.
_<시선으로부터> 중에서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했지만 이 문장에 격한 공감을 했다. 당신 안에 예술적 자아가 강하다면, 나다움을 표현하고 싶다면 절실하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숨 쉴 구멍이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