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만한 책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법
출근길에 되도록 챙기려고 하는 건 종이책 1권이다. (전자책 플랫폼 회사에서 일하지만 종이책이 더 잘 읽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가방 속에 넣어둔 책을 단 한 장도 펴보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럼에도 갖고 다니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를 잘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상심리가 크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으니까 퇴근길에는 순수한 즐거움, 도파민을 충전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휴대폰 화면에 넋을 놓는다. 출근길도 마찬가지다. 도착하면 또 숨 가쁘게 일해야 할 텐데 뇌에도 즐거움을 줘야 하지 않겠어? 하며 조용히 유튜브 앱을 켠다. 이어폰을 꽂고 남들의 화려한 일상에 과몰입한다. 그런 자극은 하루종일 따라다닌다.
그런데 손에 책을 쥐고 나가면 나의 노고가 아까워서라도 읽게 된다. 핸드폰도 무겁게 느껴지는 아침에 이렇게 가지고 나왔으니 한 장은 읽어보자 싶다. 그렇게 조금씩 읽다 보면 버스가 신호에 걸리는 순간이 반갑기도 하다. 책갈피 대신 쓰는 인덱스 필름을 반대쪽 손에 쥐고 좋은 문장에는 붙여둔다. 어떤 생각을 이끌어내는 문장을 만나면 달리는 차창 밖을 보면서 생경한 기분을 느낀다.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일상과 가장 멀어질 수 있다.
회사가 한 달에 한 번 주는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직장인이다. 일상 속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를 위해 사용한다. (나의 성장도 물론 섞여있긴 하지만) 그리고 그 나머지는 다른 회사 혹은 다른 세력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도파민에 절여진다면 오롯이 나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은 무엇인가 싶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출근하기 전에 책장 앞에서 오늘의 기분에 맞는 책을 선택하고 꼭 들고 나왔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안으로 선택한 책도 결국 타인이 만들어낸 세계 아닌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과연 주체성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한 힌트를 이승우 작가의 <고요한 읽기>에서 찾았다.
책을 읽을 때 독자가 실제로 읽는 것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타인이 만들어낸, 혹은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우리는 그냥 듣고만 있지 않으니까. 자동반사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내고 내 의견을 찾고 반박거리를 생각해 낸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에 가까워질 수 있다. 상대방이 명확하지 않은 디지털 세계에서 관심을 헐값에 팔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손바닥만 한 책으로 나만의 경계를 긋고, 그 안에서 깊게 더 깊게 내려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