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희망을 품다.
“제니(필명)님 수술 마치셨습니다. “
내 이름이 귓속에 콕 박히니 눈이 번쩍 떠졌다.
이곳은 서울 A병원 회복실이다.
진단받은 병원에서 당장 수술을 해 준다는 것을 고민 끝에 자의퇴원을 하고
A병원 응급실로 그냥 짐가방 하나 들고 들이닥쳤다.
응급실 의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우리 병원은 지금 병실도 없어요. 당장 입원도 안되는데 수술을 해준다는 곳을 두고 여긴 왜 오셨어요 다시 전원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저 그럼 어떡해요 이제 갈 곳 없어요.” 목놓아 울었다
의사가 “아니 지금 우신다고 해결될 게 아니에요 저한테 우셔봤자 해드릴 게 없습니다.”
울지 말라고 자꾸 혼을 내니 잠시 눈물 좀 닦고 뒤돌았는데 깜짝이야.
내 뒤편에 덩치 큰 남편도 주룩주룩 울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응급실 입성 11시간 만에 없다는 병실과 수술을 배정받았다.
이곳이 그렇게 들어온 회복실이었다.
“성함 대 주세요 여기가 어디죠? 오늘 며칠이죠?” 간호사 질문에 놓치지 않고 열심히도 대답하려 애를 썼지만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아 뻐끔거렸다.
“너무 추워요”만 간신히 뱉고 덜덜 떨기 시작하니 온풍기가 왔고, 의료진은 다시 내 곁에서 멀어졌다.
턱뼈가 덜덜 부딪히며 쉽게 진정되지 않는 온몸이 서러웠다.
‘수술은 된 건가. 배만 열고 다시 덮은 건가? 도대체 지금 몇 시간이 지난 걸까.'
이 수술까지 그간 얼마나 고된 말을 견뎌야 했던지 모른다.
대장암 입니다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천공이 있어서 전이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CT상으로 4기까지 염두하고 있고, 이 모든 상황은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
나를 절망에 빠뜨리는 수많은 말들을 들으며 동의한다는 사인을 하면서도 이것이 대체 누구의 이야기 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긍정 멘털이 되살아났다.
병실에서 낮잠을 자고 눈을 떴는데,
‘아싸 나 암 떼러 왔잖아? 그것도 여긴 대한민국 최고 병원이야’ 라며 뜬금없이 기쁜 것이 아닌가.
‘내가 왜 벌벌 떨고 있지? 벌벌 떨어야 하는 건 암덩이야.’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이상할 만큼 모든 것이 평안하고 안정되었다.
수술실 문이 닫힐 때 남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문득 그가 나만큼 가여웠다.
멀리 서 있던 그의 모습을 눈에 담고, 이제 모든 것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모든 건 나의 하나님께 맡기자.
늦은 밤까지 계속 연이은 수술을 하셨다며 다음날이 돼서야 주치의를 만날 수 있었다.
첫마디는 수술이 잘 되었다였고, 나의 대장 천공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방으로 싹 덮여 있었다라며 굉장히 이례적인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셨다. 할렐루야!
수술 건수가 많은 선생님의 입술에서 나온 저 표현은 더욱 희망으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최종 3기 진단을 받았고 예방항암 표준치료 8회 차가 주어졌다. 당장 내일 4차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다.
항암의 부작용과 힘듬은 내 필력으로 부족할 만큼 쉽지는 않다.
누구에게 말한들 줄어들지 않는 고통을 묵묵히 감사함으로 감당하기로 하였지만
가끔 나오는 애통함은 하나님께만 털어놓는다.
그리고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지금 이 시간에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절심함.
나는 결혼 후 세 번째 임신에서야 첫 출산으로 이어진 이력이 있다.
두 번의 유산. 내 뱃속에서 생명이 죽었다는 충격에 나는 온전히 신혼생활을 누리지 못하였고.
그때는 시골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에도 눈물을 흘렸다.
지나고 보니 내 품엔 두 아이들이 있고, 신혼때처럼 지금은 놓치는 일이 없어야겠노라,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겠노라, 더욱 의지가 타오른다.
어느 찬양가 가사처럼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내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였소 ‘
회사 대표님이 말했다 “제니 님 내가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
“대표님! 그냥 저에게 파이팅.이라고 하시면 돼요”
친구가 말했다 “너 얼굴이 해처럼 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