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4차 날이다.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암병원. 아직도 낯설지만. 빛나는 졸업장을 받기까지 열심히 다녀야지 다짐하는 곳.
종양내과 주치의는 오늘로 5번을 만나지만, 첫 만남 때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5월의 햇살이셨다. 지적인 외모와 야무진 설명, 그리고 따스한 위로를 갖추셨다.
메모지에 써가며 첫날에 앞으로의 항암치료 계획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데 종이를 내밀고 내가 볼 수 있게 본인위치에서 거꾸로 글씨를 쓰셨고 심하게 예쁜 글씨체라 감동받았다.
능숙하신 게 하루이틀 연마된 글씨체가 아니었다. 진료실을 나오기 전 고백 했다.
"선생님, 제가 앞으로 선생님 진료 신뢰하며 잘 따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활짝 웃으셨고 역시나 햇살 맞으셨다.
남편이 꿈벅 거리며 혼자 뻘쭘해하던 순간이었다.
내가 메모지에 설명 들은 내용 중 CT dna라는 임상연구가 있었다. 요지는 항암치료 전, 채혈을 해서 미세 암세포가 혈관에 떠 다니는지 알 수 있는 검사이고, 대략 결과는 10주의 기간이 소요되고 내가 참여자 조건에 부합되었다. 혹시 양성이 나오면 2차 임상 참여가 이어지고 그에 맞는 치료 디자인이 다시 행하여진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사비로 하려면 400만 원 이라는데 임상연구로 무료라니 땡잡았구나.
그렇지만 12주가 지나도, 결과가 나오면 바로 연락을 준다던 연구 간호사님은 연락을 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음성이어야 바로 연락을 주시나 보다.
내가 자리에 앉자 5월의 햇살님이 "결과가 나왔네요." 라며 뒷말을 안 하신다. 두근거렸다. 순간 예측된다.
"양성입니다."
몇 번 시물레이션을 돌려본 상황이었는데 대답도 못하고 바로 눈물이 또 고인다. 내 눈물은 어느 연기자 보다 빠르지 싶다.
"하 선생님 저 왜 양성이.." 뒷말은 못하고 울음이 터졌다.
"근데 이 검사 우리 항암 시작 전에 한 거고, 이미 항암치료 4차까지 진행되는데 지금 상황은 다를 수 있어요. 없어졌을 수 있고, 입자가 나노 크기 아주 미세한 거라 이미 걸러진 거 행운이라고 하면 위로가 되실까요. 재발률을 줄일 수 있게 된 거예요. 추적합시다. 지금 어디 전이된 거 아니고 무슨 일 난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CT 다시 찍고 채혈로 미세세포 아직있나 재검합시다"
햇살 선생님은 화끈하기까지.
KF94야 고맙다. 콧물아 나대지 마. 눈물보다 더 잔뜩 나온 콧물을 KF94는 지금 열일 중.
'아 콧물을 먹게 생겨서 더 이상 말을 못 하겠네'
그때 공손히 두 손을 모으더니 남편이 나선다.
"선생님 재검에서도 양성 나오면 어찌 되나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잘한다 남편.
"그럼 항암제를 바꿔야 될 수도 있어요. 다시 미세세포가 나오면 그에 맞게 디자인 설정이 또 되어 있어요"
암선고 때보다도 더한 속상함이 밀려왔다. 이놈의 암세포새끼. 징하기도 하지. 또 감히 어딜 떠다니고 있니.
그간 씩씩이로 잘 지내온 내가 많이 무너진 순간이다. 만약 또 양성이고 항암제를 바꾸면 새로운 부작용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데. 이미 항암 치료 절반을 완주했는데 여간 부담이 아니다.
오늘 나를 위로 해준 글귀를 찾았다.
이 두 컷 만화는 미국 유명 작가 '딕 브라운 (1917~1989)'의 '공포의 헤이가르'이다. 인생이란 배가, 폭풍우와 벼락으로 좌초될 때 우리는 하늘을 향해 분노하며 외친다. " 왜 하필 나입니까?!"
그러자 신은 이렇게 반문한다. " 왜 너여서는 안 되지?"
미국 대통령 조바이든이 1972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아들은 중상을 입은 젊은 시절 신을 원망하며 슬픔에 빠져있자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건네준 액자로 유명하다.
그리고 오늘 이 액자로 나도 위안을 받았다.
기분이 나아졌다. "여보, 우리 유천냉면 먹고 가자" "그래, 좋지"
항암의 여파로 내일부턴 입맛 뚝일 시기라 지금을 즐기자!
동시에 말했다 "너~~~~무 맛있어"
하나님은 또 나를 갈림길에 놓아두셨다.
아니다, 생각할수록 꽃길에 두신 거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손 꼭 잡고 다시 일어나 힘차게 걸을께요.
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