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윤헌 Mar 06. 2024

엄마의 전화

엄마의 전화


 2014년 10월 24일(음력 9월 20일)이 나의 생일이다. 벌써 53번째라니 참 세월이 빠르다. 남의 집은 생일이라고 선물 챙겨주고, 축하 행사로 분주하게 활동하지만, 우리 집은 생일에 큰 행사를 잘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생신은 동네 사람들 초대하여 아침을 같이 먹었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생신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갔기에 최고 어른만 생일이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생일에 맨날 콩나물국만 준다고 투정 부렸고, 중학교 이후 대학 시절에는 연탄불이 꺼지면 나의 생일이구나! 을 직감했다. 지금이야 정보통신이 발달하여 괜찮지만, 그 시절만 해도 전화가 거의 없고 양력으로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음력 생일을 챙기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는 내가 가장이니 아내가 꼭 챙겨주고 아이들이 크니 내 생일이면 아이들이 더 야단법석을 펴니 생일 잊어먹을 일이 없어졌다. 결혼하고는 아침에 미역국이 있는 생일 밥상을 먹고는 출근하기 전에 꼭 엄마에게 전화하여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정말 진심에서 나오는 감사 인사를 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에 내가 엄마에게 전화하고 있는데 자기도 바꿔 달라고 하기에 전화기를 주니 대뜸 하는 소리가 “할머니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을 낳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서 한참 동안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올해는 딸은 서울 가서 없고 아들은 군에 입대하여 근무 중이다. 지난 금요일(18일) 유럽 여행을 40일간 하고 돌아온 딸이 집에 내려와 있다가 서울 가기 전에 아버지 미역국 끓여 주고 싶다면서 계란말이와 잡채까지 해서 이른 생일상을 받았다. 어제는 군대 간 아들이 전화가 와서 내일 축하를 해야 하는데 내일 사정이 어찌 될지 몰라 미리 전화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들의 생일 축하 파티는 일찍 끝냈다. 생일잔치도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느끼는데 큰 몫을 차지하는데 식구들이 자기 할 일이 바쁘니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우리 자식에게는 생일 파티를 아이들이 만족할 만큼 성대하게 차려 주었다. 주로 책 선물이지만 선물을 해주고 아침에는 꼭 미역국을 끓여주고 저녁에는 아이들의 원하는 음식으로 외식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원망이 적은 것 같다. 딸이나 아들이 아직도 집에서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가 미역국이라고 한다. 그만큼 분위기와 맛이 조화를 이루어 기억에 오래 남은 것 같다.     

 생일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출근하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지금쯤 전화를 걸면 “ 오늘이 너 생일 이제” “미역국은 끓여 주더나” 하시면서 정담을 나누던 엄마가 1년 전 돌아가셨다. 전화기에 엄마라고 적혀있는 전화번호도 삭제되어 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사모제(思慕祭) 때에 우연히 엄마라고 적혀있는 핸드폰의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가 받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여 고함을 지르고 집안이 갑갑하여 마당으로 나가 심호흡해도 안 풀려 아내가 약국에서 약을 싸서 먹고 겨우 진정하고는 전화기에서 어머니 전화번호를 바로 삭제해 버렸다. 하늘나라에서도 전화를 받을 줄 알았던 어머니 전화가 아니었던가. 1년이 지나고도 핸드폰에 어머니 전화번호를 찾는다. 그러나 없다. 엄마 생각이 간절하여 눈물이 난다. 이제 좋은 곳에 가 계시는 엄마를 위해 울 필요도 없다고 다짐하였지만 내 마음에서 울먹이는 것을 막기 힘든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내년에도 이래야 하나???     

                                             2014. 10. 24 憲               

작가의 이전글 조카 자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