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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Apr 08. 2024

참사랑

 사랑하기도 어렵지만, 사랑을 그만두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심한 상처를 입고 사랑을 그만두면 몰라도 사랑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을 끝내려는 것은 생살을 뜯는 아픔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귀한 사랑으로 첫눈에 반한 사랑이든 인격적인 사랑으로 포장하면 할수록 헤어지기는 더 어렵다.     

세령이 창덕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던 창덕이 “미안, 회의 중 좀 이따 할게요.” 하더니 그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전화가 오지 않자, 세령은 공책에 낙서한다.

‘인생을 송두리째 시궁창에 밀어 넣은 내가 가장 처참하게 흉악스럽게 나에게 복수하는 것이 무엇일까? 61년 세월의 공든 탑이 밑돌 하나 빼니 와르르 무너짐의 아픔에 가슴이 아프다.

밑돌은 아니네. 돌탑의 60/61지점이네. 만남 자체가 잘못되었네. 대오각성해야지. 아니다 대오각성이 아니라. 나 자신을 처참하게 뭉개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3일 후 세령에게 전화가 왔다. 창덕이다. 참 빨리도 한다. 받지 말까? 망설이다 전화를 받자. 아주 경쾌하고 유쾌한 목소리로 “세령씨. 여기 부산이요. 나와서 밥 먹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만남이 10개월 다 되어가는데 한 번도 자기에게 “세령아”로 부르지 않고 “세령 씨”라 호칭하고 반말하지 않음을 오늘에야 알아차렸다. 세령의 집이 부산의 서면 중심가라 가까운 한정식에 둘이 마주 앉았다.

“세령 씨 잘 지냈나요.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가워요”

“오빠는 어떻게 지냈나요. 오피스텔에 나왔다는 말 듣고 많이 놀랐어요”

“부부간에 싸움이 컸나요?”

“아니요. 부부싸움도 좀 무식하게 해야 하는데 둘 다 지성미가 넘쳐 합리적으로 해결했어요”

“세령 씨. 정신 놓았다기에 걱정 많이 했어요.”

“이제 괜찮아요. 오빠 우리 앞으로는 어떻게 하죠.”

“계속 사랑할 수 없나요. 이것이 끝이라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끝낼 수 있겠어요. 세령씨는 나를 마음속에서 가슴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있겠어요, 난 그렇게 못해요. 진짜 좋아하지 않았으면, 단양에 가지도 않았어요. 단순한 하룻밤 불나방이라면 여기서 끝낼 수 있지만 우리는 끝낼 수 없어요.”

“끝낼 수 없으니 답답하죠. 그렇다고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으니 더 힘들잖아요.”

“세령 씨 주인은 일이 시작되어 그 작업이 끝이 나야 일이 끝나는 것이고, 머슴이나 노동자는 일의 시작과 마무리는 상관없고 주어진 시간을 채우면 하루 작업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 사장이나 농장주는 해가 빠지고 어두워 일할 수 없으면 집에 가지만, 노동자는 해가 중천에 있고 일이 많이 남아 있어도 계약한 시간이 다 되면 바로 퇴근합니다. 우리는 주인이 될까요. 노동자가 될까요.?”

세령은 갑자기 창덕이 크게 보인다. 어쩌면 저리 유식하고 예를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할까? 둘은 음식이 들어와 식사한다. 창덕은 여전히 자상하게 세령에게 이것저것 권하며 맛이 있느냐고 묻는다. 세령이는 고개를 흔들며 이 사랑을 부정하고 싶다. 이대로 계속 진행하면 보따리 사 들고 창덕의 집으로 갈 것 같기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에 마주 앉아 보는 두 사람의 눈은 이글거릴 정도로 불타 있다. 

창덕이 일어나 세령 옆에 앉는다. 둘은 손을 잡고 살며시 키스한다. 역시 달콤하다. 오 하나님 이렇게 좋은데 어찌 헤어져라. 말입니까? 둘이 동시에 외치는 마음의 소리다.

종업원이 후식을 가져왔다고 문을 연다. 둘은 부끄럼보다 떨어지는 것이 싫었다. 종업원이 깜짝 놀라며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문을 닫고 나갔다. 둘이 일식집에서 했던 일이 한정식, 집에서도 이루어졌다, 종업원에게 미안했다.

둘은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년이 흘러갔다. 창덕의 사업은 여전히 번창하여 큰 공장 하나를 더 증설하고 규모는 적지만 꼭 필요하여 사업장을 2개를 더 확장했다. 이제 공장 규모가 개수로는 8개이고 공장은 만 평이 넘었고 종업원도 1,600명에 육박했다. 창덕은 집에서 현숙과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고 매우 평화롭다. 세상 부러울 필요가 없는 모습이다. 세령도 공황장애에 가깝던 시간이 지나가고 남편과 관계도 많이 회복되었다.      

창덕과 세령이 만나 사랑을 키워온 시간도 1년이 지났다. 가정이 깨어질 사건인데도 주변 가족의 고통과 인내로 두 사람은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다고 창덕과 세령의 사랑이 식어가지는 않았다. 좀 더 은밀하게 표면에 떠 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창덕이 사업이 더 많이 번창하였다. 세상에 공짜로 돈을 주는 사람이 없으니,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바빠진다. 창덕이 많이 안정되고 가정에도 충실하고 사업에도 매진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행복해진 현숙이다. 창덕은 창원과 영천, 밀양에도 사업장을 열었고 최근에는 국제적 기업인 전기차 선두 업체에서 알루미늄 납품을 제안받았다. 그래서 창원에서 좀 떨어진 사천에 조선업 납품 업체 부도난 곳을 경매받았다. 규모가 만 오천 평 규모다. 지금까지 창덕이 설립한 사업장보다 더 큰 규모이다. 공장 조성비 대부분을 전기차 업체가 공여하고 알루미늄 부품을 차질 없이 납품하기로 하는 아주 좋은 조건의 사업이다. 바쁜 와중에도 세령과의 소통은 계속했다. 통화를 하거니 카톡을 한다. 단 현숙과 같이 있는 시간이나 밤에는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숙에 대한 남편의 의무이자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령과 1박 2일 여행 후 이혼까지 생각했던 현숙도 자기 때문에 창덕이가 외도한다고 생각하고 한 달이나 두 달 만에 창덕의 성적 욕구도 받아주었다. 그렇게 흥분할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싫지는 않은 부부관계이다.     

 세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창덕과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가끔 세령에게 사랑을 구애하지만, 그리 흥분될 일이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하룻밤을 보내면 남자는 만리장성을 쌓지만, 여자는 그 당시의 달콤함으로 만족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세령은 정반대이다. 지금까지 창덕과의 사랑을 머리에서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황홀한 시간이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창덕과 같이 잠자리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물론 아주 가끔 창덕이 부산에 출장을 오거나 세령을 찾아주면 짧은 시간이지만 회포를 풀기는 해도 좀 더 짜릿한 기분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좋은 꾀를 내었다. 다름 아닌 골프 모임이다. 세령이 골프 모임에서 해외 원정으로 골프를 치러 가는 계획이다. 이 모임에는 세령의 친언니가 있어 신랑이 세령을 의심하지 않기에 좋은 기회이고 허락도 쉬운 것으로 생각했다. 평소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세령이가 밴드에 공고를 한다. 

「부산 00 골프 회원님 안녕하세요. 해외에서 골프 모임을 주선합니다.

일시: 2021년 6월 23일~25일

장소: 말레이시아에 쿠알라룸푸르 cc

경비:호텔 2박, 라운드 2번, 비행기 삯, 기타 경비 자기 부담

정확한 경비는 여행사와 협의 후 공고합니다.

인원:8명

신청자 선착순으로 받겠습니다. 댓글 달아 주세요. 세령 올림.」

이렇게 공고하자 재력이 있고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 8명이 동시에 댓글이 달린다.

이 중 남자 한 명은 꾸준히 세령에게 추파를 보내는 남자도 있었다.

해외에서 세령에게 잘 보여 스치는 인연이라도 맺어 보고 싶은 사람이다.

해외 골프 인원이 확보되고 세령은 여행사와 계약을 했다.

그러고는 창덕에게 골프 치러 간다고 연락도 했다.     

 창덕은 자재 총괄부장을 불러 말레이시아에 알루미늄 원석 자재 확보를 위해 출장을 가자고 한다. 자재 총괄부장도 곧 갈 예정인데 회장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6월 중에 가도록 하겠다고 하자 날짜를 6월 23일에서 25일 사이로 정한다. 회장의 지시이니 그 시간을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 직장인이 아닌가? 창덕에게는 고향 친구이자 같은 대학에 불문과를 졸업하고 해외 파견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말레이시아에서 물류 사업을 하는 친구가 오래전부터 공을 치자고 연락이 온 친구가 있다. 세령이가 아니라도 말레이시아에 출장 가거나 여행도 가고픈 마음이 있었다. 창덕은 자재부장에게 세령이 머물 호텔에 방 두 개를 예약하라고 지시하고 말레이시아에 가서 무엇을 할까, 생각에 잠기었다. 23일 오후 출발하는 비행기라 하루는 비행기에 있어야 하고 24일에는 자재 확보 계약서에 서명하고 24일은 친구와 공치고 저녁에는 술 한잔하고 25일에는 귀국해야 하는 일정이다. 세령과 만남이 불발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드디어 23일이다. 김해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진행하는데 세령의 일행이 보인다. 창덕은 가슴이 뛴다. 오랜만에 세령의 모습을 보니 더 젊어지고 세련된 모습이다. 8명이 모여 떠들고 있는데 그중에 세령의 자태만이 돋보이는 모습이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창덕은 비즈니스석을 예약했고 여행객은 이코노미석이다. 비행기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세령의 곁을 지키며 비행기에 탑승한다. 아무도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한다. 같이 출장을 가는 자재 총괄부장도 “회장님은 운도 좋으시네. 저런 미인과 같이 걸어갈 수 있나?” 하면서 투덜댄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비행기가 떠 오르자, 세령이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석은 꽉 찬 상태인데 자리를 바꾸어 줄 수 없다. 승무원이 세령을 데리고 비즈니스석으로 잠시 가 있으라 한다. 마침 창덕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창덕이 승무원을 불러 옆좌석에 추가 요금을 지급할 테니 그냥 여기서 가도록 조치해 주라고 부탁한다. 세령의 연기인지 진짜 가슴이 답답한지 몰라도 세령과 창덕은 나란히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말레이시아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쿠알라룸푸르로 호텔에 도착하여 식사하고 쉬고 있는데 자재부장이 가까운 곳에 차이나타운이 있는데 술 한잔하시겠느냐고 물어본다. 창덕은 세령이가 올 것 같아 좀 피곤하여 쉬고 싶다며 자재부장 혼자 갔다 오라고 한다. 

 세령이 팀들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호텔에 도착했다. 세령은 언니와 한방이 배정되었다. 언니가 같이 나가 쇼핑하자고 제안하니 몸이 어지럽다며 혼자 갔다 오라고 한다. 언니가 혼자 갈 사람은 아니고 동생이 몸이 걱정이다. 저녁 8시가 되자 세령은 바람 좀 세고 온다고 혼자 호텔 방을 나와 창덕이가 있는 호텔 방으로 향했다. 기다리든 창덕은 너무 좋아 세령을 번쩍 안고 소파로 간다. 너무 좋은 시간이다. 호텔 밖 야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창덕이 세령에게 맥주 한 잔씩 하자며 냉장고에 맥주 2캔을 꺼내왔다.

“세령씨 이렇게 호텔 방에서 세령씨와 같이 있으니, 기분이 다른 곳보다 이상하네요. 이렇게 둘이 해외 호텔에서 같이 있을 줄 꿈에도 생각 안 했는데?”

”오빠는 세령이를 뭐로 보는 거야. 난 마음만 먹으면 오빠를 내 품에서 못 떠나게 할 수 있어. 호호호“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인데. 나도 세령씨 벗어나고 싶은 생각 하나도 없어요. “

창덕이 방에 온 지 20분도 되지 않아 세령이 언니에게 전화가 온다.

”세령아 너 어디니 몸도 안 좋다는 애가 혼자 나가면 어떡해“

”언니 나 호텔 로비에 있어 곧 들어갈게. “

”호텔 로비 어디 있는 거야? 내가 너 찾아다니는데, 안 보여서 전화했어.“

”언니 10분 내로 방으로 갈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세령이 창덕을 쳐다보며 멋쩍게 웃는다.

”오빠 미안“

”아니에요. 잠시라도 이렇게 오붓하게 있는 게 어딘데. 감사해요. “

창덕은 세령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키스한다.

진짜 가기 싫었는지, 꽤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는 두 사람이다.

세령이 호텔 방에 나가고 30분 후에 자재부장이 안주와 양주 한 병을 가지고 와서 회장에게 한잔하시고 주무시라 하며 나간다.

창덕은 혼자 무슨 술을 먹느냐며 자재부장과 마주 앉아 회사 이야기며 가정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하면서 양주 한 병을 비우고 잠자리 들었다.     

 24일 9시에 자재부장이 계약서 서명하러 갈 시간이라고 호텔 방에 왔다. 차이나타운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 겸 협약하기로 했다고 한다. 창덕은 정장 차림으로 음식점으로 갔고 상대는 알루미늄 자재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자료를 제시하고 동영상으로 자신의 산업현장을 소개했다. 창덕은 산업현장을 시찰하고 협약하자고 제안했고 일행은 헬기를 타고 2시간 거리에 있는 채굴 현장을 답사하고 오후 늦게 계약서에 서명했다. 두 회사 모두 필요했기에 만족하는 거래였다.     

 한편 세령의 팀들은 버스로 이동하여 골프장으로 갔다. 외국 라운딩을 가끔 하는 팀이라 준비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국이나 말레이시아나 별반 다름을 모르고 준비한다. 그래도 외국 라운딩이라 모두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다. 세령은 어떻게 하면 창덕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궁리하느라 골프에 집중하지를 못했다. 언니에게 질책당해도 ‘보기’만 자꾸 한다. 그렇게 18번 홀 다 돌고 난 성적이 세령이 꼴찌다. 한국에서는 늘 상위였는데 오늘은 꼴찌다. 세령의 머리에 묘안이 없어 더 시무룩하다. 골프 회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세령 언니 오늘 시차 적응이 안 되나 봐요. 평소 실력 반의반도 나오지 않아요. “

”세령 씨. 내가 팬인데 이제 팬을 접을까요. 내일 한 번 더 보고 결정할게요. 하하하“

평소 세령에게 꾸준하게 추파를 보내는 남자다.

”세령 아우님 힘내요. 내일은 잘 칠 거요“

”세령 누이 힘내세요. “

언니가 일갈한다.

”애는 어제저녁부터 귀신에게 홀렸나 왜 이리 정신을 못 차리지. 밤에 잠도 뒤척이며 못 자더니. 미국과 유럽을 다녀도 비행기에서 가슴 답답하다는 것 못 들었는데 겨우 동남아 왔는데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 않나? 애야 정신 차려. 자기가 팀 만들어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때에 따라 형제자매가 더 얄밉고 원수보다 더 미울 때가 이럴 때라고 세령을 생각했다.

빨리 호텔로 가고 싶다.     

 호텔에 도착하여 각자 자유시간을 가졌다. 저녁 식사는 호텔 뷔페로 6시부터 한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이다. 세령은 혹시나 하여 창덕의 방에 가 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업차 온 사람에게 문자를 하려다가 참았다. 세령은 호텔 수영장으로 갔다. 기분이 울적할 때는 수영이 가장 좋았다. 비키니 수영복 입고 몸매 과시하며 물살을 가르는 것이 세령이는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한 시간을 수영 마치고 방으로 가니 언니가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는다. 수영 갔다 왔다고 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언니는 수영이란 말에 근심이 덜 했는지 세령을 가만히 놔두었다.     

 창덕은 계약서에 서명하고 중국 음식과 ‘보풍주’로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온 시간이 7시가 좀 넘었다. 자재부장이 내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 온다. 창덕은 친구와 약속이 있으니 자재부장은 돈 아끼지 말고 말레이시아 관광하고 집사람에게 좋은 선물도 준비하라며 법인카드를 내주었다. 자재부장은 허리가 90도 가까이 인사하며 고맙다고 나간다. 

8시가 되어도 세령의 연락이 없다. 

창덕이 카톡으로 ”무슨 일 있으세요. 방금 호텔로 왔습니다.“

곧 연락이 온다.

”내일 뭐 하실 거예요.“

”고향 친구가 이곳에 있어 만나볼까? 합니다.“

”약속 잡지 말고 나하고 놀아요.“

”골프팀은요“

”내가 다 생각 있으니 내일 시간 비워요.“     

 25일 아침이다. 골프팀이 골프 치러 가려고 할 때 세령은 속이 아프다는 핑계로 호텔 방에 있겠다. 한다. 어제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되고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다. 그러자 언니가 그러면 나도 동생하고 같이 있을께 한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잘 되면 좋겠지만 늘 계획된 일에 불쑥불쑥 예견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세령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 시간 정도 하고 쉬면 괜찮을 것 같다며 언니를 골프팀으로 가게 한다. 다행히 언니가 수궁하고 버스는 호텔을 빠져나간다.

”야호“ ”이제 내 자유고 내 세상이다“

창덕의 방으로 가니 기다리고 있었는지 세령을 반긴다.     

 1년을 기다려 온 육체적 열정이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폭발하게 된다. 1년을 어떻게 참았는지 하나님은 아실런가 모를 일이다. 이제 두 사람의 육체적 결합이나 사랑 방법 애무 방법은 교과서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다양하며 두 사람의 성적 쾌감의 반응도 좋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 두 사람은 나란히 벗은 채로 침대에 마주 앉았다. 60대 중반의 창덕 몸도 아직 반듯하고 60대 초의 세령의 몸매는 군더더기가 없다.

세령이가 먼저 말을 한다.

”오빠 우리 사랑은 지나가는 스치는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이 맞제“

”그럼요. 참사랑이지요.“

”오빠 나는 뭐가 참사랑인지 모르겠어“

”세령씨 잘 들어봐요.

우리가 만나 사랑을 나눈 뒤 1년이 지나가도 둘이 무엇을 요구한 적이 하나도 없지요.“

”그럼요. 사랑하는데 요구할 것이 무엇 있나요.“

”참사랑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주체적으로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무엇을 구걸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사랑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라 참사랑이라 할 수 없지요.“

”사랑하는데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있나요. 그냥 몸이 요구하는 대로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이번에 오빠 만나고 느낀 것이야.“

”세령씨 또 육체적 욕구만 강요하는 것도 정말 참사랑은 아니거든요.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혼연일체가 되었을 때 우리가 참사랑이라 할 수 있어요. “

”오빠 난 솔직히 말하면 오빠와 육체적 사랑이 더 좋을 때가 있어. 옹녀인가 봐? 히히“

”그건 정신과 육체가 어느 것이 우선인 것은 관계없어요.“

정신과 육체가 따로 가지 않고 같이 있으면 진실한 사랑입니다”

“역시 오빠는 해박한 지식과 인품이 어우러지고 멋쟁이야.”

“세령씨 우리가 언제 어찌 될지 모르니 오늘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진실하게 살아요. 누구에게 의존하지 말고 내가 선택하는 그것이 가장 좋은 진실한 선택임을 명심하고 살아봅시다”

“오빠 나 고백할 것이 있어.”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나?”

“사실 나는 자금까지 가족이란 속박에 너무 갇혀 살아왔던 것 같아. 모든 잣대를 가족의 평화, 행복으로 삼아 살았거든. 내 몸이 섹스를 원해도 아이들이 있으면 앓는 소리가 들릴까, 봐서 참고 또 참았고 내가 원할 때 신랑이 술을 먹고 오거나 기분이 나빠도 참았거든. 다른 사람들은 외모도 이쁘고 마음씨 착한 요조숙녀 히히 아니다 현모양처라 칭찬하고 남편은 돈이 어느 정도 풍족하면 여자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오빠를 만나고 완전히 생각이 바뀌더라”

“아이고 우리 공주 많이 컸네. 뽀~~”

“히힛 오빠에게 칭찬 들으니, 기분이 더 좋네.”

“세령씨 솔직함, 진실함, 나의 의지에 따른 주체적 결단력, 구속당하지 않은 공동체 협동이 후회되지 않는 삶이 될 거요”

“오빠 히히 하나 더 고백해도 되나?”

“뭐든지 다 들어 줄게요”

“난 오빠 안 만났으면 오빠의 이 단단한 걸 모르고 그냥 죽었을 거야. 고마워”

하면서 손으로 죽어 있는 창덕의 은밀한 곳에 손이 간다. 그리고 한참을 만져 준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세령의 손길이 닿자 불쑥 일어선다.     

 둘은 밖에 나가 점심 먹는 시간도 아까워 룸서비스로 해결했다. 침대에 누워 팔베개로 최대한 가까이 마주 보며 이야기하다가 팔이 아프면, 창밖을 보며 나란히 서서 무언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골프팀이 올 시간까지 최대한의 시간을 둘이 같이 보냈다. 대화에 의견 차이가 있을 법도 하지만, 창덕의 인품과 해박한 지식이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가 요구하는 것이 별로 없어 사건을 만들지도 않았다. 세령은 창덕의 큰 인물에게 매몰되어 속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진솔하게 하였다. 자신이 질투가 많아서 창덕의 아내가 미워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너무나 편안하고 갈수록 소통이 잘되어 이제 다른 사람과 소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속 깊은 이야기에 시간은 너무 짧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오빠 이 나이에 오빠를 만나 참사랑을 하지 못했으면 엄청나게 후회했을 거야”

“하하 경험하지 못하면 인식하지 못해 느낌이 없거든요. 만나지 않았으면 그때 그 시간에 만족하며 살았겠지요.”

“오빠는 정말 말도 잘해. 그런데 이런 참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인생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세령씨 우리는 참사랑이지만 남들은 불륜이고 외도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 보면 인생의 윤리적 잣대가 무엇인지 가끔 혼돈이 와요.”

“오빠.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다. 어느 사상가가 말했잖아요. 남의 시선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우리 사랑이나 잘 챙깁시다.”

“세령씨가 불륜을 저질러더니 이제 철학자의 사상으로 이론을 무장하시네. 하하”

갑자기 세령이 정색하며 창덕을 노려본다.

“불륜이란 말 이제 절대 하지 마세요. 우리 사랑이 불륜으로 추락하면 내가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창덕이 세령의 얼굴을 가만히 만지며 볼에 가볍게 입술로 뽀뽀한다.

“아이고 이뻐라! 이렇게 사랑에 신념이 강한 공주에게 불륜 이야기를 했네. 미안해요”

세령이 창덕의 목에 팔로 매달리며 아주 산뜻한 미소를 날린다.

붉은 입술에 가지런한 치아가 빛이 난다.

헤어지기 아쉬워 호텔 방에서 마지막 포옹을 하고 둘은 헤어졌다. 세령이 가고 창덕을 짐을 챙겨 공황으로 갔다. 자재부장이 흡족한 얼굴로 창덕을 맞이했다. 창덕은 법인카드의 효력이라고 생각했다.     

 골프 회원이 올 때쯤 세령은 자기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컨디션 안 좋다던 동생이 얼굴 가득히 웃음 띤 얼굴로 언니를 맞이하자 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동생 덕분에 자신의 골프는 망쳤다. 25일 저녁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는 세령이 창덕의 옆으로 가지 않았다. 낮에 두 사람이 충분히 이야기하고 사랑을 나누었기에 가슴이 답답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잘 흘러간다. 창덕과 세령이 만나 사랑이 시작한 것이 2년이 지나가고 있다. 창덕의 가정과 세령의 가정은 온화하고 무탈하게 살고 있다. 창덕은 현숙에게 더 자상하고 세심한 남편이고 손주에게는 최고의 할아버지요. 회사에서는 존경받는 회장님으로 살았고 세령도 가정에 충실한 가정주부이자 남편의 내조자요. 취미생활로 자신을 가꾸며 손주에게 이쁜 할머니로 살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두 곳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지만 창덕과 세령은 상대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참사랑이기에 두 곳에 흐트러짐 없이 지키고 있었다.

창덕과 세령은 시간이 갈수록 사랑이 깊어졌다. 정신적인 교감은 첨단통신을 이용하고 기회가 되면 둘이 만나서 정열적인 사랑을 하는 둘의 모습을 누가 흉내를 낼 수 있을까.? 

                                                                 -The end-

                                                             2021.10.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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