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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07. 2023

희망의 허상

희망의 허상     

 지나간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미래는 나의 존재가 있는 한 반드시 온다. 반드시 오는 미래이기에 우리는 현실에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불확실한 일의 성취에 대해 희망을 빈번히 예견한다. 현재의 배고픔은 참을 수 있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은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란다. 옳은 말이라고 인정해도 희망이란 허상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아픔과 실망감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실패의 아픈 결과에서 또다시 희망이란 허상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기에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에 신빙성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과거를 회상하면 좋았던 부분보다는 힘들고 괴로웠던 부분이 더 많았기에 미래는 장밋빛 인생의 희망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과거가 찬란하지 않아도 과거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현실의 쓰디쓴 실패를 안고 살아가고 있기에 현실 도피용으로 과거를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꿈을 펼치지 못한 사람은 오지도 않을 미래의 희망에 목숨을 건다. 과거의 찬란한 회상은 이미 지나갔으니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고, 미래는 예측할 수 있는 일보다는 돌발의 변수가 많기에 긍정적, 낙천적 희망으로 낙관하기에는 감나무 아래서 홍시 떨어지길 바라고 누워서 입을 벌린 모습이다. 그래서 미래의 희망보다는 현실을 어떤 의지와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훨씬 중요한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대부분이 불행하고 현재는 먹고 살기에는 별 이상이 없지만, 빈부의 격차 때문에 삶이 어려워 미래에는 복지가 잘 되는 나라로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논리도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가난한 시절에도 행복과 불행은 늘 동반하여 다녔고 현재의 빈부의 격차가 심해도 부자에게 불행이 있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행복은 있다. 미래에 복지가 아무리 완벽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행복과 불행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기에 외부 환경 조건은 조건에 지나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종교적이든 미신이든 늘 미래의 희망을 소원한다. 절대자나 신에게 부탁하고 간절히 빌면 소원 성취된다고 믿지만, 실제는 본인의 의지가 간절하기에 그 일이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 신이 우리 삶의 미래에 늘 축복을 준다고 믿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이 나에게 축복을 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내가 아무 일 없이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고 열심히 실천하다 보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 오히려 신은 나의 앞길에 장애물만 설치하고 나는 그 장애물을 치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 것이 내 삶의 전부이고 그 성적표가 현재의 나의 삶의 모습이다. 옛날에는 40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지만, 현재는 60대에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교단에 발 디딘 지가 30년이 지나간다. 올해도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내가 교직 처음 시작할 때 약관(弱冠)의 나이로 건방지게 “내가 지금 가르치는 것이 30년 후에 너희들 마음속에 남아 행동의 지표가 된다면 나는 성공한 스승이 될 것이고 아무 반응이 없거나 우리 선생님의 말씀에 속아서 내 인생이 쪼그라졌다. 하면 나는 실패한 스승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출발했다. 내가 가르친 주제는 인간의 궁극 목적이 ‘행복’이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주체적 의지(意志)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며 수단을 목적으로 도치(倒置)시키는 일이 없으며 ‘나눔과 배려’가 행복의 근원이 되는 인간성을 기르는 것이다. 나눔과 배려를 위해서는 포용(包容)과 인내(忍耐)가 선행되어야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미래의 희망에 허상을 잡지 말고 현재의 나에 충실하려는 것이다.     

 37주년 스승의 날이다.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낯선 여인이 “홍윤헌 선생님입니까?” 한다. 꽃 배달을 온 것이다. 고난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현재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졸업생이다. 오후 퇴근 무렵 말쑥한 양복 차림의 청년이 무거운 과일 바구니를 들고 땀을 흘리며 나에게 인사한다. 반갑게 맞이하였더니 나에게 과일 바구니를 정중하게 내민다. 졸업생은 보통 고3 담임을 즐겨 찾는다. 2학년 때 담임한 기억은 있다. 짧게 “왜”하니 겸연쩍게 웃으며 “선생님이 나의 하나뿐인 선생님이니까요”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다닐 때 쉬는 시간에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담임으로 아주 진지하게 가수의 길로 진로를 권장했는데 실제로 가수가 되어서 나타난 제자이다. 기분이 확 좋아진다. 이것 말고도 많은 편지와 점심, 저녁 식사 대접 영화표 선물 등등으로 많이 감동한 스승의 날이다. 30년 후 희망의 허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10년 만에 찾아오니 너무 일찍 찾아오는 결과이다.     

                                       2018. 5. 16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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