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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un 19. 2024

배신(背信)

배신(背信)     

 삶을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과 인연(因緣)을 맺었다가 죽을 때까지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흔적도 없고 뇌리에 남아있지도 않는 인연인 경우가 많다. 농업 사회에서는 인구 이동이 적어 한 번 맺은 인연은 생명을 다해야 끝이 나지만 현대 사회는 대부분이 스치는 인연이 많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소중함도 만남의 인연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헤어지는 모습도 만남의 일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예를 들어 학교에 다니다가 졸업하면 친구라고 하던 사람도 만남이 끝이 나고 오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도 퇴사하면 대부분 만남이 끝이 난다. 그런데 가끔 배신 때문에 만남이 끝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돈 때문이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스스로 모든 인맥을 끝내는 경우가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을 배신이라 한다. 배신을 잘 살펴보면 객관적 진실에 바탕을 두는 경우 보다 자기의 주관적 심경 변화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본인의 생각 없는 행동에 상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도 있다. 배신이란 보통 타인과의 관계에서 설정되는 것이다. 내가 계획하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같이 하지 못하면 의리가 없고 믿을 수 없다고 판명하여 배신이란 말로 명분을 쌓고 헤어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보통 일상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나도 주체적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을 했는데 배신으로 헤어진 사람은 내 기억에 별로 없다. 배신으로 멀어져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을 할 수 없다가 맞는 말일 것이다. 아니면 나의 행위에 생각하지도 못한 일로 상대가 나에게 배신감을 가지고 떠나간 일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내 등골이 오싹해진다.     

배신하면 떠 오르는 것이 금전(金錢)적 문제이다. 산업 사회가 도래하면서 화폐 사용이 많아지고 돈 없이 살 수 없는 생활환경 때문에 돈에서 신용 문제가 발생한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에게 보증을 서게 하여 사업이 실패하면 모든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만든다. 보증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자주 있던 문제이고 인간관계의 주요 갈등 요인이었다. 신용카드가 사용되기 전에는 ‘외상’이 상거래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믿고 거래하는 대표적 상거래다. 특히 단골이라는 명목으로 외상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음식을 먹고 월급을 받거나 농산물을 팔아 돈이 생기면 갚는 상거래다. 대부분이 신용으로 거래하는데 가끔 신용거래를 위반하는 사람이 있어 주변 사람에게 인간 취급 못 받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금전적 거래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 배신이었다.     

 정보 통신 사회가 도래하면서 배신의 형태가 ‘댓글’ ‘뒷담화‘에서 많이 생겨난다. 댓글에서 오는 오해가 인간관계의 단절을 초래하고 뒷담화로 대판 싸움으로 번지거나 관계를 단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젊은 세대는 자기와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댓글을 달지도 않고 ’좋아요‘ ’구독‘도 눌리지 않는다. 어쩌면 정(情)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오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최근에 배신의 쓴맛을 맛보았다. 누가 나에게 믿음이나 의리를 배반했다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에 스스로 배신의 쓴맛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나 스스로 화내고 스스로 화해하는 모습에 나에 대한 믿음이 사그라졌다. 지금까지 정성을 다해 가꾸어 온 삶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너무 허무하고 허망하여 홀로 가슴에 저미는 아픔에 작은 원망을 해 본다. 자신의 배신감에 자신을 질책해 보지만 아무런 근거 없는 텅 빈 마음에 직관력에 의존하는 무력감과 무능함에 또 한 번 배신감에 우울해짐을 느낀다.     

 인간은 사랑에 대해서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이상적이고 완벽한 완성형을 꿈꾼다. 사랑에 대해 환상은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일수록 더 이상적인 사랑을 꿈꾼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상대를 많이 배려했다고 생각하고 응답이 없으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마음에 상처 입은 나는 무슨 증거도 없지만, 자신의 마음이기에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강력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마음 가득히 채워진다. 슬프고 괴로운 기억을 달래기 위해 나는 침묵한다. 침묵은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분노와 억측만 키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처럼 결점이 많은 것을 발견하면 신비함과 고귀함이 무너지고 사랑은 분노로 돌변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사소한 일들에 상처받고 목숨 걸고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랑 때문이다. 배려란 상대가 나와 다른 인간임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마음을 말한다. 상대를 배려하면 우리는 내 안의 공격성이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치닫는 것을 조절한다. 사랑 앞에 배려가 내 마음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응답이 부족하면 마음의 공격성을 더 크게 키워진다. 분노하고 아파하면서 누구에게 하소연도 할 수 없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건가? 나 자신을 곰곰이 한번 돌이켜 볼 시간을 가졌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대학 다닐 때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약간의 고민이 있었지만, 그때 돈으로 나쁜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내 자신의 청결함과 고귀함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 나오는 뿌듯함이 생겨 혼자 흡족하며 웃었다. 성인이 되고 결혼하여 참 청순하고 마음이 깨끗한 아내와 너무 잘 크고 있는 딸과 아들이 나를 너무나 흡족하게 하여 부족함이 너무 없는 것이 오히려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다. 직장생활도 학생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애정 공세에 시달리는(?) 교직을 하고 아직 한 번도 선생님들 간에 불협화음 없이 36년을 지내온 내 품성과 고매한 인격에 스스로 만족하며 웃음을 흘려본다. 내가 남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 말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 해 보았나를 생각해 보니 별로 없다. 자만심이 넘쳐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로 대처하였기에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지 않은 품성 때문이라고 기억한다.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인간관계를 재정립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내 주위에 나와 소통하는 사람은 잠깐 스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얼굴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친구는 최소한 30년 이상 된 사람과 살아가기에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에 힘이 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에서 배신하거나 당한 적은 기억이 없다.      

 ’잘못되면 조상 탓, 잘 되면 내 탓‘이란 속담이 있다. 자기반성 없이 남에게 책임 전가(轉嫁)하는 사람에게 쓰는 속담이다.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나 자신이 보인다.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그리고 남에게 간섭을 절대 하지 않으셨다. 남을 책망도 하지 않으셨다. 너무 좋은 유전자를 받았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성실하시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몸소 실천하셨다. 절제와 소식(小食)도 몸소 실천하셨다. 내가 70% 정도는 받았다. 어머니는 지혜롭고 남의 말 잘 들어주고 남의 말을 옮기지 않았다. 집안일과 동네일에 늘 솔선수범하는 모습이다. 동네 사람들이 칭찬한 내용이다. 남의 말 잘 들어주고 옮기지 않는 유전자는 잘 받았는데 지혜로움은 40% 정도 받았다. 현재의 내 모습이다. 조상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2024. 6.14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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