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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Dec 20. 2023

참살이

 참살이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자신의 알찬 삶을 영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참된 삶이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단정하여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세부 내용은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삶의 형식과 내용이 잘 맞는 삶이 참살이라고 하면 모두가 인정할 수 있으리라 예견된다. 형식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결해야 할 목표 지향점이고 내용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위 덕목이 자아동일성에 근거한 행위 지침이 될 것이다. 삶의 목표는 변증법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고 목표의 끝은 없다. 일단 목표가 설정되면 시대 사항이나 주변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내용은 채워질 것이다. 사람들의 궁극 목표를 ‘행복’이라고 설정하고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로 삶의 내용을 채울 수 있을까?. 목표는 같다 하더라도 구체적 내용을 채우는 방법은 사람마다 생각이 천차만별(千差萬別)이고 실천 방법은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그만큼 다양하기에 인간다움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이 값진 것이다. 구체적 행위를 어떻게 대처하면 마음의 상처를 덜 받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분석해 보자.     

 첫째 베풂의 덕목을 생활해 보자. 나의 노력으로 내 것을 만드는 것은 너무 힘이 든다. 그러나 내가 소유한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려운 일보다는 쉬운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베풂은 내가 소유하는 모두가 해당한다. 물질적인 것을 베푸는 것이 좀 쉽고 마음을 베푸는 것이 좀 더 어렵다. 인간은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이타행(利他行)을 교육받는다. 베풂의 교육이 잘 형성되어야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 공동체 화합의 근거가 된다. 베풂을 위해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형제, 이웃, 친구, 국민 사이 불협화음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베풂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려는 이기적 본성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베풂의 출발을 남에게 베풂으로 출발하지 말고 자기애(自己愛)에서 출발점을 잡아보자. 자기 사랑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신의 신념에 기반하여 원통과 아쉬움이 없도록 하자. 베풂의 끝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남에게 베푼 것을 마음속에 남기지 마라)가 되어야 마음의 티끌이 없어질 것이다.     

 둘째는 사회의 일원으로 공통된 규칙에 순응하면서 적극적인 행위 실천을 하면서 살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고 불자(佛子)는 계율을 따르고 기독교인은 십계명을 수행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법이다. 종교적 규칙이나 율법 또는 공동체의 규칙이 무엇을 적극적으로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절제를 강조하고 행위의 금기(禁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절제된 행위나 금기시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 실수나 큰 불행은 막을 수는 있지만 진정 큰 행복이나 큰 성과나 업적을 이룩하기에는 2% 부족함을 느낀다. 여기서 큰 업적이나 성과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만족의 성과나 업적을 말한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보고 반면교사나 벤치마킹으로는 해결하기 힘이 든다. 세상사가 어려울 것 같고 힘들 것 같아도 내 신념에 찬 행동을 하면 금기가 별로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自反而縮이면 雖天萬人이라도 吾往矣라"(스스로 반성해서 옳으면 비록 수천만 인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증자- 어쩌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철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나의 신념이 바로 서면 적극적으로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 삶의 내용을 채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셋째는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타인의 시선(視線)은 지옥이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남을 많이 의식하면 주체적 행동이 어렵다는 말이다. 동화책에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끌고 가는데 두 사람이 당나귀를 같이 타고 가니 동물 학대고, 둘 다 당나귀를 타지 않고 걸어가니 바보라고 놀리고 아버지가 타고 아들이 걸어가니 자식을 홀대한다고 욕하고 아들이 타고 아버지가 걸어가니 불효자식이라고 야단이다. 어떤 행위를 해도 상대에게 욕을 먹는 내용을 읽고 무척 당황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남의 말에 집중하면 할 수 있는 행동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충고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를 이기는 것이고,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선생님으로 33년을 학생 지도하면서 이 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학생에게 교육이란 미명(美名)으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가장 나쁜 선생님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치욕(恥辱)스럽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않도록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내 능력이 충분히 있으면서도 성실하지 못했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내 못된 습관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였기에, 나의 무지(無知)로 그 능력을 알지 못했을 때 느끼는 치욕이 가장 강한 나의 욕됨을 반성하고 성찰하여 본다.     

 넷째 가까운 근시안적 시각보다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기르도록 노력해 보자. 대부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합적 목표 설정보다는 단편적인 삶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역사를 보면 원시 시대부터 현재 지식융합 사회로 진행하면서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추구했지만, 자연환경이나 지구 전체의 안위를 위해 노력한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지구 온난화 위기가 닥치자,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개인은 더 단편적일지도 모른다. 삶의 종합적 판단에서 행복이 올 수 있는데 대다수가 어느 한쪽에 치우친 목표를 달성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지 몰라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신앙처럼 믿는 것 같다.     

시 한 편으로 이 문제를 대변한다.

우리들의 꿈     

보릿고개 이겨내며

매일매일 빌어보던 소원 하나

배불리 먹고 편하게 사는 것     

소원성취하기 위해

새벽 성근 별 보고 시작하여

별빛 보고 집에 오는 일상들

50년을 한결같이 살았다.     

느린 걸음으로 하산하며

구름이 내려앉은 개울 물에

발 담그고 있노라니

상큼한 바람 내음 싱그럽다.     

햇볕 가려주는 나무 그늘 밑에

여유롭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버들치가 부럽다. 2021.8.23. 憲     

 끝으로 명상과 올바른 판단을 위한 지혜를 키우자.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을 던지면 많은 사람이 대답하기를 명상(冥想)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현대인은 생각할 틈이 없다. 일어나 출근하려고 바쁘게 준비하여 자기 차를 타고 다니면 운전에 집중한다. 출근하면 일에 집중하고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TV나 영상물을 보다가 잠을 잔다. 명상의 근본이 되는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이다. 독서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명상은 자칫 잘못하면 몽상(夢想)으로 치우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말씀이다. 참 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다. 현대인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집착에서 오는 욕심도 있지만, 사물의 본래 양상(樣相)을 외면하고 인간 마음대로 절단하고 조작하여 편리하게 사용하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 과학의 힘이고 인간 승리라는 자만심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사물에 본래 성질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자. 나 자신, 가족, 친구, 친척, 학교, 국가를 욕심내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자. 나름대로 특징과 장점이 보일 것이다. 장점을 잘 보면 지혜가 보일 것이라 믿는다.     

                     2021. 8.25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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