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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Jan 09. 2024

꼭 필요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과 만나 오랫동안 정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영원히 좋은 인연으로 살아갈 것 같아도 금방 원수가 된 사람이 있고 별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신뢰가 쌓여 끊지 못할 인연으로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도 많다. 인구 이동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밉든 곱든 참고 절제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했지만, 산업 사회로 인구 이동이 많아지면서 인간관계 관리는 또 다른 하나의 숙제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각자의 생활 방식에서 필요에 따라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지만, 좀 품위 있고 고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변에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삶의 방식이 틀리기 때문에 주변 인적 관리는 무척 중요하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인연으로 판단되면 지극정성을 다하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의 모습이다. 각자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간관계 범주를 정해보자.     

 불교 경전인 잠망경에서는 선근인연(善根因緣)으로 태어나면 현생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생의 선업(善業)이 많으면 현세에 좋은 관계로 태어나는데 부모 자식의 인연보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더 오랜 선업(善業)이 필요하다고 한다. 좋은 인연(因緣)으로 만나 좋은 결과(善果)를 얻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다다익선(多多益善)일까? 아니면 소수의 정예부대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좋을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수는 있지만, 인간의 심리적 한계와 능력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이런 한계 때문에 인간관계를 많이 유지하기는 힘이 든다. 물론 정치인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매우 많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실성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는 의심을 한번 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기준으로 꼭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일까를 살펴보자.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 바탕에는 가족이 있다.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개인이라고 서양에서는 말하지만, 유교 사회의 영향을 받은 우리는 가정이 첫 출발점이 된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家和萬事成)고 하지 않던가. 형제, 자매 간의 특징이 부모의 사랑을 더 받으려고 경쟁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협동한다. 그래서 좋을 때도 있고 갈등을 일으킬 때도 있지만 부모와 부부. 형제, 자매 같은 좋은 인간관계는 없을 것이다. 나는 가족을 신뢰하고 사랑한다. 좀 고답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가족의 안전과 평화 행복이고 나 하나가 조금 더 노력하면 가정의 평화와 즐거움이 온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모이면 행복해진다. 가족 다음으로 친인척이 될 것 같아도 현대인에게 친인척은 인간관계의 범주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친인척의 의미는 자꾸 사라져 갈 것이다. 심한 말로 하면 사촌이라도 남과 다를 바가 없는 집들이 많이 보이니까? 집안 행사에서 잠시 보면 끝나는 것이 친인척이라 인간관계에 영향은 그리 미치지 않는다.     

 친구가 매우 중요하다. 친구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소통되는 친구가 두세 명 정도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만나 밥도 먹고,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해도 지겹지 않고, 내가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자랑에 응수해 주고 기뻐하는 친구는 가장 소중한 친구이니 세상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좋은 친구일 것이다. 자주 보지 않아도 보고 싶다고 요청하면 만사를 제쳐 놓고 나올 수 있는 친구, 등산이나 여행을 가자고 요청했을 때 기꺼이 응해주는 친구, 머릿속에 상상만 하여도 푸근한 친구, 마음이 울적할 때 전화하여 수다 떨어줄 친구는 세상에 가장 좋은 벗 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현대는 멀리 떨어져 직접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현대 정보통신 발달에 따른 SNS를 통해 소통되는 경우가 많다. 멀리 있는 사람보다 이웃사촌이 좋다는 말은 정보통신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밴드, 또는 카카오톡을 통해 서로 안부 묻고 수다 떨고 소통하는 것이 기쁨 중의 하나로 등장한 것 같다. 고등학교 동기로 11명이 속한 〖건해(建海〗 밴드가 우리 수다의 요람이다. 때에 따라 19금(禁)도 하지만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신기한 것이 1년에 몇 번 만나도 어색함이 없다. 이것이 평소 소통한 덕분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직장생활이다. 30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친한 친구도 있고 꼴도 보기 싫은 인간도 있다. 그래도 현실에 가장 밀접하게 얽힌 존재이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직장 끝나면 아주 가뿐하게 떠날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5~6명은 소통이 잘 된다. 즐거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된다.     

 객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들이 있다. 고등학교 동문이다. 선배, 동기, 후배로 모여 40년 세대 차를 극복하며 객지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서로 다른 전문직업을 가졌기에 일상적인 도움도 많이 준다. 이권(利權)이 없는 순수 단체이기에 한 달에 한 번 모여 현실에서의 힘든 일을 소주 한잔으로 회포를 푸는 사람이라 30년간 매우 고맙고 필요한 사람임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사람인데 득(得)이 될까? 해(害)가 될까는 보는 사람마다 평가가 달라지는 사람들이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을 마시면 실수도 하고, 술 안 마시는 사람보다는 약점이 많다. 내가 속한 5명이 술친구가 있다. 직장에 같이 다닌 또래 선생님과 사회 친구 1명이 모인 집단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등산한다. 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어 먼 곳의 등산은 불가능하다. 마산 인근 지역이나 경남북에 있는 산에 주로 간다. 등산 시간은 길면 5시간이고 보통은 3시간이면 끝난다. 정상주(頂上酒)도 한잔하지만, 하산주(下山酒)도 잊지 않고 한다. 등산으로 3시간 걸어가면 하산주는 6시간 가까이한다. 남들이 흉을 본다. 아내가 제일 싫어한다. 운동하러 가서 집에 오면 고주망태가 되니 싫어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좋다고 퍼마신다. 이 기간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도 술 마시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2020. 5.20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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