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배수의 진을??
" 장군 새재의 장졸(將卒) 들이 합류했습니다 장군~~~"
부장인 진장군 진수성은 도순변사(都巡邊使) 구좌에게 상황 보고를 하고 있었다.
" 알았느니라!!! 모든 장졸들을 대문산 (大門山 ) 탄금대(彈琴臺)로 집결시키고 전열을 가다 듬는다..."
오합지졸인 군사들을 보고 있는 도순변사 구좌는 심기가 편치 않았다.
북방을 주름잡던 구장군은 후방 군사들의 군기가 형편없음을 목도(目睹)한 터라
근심과 한숨만 나오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근래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 어제 꿈이~~~ 흠~~"
심상치 않은 꿈을 꾼 도순변사 (都巡邊使) 구좌는 며칠 동안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던 한 여인을 되새겨 보았다. 매일 꿈자리를 사납게 한 그 여인...
' 장군님~~~ 장군님은 산으로 가시면 안 되는 운명을 타고나셨습니다... 장군께서는 넓디넓은 광야에서 말을 타고 적을 무찌르는 천하제일의 기장(騎將 기병장군)이십니다... 산세가 험악한 새재는 당치도 않습니다. 꼭 제 말을 귀담아 들어주셔야 됩니다. 이녁이 그렇게 소실(小室)로 받아 줄 것을 간청했건만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가셔서 꿈에서라도 장군님 곁에 있고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꼭 험한 새재는 안됩니다 장군님의 기상을 펼칠 넓은 평원에서 전장을 치르셔야 됩니다. 이번만큼은 소인 (평선) 제 말을 귀담아 들어주셔야 됩니다 장군님~~ 꼭입니다 꼭....'
며칠 동안 계속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여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결국 도순변사 구좌는 원계획인 새재를 버리고 넓은 평야가 있는 달천 (충주)이 흐르는 대문산 탄금대로 모든 병력을 집중시켰다.
오합지졸 (烏合之卒 )인 병사들과 며칠밤 동안 꿈속에 나타난 한번 스쳐 지나간 한 여인(평선)의 울부짖음이 강직한 도순변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여인의 말이 사실인 것인가? 평선 그 여인이 왜? '
도순변사 구좌는 이전 강원도와 충청도를 사이에 둔 풍덕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산중에 날은 어두워지고 길을 잃고 헤매다 멀리 호롱불이 비치는 인가를 발견했다. 하룻밤 신세를 질 요량으로 구좌는 소리를 내었다.
" 주인장 계시오? 안에 계시면 좀 나와 보시지오? "
구좌의 걸걸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삐그덕' 하며 호롱불 비친 한지 여닫이 문이 열리고 있었다.
" 뉘신지요? "
흰 소복을 입은 한 처녀가 빼꼼 문을 열며 칠 척 장신의 구좌를 바라보게 되었다.
" 금일 사냥을 나왔다 그만 날이 어두워져 인가를 찾던 중 호롱불이 비치는 이곳까지 오게 됐소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오늘 하룻밤만 처마 밑에서 잠을 청하게 해 주시지요. 내일 새벽닭이 울면 떠나겠소이다... "
구장군 구좌는 처마밑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유(留)하게 해 주기를 청하였다.
" 하룻밤 묵으시는 것은 어렵지 않으시나... 상중(喪中)이고 오늘 저도 이승의 마지막 밤이 될지 모르므로 객(客)을 모시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
흰 소복의 처녀는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구좌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 어허~~ 그 무슨 말씀이오? 이승의 마지막이 될지 모른단 말이 무엇인지?"
구좌는 궁금한 듯 재차 물어보았다.
" 예.. 지금 윗방에는 저희 집 종인 칠복이 아들 덕만이가 소녀의 식구들과 다른 노비( 奴婢)들도 모두 살해하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녀의 입에서 덕만의 처 (妻 )가 된다 허락을 하면 살려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아 죽을 각오를 하라 엄포를 놓고 사라졌습니다.... 아마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게지요... 으으으으..."
" 그렇소? 그럼 너무 걱정 마시오... 처자..."
구장군 구좌는 칠 척 장신에 멧돼지도 손으로 때려눕힐 정도의 괴력을 지닌 장수로 그깟 종놈을 무서워할 위인이 아니었다.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가 평선(처자)의 집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구장군 구좌는 큼지막한 절구통 뒤로 얼른 몸을 숨기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 오늘까정이여? 내 말 까먹덜 안었지? 으흣~ 으흣~"
비열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손에 낫자루를 들고 덕만은 평선을 향해 '기여 아니여'를 묻고 있었다.
" 내 어찌 짐승만도 못한 네놈에게 몸을 더럽힐 수 있겠느냐? 모든 식솔(食率)의 목숨을 앗아 간 것도 모자라.. 어찌 이녁의 몸까지 더럽히려 드느냐!!! 어서 내 목숨도 가져가거라 이 천벌을 받을 놈!!!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 게냐? 이놈!!! "
평선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크게 덕만을 꾸짖고 있었다.
그때였다. 큼지막한 절구통 뒤에서 비호(飛虎)같이 덕만을 향해 다가서는 구장군 구좌는
맨손으로 덕만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순간 덕만은 "악~~~"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급(急)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벼락 맞아 쪼개진 천년 묵은 은행나무와 같았다... 이쪽(이승.. 이生)에서 저쪽(저승.. 저生)으로 순식간에 넘어가는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찰나의 순간을 목격한 처자 평선은 놀라움과 은인(恩人)에 대한 왠지 모를 사모(思慕 )의 감정이 순간 동(動)하였다. 평선은 구좌를 향해 마음이 녹아들고 있었다.
" 객(客)이 뉘신 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소녀의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 갚을 길이 없사옵니다. 부디 소녀를 소실(小室 )로 거두어 주시옵소서... "
소실로 거두어 달라는 평선은 큰 절로 구좌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었다.
" 내 본디 무장(武將)으로 전장을 누비고 장수로 살아왔지만 내게는 강가 성을 가진 정실(正室) 부인이 있는 몸.. 처자의 마음은 알겠으나 이것은 당치 않는 일 이요... 소장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 바라오..."
자칫 더 머물다간 평선을 소실로 들일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임을 경계하여 구장군 구좌는 그 길로 칠흑 같은 어둠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일각(15분)이 지났을까? 구장군 구좌의 등 뒤에서 갑자기 시뻘건 환한 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뒤를 바라보는 구좌는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장군!!! 어찌 제 청을 거절을 하시는지요? 그렇게 큰 절로 제 모든 것을 바쳤음에도 어찌 이러실 수 있는지요? 이녁은 이제 살아도 살은 몸이 아니니 이승에서 못한 인연 저승에서라도 장군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장군!!! 장군!!! 장군~~~"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 지붕 위에 서있는 처자 평선은 미동(微動 )조차 없이 구장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니 이런!!!"
구장군 구좌는 불이 나게 평선의 집으로 향했지만 이미 서까래와 지붕은 주저앉아 버려 모든 것이 소실되고 있었다. 윗방에는 꺼멓게 그을려진 몇 구의 주검들이 널브러져 주위는 아비규환 ( 阿鼻叫喚 )이 따로 없었다.
" 어찌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
구좌는 형체도 없이 검게 그을린 주검들을 뒤뜰에 모두 묻어주며...
'내 본의 아니게 처자와 처자 식솔들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소... 부디 저승에서는 이런 변(變)이 없기를 바라오...'
구장군 구좌는 본의 아니게 목숨을 잃게 된 평선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 장군!!! 어찌 천하의 요새와도 같은 새재를 버리시고 탄금대(彈琴臺)로 진을 치게 했는지요?"
부장인 진장군 진수성은 그동안 십 년 가까이 모신 도순변사(都巡邊使 ) 구좌에게 실책과도 같은 병법을 쓰고 있는 것에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장이며 나름 지장으로 알고 있던 구장군의 변칙적인 행동에 한탄하여 묻고 있었다.
" 진장군!! 이번 진(陣) 구성은 나만 믿고 따를 것이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지 않겠는가?"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배수진(背水陣)은 왜적을 두려워해 도망가는 장졸들이 너무 많아 고육지책(苦肉之策 )이라 할 것이지만 부장인 진장군은 왜 불리함을 알면서도 새재를 버리고 탄금대 이곳까지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어찌 되었던 나를 따라 주시게.. 진장군..."
자신의 결정을 따라 달라는 도순변사 구장군의 마음도 편치를 않았다. 원 계획은 새재에서 왜군을 맞을 계획이었으나 지속적인 꿈속 여인의 말이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하였다.
'장군~~~ 장군님은 산으로 가시면 안 되는 운명을 타고나셨습니다... 장군께서는 넓디넓은 광야에서 말을 타고 적을 무찌르는 천하제일의 기장(騎將 기병장군)이십니다... 산세가 험악한 새재는 당치도 않습니다. 장군~~ 장군~~~ 장군~~~"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구좌의 마음은 한편으로는 이것이 아닌 데를 외쳤지만 꿈속 여인 평선의 청을 다시 한번 거절할 수 없었다 비록 꿈속에서의 말 일지라도...
" 여가 거가 맞제? 인자는 내 무신일이 있다 캐도 이 짝 달천서는 꼭 도순변사께 전시 상황을 이바구 할 끼라 무신 일이 있다 캐도~~~"
임진년 사월 스무 엿새 호색은 드디어 부산포 박 절제사의 영을 전하고 이 짝 달천 탄금대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 저짝이 맞네? 저짝 저 산만디가 조선군 제일장수 구좌 장군 기시는 곳 아이가?"
대문산 탄금대로 이동하는 호색은 성 앞까지
" 도순변사 장군님요~~ 지는 부산포서 온 최장군이라 캅니더 장꾼께 전시 상황을 말씸 드릴라꼬 이래 찾아왔다 아입니꺼 장군님요!!!!
그때였다 대문산 성 반대편에서 마치 나체와 같이 벌거벗은 한 사람이 성곽을 타고 기어 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상주성에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버린 순변사 김성일이었다.
" 전마는 누꼬 ? 으이~~저 저저 쳐 죽일 **!!! 우찌 저 호랑말코 같은 놈이 여가 어데라꼬 이까지 쳐 기어왔쌓노 ??!! 으잉~~ 니 그기 고대로 있으래이 이 쳐죽일놈!!! 이놈~~~!!!! "
순변사 김성일을 본 순간 최장군 호색은 피가 거꾸로 솟아 분을 삭히지 못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벼락 같은 소리에 순변사 김성일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 아니 저놈이 뉘 앞에서~~ 이놈~~감히 상관인 순변사인 내게 이런 망발이 있나 최장군 이놈~~!!"
벌거 벗은 김성일은 부끄러움도 모른채 아직도 자신이 상관인 순변사 인양 호색을 몰아 붙히고 있었다
" 아이 니 지금 모라캤노?? 니가 무신 상관이고 순변사고?? 니 목심 하나 살끼라꼬 장졸(將卒)들 다 버리삐고 토낀 주제에 뭐 상관?? 순변사?? 에이 이 호랑말코 같은 놈!!! 아가리를 주 째뿔라 으잉~~ !! "
최장군 호색의 공포의 아우성에
벌거벗은 김성일은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얼음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