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제국의 뿌리 5

한 때의 성공에 눈이 멀어 독재와 군사주의를 용인하다

by 꿈많은 미소년

탁월한 독일 정치 과학자인 빌헬름 룁케는 한때 이렇게 썼다.

"1866년 독일은 존속하는 것을 보류했다."



프로이센은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마인 강 북쪽의 모든 독일 국가들을 합병했다. 여기서 한 때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루었던 작센만이 예외였다. 여기에는 하노버, 헤세, 나사우, 프랑크푸르트와 엘베 공국들이 포함되었다. 마인 강 북쪽의 모든 나머지 국가들은 북 독일 연맹에 들어가도록 힘으로 강요되었다.


프로이센은 그 영토가 이제 라인강에서 쾨니히스베르크까지 이르렀고, 자신의 영토를 완전하게 지배했다. 그리고 오 년 내로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가 패배하여 남부 독일 국가들도 주목할만한 바이에른 왕국을 필두로 하여 프로이센의 독일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었다.



비스마르크의 더 없는 최고의 성취인 제 2제국의 창설은 1871년 1월 18일에 있었다. 이 때 프로이센의 왕인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의 황제로 선언되었다.

독일은 프로이센의 군대로 통합되었다. 이 군대는 이제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다. 유럽에서 프로이센의 이 군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라이벌은 이제 영국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트라이취케가 말했듯이 독일 제국은 현실적으로는 프로이센의 확대에 불과했다. 트라이취케가 강조했다.

"프로이센은 지배적인 요인이다. 제국의 의지는 프로이센 국가의 의지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독일인들 그들 자신들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었다. 1871년에서 1933년 사이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의 몰락이 있을 1945년 까지 결과로서의 독일 역사의 과정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라고 하는 중간 시기를 예외로 하면, 모두 완전한 논리를 가지고 직선으로 진행될 것이었다.



라이히스타그의 설립으로 세워진 민주적인 허울에도 불구하고, 이 국회의원들은 남성들에게 부여된 보편적인 투표권에 의해 선출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독일 제국은 현실적으로 프로이센의 왕, 또한 독일 제국의 황제인 군주에 의해 통치되는 군사주의 귀족정이었다. 라이히스타그에게는 거의 권력이 없었다.


자신이 대표하는 계급의 조잡한 이익을 위해서 흥분하거나 정치 거래를 하도록 허용된 국민들의 대표자들이 토론을 하는 모임보다 하등 더 나을 것이 없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권력 기관과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멀었다. 왕좌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 신성한 권리에 의해서.


1910년이 되자 빌헬름 2세는 왕관이라고 하는 것은

"신의 은총만으로 보장된 것이지 의회에 의해서가 아니며 구성국 대표자 회의나 대중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을 신의 도구로서 고려하는 바이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통치할 것이다."


빌헬름 2세는 의회에 의해서 방해를 받지 않았다. 왕이자 황제인 그가 지명한 국가 재상은 군주에게 책임을 졌지만, 라이히스타그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의회는 국가 재상을 파면하거나 반대로 직위에 유임시킬 권한이 없었다.


그것은 군주의 특별한 권리였다. 그래서 서방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의 발전과 대조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사상, 즉 민중의 통치 권력, 의회의 수위권등은 독일에서는 결코 발을 붙이지 못했고, 심지어 이 점은 이십 세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하자면 비스마르크와 황제에 의해 수년 간 박해를 받은 후 사회민주당은 1912년 라이히스타그에서 가장 큰 단일 정당이 되었다.

사회민주당은 의회 민주주의의 설립을 소리 높여 요구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비록 가장 큰 정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당은 여전히 소수파였던 것이다.



중간 계급은 비스마르크가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전쟁을 감행하는 정책이 성공한 것에 눈이 부시게 황홀해 했고 뒤늦었기는 했지만 믿기 어려운 산업 혁명의 발달에 크게 번영을 누리면서 그들이 이전에 가졌었을 수도 있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어떠한 열망도 물질적인 이익과 교환해 버렸던 것이다.

이들은 호엔촐레른 가의 귀족정을 수용했다. 중간 계급은 융커의 관료제를 기쁘게 받아들였고 프로이센의 군사주의를 열렬하게 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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