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게 반격이 가해지려 준비되고 있었다
운좋게도 이렇게 상황의 돌파구가 만들어지고 기대했던 바대로 해결이 되어지자 너무 기뻐서, 히틀러는 그들을 연단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각자 짧은 연설을 한 다음 서로에게 그리고 새 정권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 때마다 듣고 있던 군중은 열정적으로 화답했고 기뻐서 어절 줄을 모르는 환호를 외쳐댔다. 히틀러는 기쁨으로 활짝 웃었다.
"히틀러는 내가 결코 잊지 못할 천진난만하고 솔직한 기쁨의 표현을 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탁월한 역사가가 나중에 밝혔던 얘기이다.
연단에 올라가서, 히틀러는 듣고 있는 청중들에게 그날의 마지막 연설을 했다.
나는 내가 눈에 부상을 입어 앞이 보이지 않는 부상병으로 군 병원에 있었던 5년 전에 나 자신에게 했던 맹세를 이제 지키기를 원한다. 11월의 범죄자들을 거꾸러 뜨릴 때까지 휴식이나 평화를 알 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지독하게 불쌍한 독일의 폐허들 위에서 다시 한 번 더 독일의 위대함과 강력함이 되살아날 것이다. 독일의 자유와 번영이 다시금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이 모임은 이제 끝이 나기 시작했다. 출구에서 돌격대의 도움을 받아서 헤스는 많은 수의 바이에른 내각의 각료들과 군중들 속에서 빠져나가려던 다른 많은 유명 인사들을 구금했다. 히틀러 자신은 카르, 로소브 그리고 자이서에게서 눈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무장 단체들 중 하나인 분트 오베르란트의 돌격대원들과 육군 공병대 병영의 정규군 군인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히틀러는 그 곳으로 헤쳐나가서 직접 문제를 수습하기로 했다. 그래서 맥주홀은 루덴도르프에게 처리를 맡기고 이동했다.
바로 이것이 치명적인 오류가 되었다는 것이 나중에 판명되었다. 로소브가 가장 먼저 빠져 나갔다. 로소브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육군 본부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서둘러 가야만 한다고 루덴도르프에게 통지했다. 쇼이브너-리히터가 반대했을 때, 루덴도르프는 딱딱하게 대꾸했다.
"나로서는 자네가 독일 장교의 말을 거부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내게 말하는 것은 금지한다."
카르와 자이서 역시 사라졌다.
히틀러는 사기가 잔뜩 고양된 채로 부에르거브로이에 돌아와서 새들이 이미 우리를 떠나서 날아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그날 저녁에 있었던 첫 번째의 충격이었고 히틀러는 망연자신할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자신 있게 자신의 "장관들"이 루덴도르프와 로소브가 베를린으로의 진군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동안 자신들의 새로운 과업을 하느라 바쁘게 보낼 것을 알게 될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뮌헨 자체도 혁명군에 의해 점령되어지고 있지 않았다.
또 다른 무장 단체인 라이히스크릭스플라게로부터 돌격대를 배속받아 그 수장으로서 룀은 쇤펠트슈트라세의 전쟁부에 있는 육군 본부를 점거했지만 그 외의 다른 전략적 중심지들은 점령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전화국도 점령되지 않아서 바로 이곳의 전신망을 통해 쿠데타의 소식이 베를린으로 전달되었고, 명령이 내려왔다. 베를린의 폰 젝크트 장순은 바이에른의 육군에게 그 폭동을 진압할 것을 명령했다.
비록 하급 장교들과 몇몇 부대들의 변절이 있기는 했다. 이들은 히틀러와 룀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뮌헨 주둔군의 사령관인 폰 다너 장군이 이끄는 고위 장교들은 젝크트의 명령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폰 로소브 장군에게 가해진 취급에 대해서 쓰라리게 분노하고 있었다.
육군의 규율에 따른다면, 리볼버를 장군에게 겨눈 민간인은 장교에게 양팔을 붙들려 채찍으로 세게 맞는 형벌에 처해져야 마땅했다.
제 19 보병 연대의 병영에서 로소브는 다너와 합류했고, 도시로 지원군을 서둘러 보내도록 외딴 병영들로 급히 전령을 파견했다. 새벽녘에 정규 육군의 부대들은 전쟁부의 룀의 군사력을 둘러싸고 저지선을 구축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히틀러와 루덴도르프는 전쟁부에서 상황을 찬찬히 살펴보기 위해서 잠시동안 룀과 합류했다. 장교였던 룀은 자신 외에는 누구도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핵심적인 요충지들을 점령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