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생각을 알려면 마인 캄프 - 나의 투쟁을 읽어야 한다.
마인 캄프 한 부를 산 모든 독일인이 그것을 반드시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나치의 충직한 일꾼이 불평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불평이었다. 나의 투쟁은 글이 난해하고 난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많은 수가 인정했는데 - 사적으로 인정했다. -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던 이들이 결코 이 복잡하고 따분한 책의 마지막에 있는 782페이지지까지 도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점은 여기서 주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데, 더 많은 반나치주의인 독일인들이 이 책을 1933년이 되기 전에 읽고 세상의 더 많은 외국의 정치인들이 책을 주의 깊게 숙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여전히 시간이 있었던 동안, 독일과 전 세계는 나중에 역사에 닥친 그 대재앙에서 구원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히틀러에 대해서 다른 어떤 비난도 가해질 수 있지만, 그 누구도 히틀러가 정확히 자신이 만들고자 의도하는 독일이 어떤 종류의 독일인지의 글에서 자신이 직접 필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히틀러가 권좌에 올라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무장한 독일인들이 정복하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이 창조하고자 의도한 종류의 세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 3제국, 게다가, 1939년과 1945년 사이의 기간 동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히틀러가 정복된 유럽에 부과한 야만적인 신질서의 모습은 모두 여기에 이미 그 설계도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나의 투쟁에 담겨 있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형편 없이 상스럽고 조잡한 생각들이 엄청난 길이로 자세하게 이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내는 책의 각 장들 사이에 서술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 왔던 대로 히틀러의 기본적인 생각들은 비엔나에서 자신의 이십 대 초반을 보내던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한 자신의 말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히틀러가 그 이후의 시기에 더 배우거나 깨달은 것이 거의 없고 자신의 생각 속에서 바꾼 것은 전혀 없었다.
스물 넷의 나이로 1913년에 오스트리아를 떠나 비엔나로 향했을 때, 히틀러는 독일 국가주의에 대한 불타는 열정에 가득차 있었다. 반면에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유태인들에 대한 증오심 또한 가득했고, 신의 섭리는 아리아인들을 선택했고, 특히 독일인들이 지배 인종이 되도록 선택되어졌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관점을 확장하고 특히 현재의 독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했다. 즉 패배하고 혼돈한 독일을 예전 그 어느 때 보다 위대하게 태양 아래에 반석과도 같이 자신의 자리에 위치하도록 회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즉 인종에 기반한 국가로서 제국의 변경들 밖에 살고 있는 독일인들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고, 그 안에서 지도자 - 히틀러 자기 자신이었다 - 의 절대적인 독재 권력이 수립된 국가 체제였다. 이 국가는 각 위계 별로 더 작은 지도자들이 존재하며 그들이 자신의 상급 지도자에게 명령을 받아서 자신의 하위의 지도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었다. 그래서 히틀러의 이 책은 먼저 미래의 독일 국가의 개요와 책의 저자인 히틀러 자기 자신이 바로 그 마지막 페이지에 써 두었듯이 어느 날 "이 지상의 군주" 가 될 수 있는 수단들의 대략적인 개요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히틀러의 관점, 삶의 개념 혹은 히틀러가 가장 좋하했던 독일어 단어를 사용하면 벨탄샤우웅 이었다. 이런 삶의 관점은 20세기를 살아가는 정상인의 생각에 충격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절반만 성숙하고, 교육받지 못한 신경증 환자가 말도 하지 않고 행동을 취한 것에 정상인은 어쩔 줄을 몰라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수 백만 명이나 되는 독일인들이 그렇게나 광신적으로 이 생각을 포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이끄는 대로, 그것이 했던 바대로 자신들의 궁극적인 파멸로 치달았으며, 독일의 안과 특히 독일 바깥에 있던 수 백만 명의 무고하고 순수하며 사려 깊고 품위 있는 사람들을 또한 파멸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