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정신 세계 5

민족의 지도자는 경제 같은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by 꿈많은 미소년

히틀러의 책 속에는 경제학에 대한 얘기는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히틀러는 그런 종류의 주제에 관해서는 재미 없어했고, 결코 "이자 노예제도"에 반대한다는 괴짜인 고트프리트 페더의 별난 생각을 만지작거리며 곱씹어보는 것 이상의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귀찮아했다. 따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내용만 알려고 했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으로 방해를 받으려 드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이 시기 히틀러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내용은 정치 권력이었다. 경제는 어떻게든 스스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었다.



국가는 어떤 종류의 명확한 경제 개념이나 발전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국가는 인정적인 유기체이지 경제 조직이 아닌 것이다. 국가의 내적인 힘은 소위 경제적 번영이라고 하는 것과는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에 이 경제적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가 쇠퇴기에 다가가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프로이센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이상적인 덕목들이 국가의 형성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놀라운 통찰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보로 아래에서만 경제적인 삶이 번영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정치 권력이 고조되었을 때, 경제적 상황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가 이상적인 덕목들을 억누르면서 우리 민족의 삶에서 유일한 내용이 되었을 때는 국가는 붕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제적인 삶도 또한 그것을 따랐던 것이다. 평화적인 경제적 수단에 의해 건설된 국가는 결코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가 1923년 뮌헨에서의 연설에서 말을 한 것처럼, "칼이 없이는 경제 정책은 불가능하고, 권력이 없이는 산업화가 불가능하다." 는 것이었다. 이 모호하고 조잡한 철학 이상으로 나의 투쟁에는 다음의 것들이 대충 언급되어 있다.



"경제 부서들", "부동산 부서들", 그리고 "중앙 경제 의회" 라는 게 나오는 데 이것은 "국가의 경제가 계속 기능하게 할 것"이었다. 히틀러는 제 3제국의 경제 기초에 관한 의견에 관해서는 어떤 표현도 삼갔다.


그리고 나치 당의 바로 그 이름을 "사회주의자" 로서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신 독일의 건설을 위해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사회주의"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관해서는 훨씬 더 모호한 상태를 유지했다. 이것은 히틀러가 1922년 7월 28일에 한 연설에서의 "사회주의자"의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국가의 복지보다 더 이상적인 점을 알지 않는 정도로 자신의 이상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지 국가적인 대의에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구든지 우리의 위대한 국가 "모두의 위에 있는 독일"을 이해한 자라면, 자신의 눈 속에서 넓은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 독일, 민족과 국토를 억압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자라면 - 바로 그런 남자가 사회주의자인 것이다.



상당한 분량의 편집자의 조언과 심지어 최소 세 명의 직원이 가지치기 작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히틀러가 나의 투쟁 속에서 한 가지 주제를 진득하게 다루지 못하고 곧장 또 다른 얘기를 하면서 두서 없이 진행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루돌프 헤스가 초기에는 란츠베르크의 감옥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베르히테스가덴 근처의 바헨펠트 하우스에서 이 받아쓰기의 대부분을 수행했다.

헤스는 나름 이 필사본 원고를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헤스는 지도자에게 맞서서 일을 할 만한 남자는 아니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바이에른에서 상당한 악평을 받던 반 유태주의 언론인이면서 히에로니무스 수도회의 전 회원이었던 베른하르트 슈템플레 신부는 더 성공적이었다. 이 기묘한 성직자는 이 부분의 역사에서 더 자주 언급이 되어지는 인물로서 히틀러의 틀린 문법 사항들을 수정했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정리했다.

즉 어떤 문단은 아예 바로 잡고, 히틀러 본인을 설득해서 정치적으로 불쾌하게 될 우려가 있는 몇 개의 본문은 아예 줄을 그어 지워버렸다.


세 번째의 조언자는 체코 출신의 요제프 체르니였다. 당시 나치의 당 기관지인 포엘키셔 베로바흐터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쓴 반 유태주의 시들 한 묶음이 히틀러의 마음에 들어 애정을 받게 되었다. 체르니는 나의 투쟁의 1권을 두 번 째 출판을 하기 위해서 수정하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체르니의 노력으로 몇몇 개의 난감할 만큼 어색한 단어들과 문장들이 아예 제거되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체르니는 2권의 교정 결과를 주의 깊게 거듭 살피고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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