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단쓰 74] 드디어 백록담을 직관하다

by 리단쓰

ㅡ2023.11.7 ㅡ

성산에서 한라산 성판악 입구부터 시작하는 등반을 시작하는 날이 드디어 밝아왔다.

한라산 등반 예약 2번의 기회중 마지막 남은 기회이기에 날씨가 중요해졌다.

계속 한라산 관리소 홈피를 살펴보지만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백록담을 만나려면 한라산은 두 가지 코스로 진입이 가능하였다.

초보자에게 권하는 코스대로 성판악 입구로 올라가서 백록담을 만나고 관음사 코스로 하산하는 방법으로 정해두었다.

새벽에 문자가 왔으니 역시 백록담 알현은 허락되지 않는 기상 악화로 그나마 중간 휴식 지점인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입산이 허용된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여행 일정은 오직 한라산 등반으로 초점을 맞춰둔 상태였고 힘들게 예약도 두 번이나 잡아둔 것이니 일단 한라산 정기는 받아보자고 정해서 등반 준비를 하고 성산 숙소를 체크아웃하였다.

여유 있게 성판악 입구에 도착했고 다른 때는 주차장이 만석일 시간이지만 다행히 주차 자리도 있었다.

우리의 코스는 진달래 대피소에 가서 아침을 먹고 되돌아 나오며 한라산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이쁜 호수를 품은 사라 오름이라는 곳을 찍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정해두었다.

긴 등반은 아닐 것 같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시작한 발걸음은 역시 한라산의 정기로 뿌듯해졌다.

새벽 등반보다 여유 있는 출발이다 보니 여명으로 랜턴도 필요 없었고 가볍게 돌밭 무더기인 성판악에 발바닥의 느낌은 너무 뿌듯해졌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전날 쟁여둔 빵과 과일 커피로 요기를 하고 배낭을 매고 나니 여기저기 문자 알림이 울리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날씨가 호전되어서 백록담 등반을 허용한다는 문자였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빛을 나누며 잠시 갈등하다가 그래도 가보는 것으로 정했다.

전날 비바람이 심해서 등산길은 정돈이 되었지만 엄청 춥다는 정보가 들렸고 이른 새벽 이미 올라간 사람들은 다시 되돌아오며 너무 추워서 포기하는 경우가 생겼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 옷도 완전 무장을 했고 배낭에 첫날 사둔 군용 비상식량과 과일 사탕등 먹거리도 충분했다.

마음의 준비만 단단히 하고 두려운 마음을 안고 출발하였다.

백록담에 이르는 동안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 들었지만 남편이 내 속도로 맞추며 힘들면 하산하는 쪽으로 이야기해 주니 이상하게 그 말이 위로와 여유를 주었다.

해발 표지석마다 인증숏을 찍는다는 이유로 잠시 쉬어가는 포인트가 너무 고마운 타이밍이 되었다.

백록담에 거의 멘털이 털린 표정으로 도착했고 인증표지석의 사진 찍으려는 줄을 보고 기가 막혔다.

그나마 중간 해제로 미리 포기한 사람들이 많아서 대기 시간은 30분여 된다니 놀랄 뿐이었다.

힘들게 등반하고 대기줄까지 참 강인한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이 줄 서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바닥에 앉은 채 탈진된 상태로 추운 바람 속에 손가락도 굽고 모자까지 푹 뒤집어쓰고 무릎에 코를 박고는 멍타임을 보냈다.

어찌 저찌 남들이 하는 대로 표지석에서 독시진도 찍고 커플 사진도 찍어서 인증서 신청을 위한 사진 전송까지 하니 시간이 빠듯해서 하산을 종용하는 방송까지 나왔다.

하산!

계단 지옥이라는 관음사 코스로 내려갈 생각에 꾸역꾸역 라면밥을 만들어먹고 일어섰다.

백록담을 다시 돌아다보니 뒤늦게 감동과 함께 성취감으로 뿌듯해졌다.

더구나 전날의 폭우 끝 영하의 기온이 휘감은 상태로 만들어낸 생애 첫 상고대의 직관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하산 내내 묵언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등산화만 내려다보면서 끝날 것 같지 않은 길고 긴 산길 속에 나를 내려두는 시간은 결국 큰 마음의 형체를 남겨주었다.

드디어 한라산 등반 인증서를 받아 들고 10시간 동안의 등반을 마무리하였다.

걸음수는 4만보를 넘긴 하루였다.

결론은 10시간 버티고 4만보 가능하다면 한라산은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라산의 정기와 교류를 나누던 10시간이라는 무게감은 나에게 분명 좋은 근거와 자양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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