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2024.11.4.월 ㅡ
우리들의 약속은 어느덧 2회 차의 미션으로 다가왔다.
일 년에 한 번은 꼭 한라산 등반을 해서 백록담 인증숏을 남기자고 정하였고 기준점은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이 있는 11월로 정한 것이었다.
한라산 등반은 날씨가 최대 변수로 작용하기에 제주도를 방문할 일정 중 한라산 등반 예약은 두어 번 잡아두어야 미션 클리어가 가능해진다.
엄청난 강수량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이상 기변으로 11월인데도 장마철 같은 강수량으로 첫 번째 등반 예약은 날아갔다.
다행히 두 번째 예약일의 날씨는 쾌청은 아니어도 등반 가능으로 허용되었다.
아무리 날씨가 맑아도 백록담의 구름 형성은 알 수 없으니 일단 출발이 답이었다.
통제가 아니라니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등반을 시작하였다.
출발 직전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23분이고 11월의 새벽은 무척 깜깜해서 미니 랜턴으로 우리들 발길을 비추는 산행을 시작하였다.
1시간 정도 걷다 보니 하늘가에 샛별이 너무 이쁘게 떠오르고 여명이 움터오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반짝이는 별이 샛별이라는 말이 떠올라서 뭉클해졌다.
이제 1차 목적지인 삼각봉 대피소까지는 묵언수행의 마음으로 내 발끝에 집중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중간중간 포토존이라 여기고 사진을 찍는 순간이 휴식을 하는 타이밍이기에 잘 활용하며 체력을 안배했다.
작년의 한라산 등반은 반대편 성판악 입구로 오르고 관음사 입구로 하산을 했지만 올해의 한라산 등반은 관음사로 오르고 백록담 인증 후 다시 같은 코스로 하산하는 일정이었다.
계단 지옥을 알고 있기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하였다.
등반 전부터 왼쪽 무릎이 말썽이었는데 제주에 있는 며칠 동안 비가 내리는 습한 날씨이다 보니 눅눅한 무거움이 왼쪽 무릎에 남아있는 채로 등반을 시작하였다.
남편은 나의 무릎 상태가 걱정되어서 언제든 되돌아서 가자고 다짐을 하였다.
나 역시 자신이 없었기에 수긍을 하면서 그런 상황이 되어도 단독 등반을 꼭 성공하라고 정해두었다.
힘든데도 오르기로 한건 이미 기정사실이었고 견뎌내는 건 각자의 몫이 역시 등산은 인생과 닮아있었다.
멋진 용진각 출렁다리에서 감동샷도 남기고 원점비 앞에서 아까운 청춘들의 영혼도 기리며 열심히 오르고 또 올랐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무조건 등산화를 벗어두고 발가락 양말도 뽐내며 무릎을 살피며 영양보충을 든든하게 해 두었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백록담은 만나게 되었다.
백록담 오르기 직전까지 맑았던 날씨는 왕관릉 즈음에서 떼구름을 일으키더니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너무 멋진 풍광을 감상하고 있자니 이미 백록담을 찍고 내려오시는 분들이 지금 광경 실컷 보구 사진 찍어 두라고 일러주며 백록담은 짙은 구름 속 곰탕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고생 끝에 오르고 나니 역시 뿌연 구름 속 형체도 없는 정상인데 백록담 표지석은 여전히 인증숏 대기줄이 엄청 길었다.
남편과 나는 작년에 찍었으니 이번에는 표지석 대신 바로 앞 나무 표지 앞에서 인증숏을 남기고 하산하였다.
등산보다 어려운 하산은 시작되었고 하중을 못 이긴 무릎은 말썽을 일으키니 닿을 때마다 습기가 절걱 거리듯 욱신거렸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제법 굵게 내리니 다시 우비로 장착 후 미끄러운 돌들을 딛고 두배로 힘든 하산길을 묵묵하게 내려왔다.
나는 이미 던져진 주사위처럼 무엇이든 좌표를 찍어야 했고 그 몫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었다.
하산길 힘겨움속에 묘한 꽤감을 챙겨보려 버티는 마음속 깊은 곳은 바로 오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무조건 전진이었다.
내려가야 산속을 벗어날 테고 물에 젖은 등산화도 벗어던지고 휴식할 수 있는 것만 집중했다.
빗물에 젖은 돌길을 내려가며 여기저기 탄식도 들리고 넘어지는 소리도 들리지만 난 가장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만 챙긴다는 각오로 버틴 시간이었다.
한라산은 진득하게 붙어 있으면 사람을 내치지는 않는다는 진실을 작년에 한번 겪어낸 터라 굳은 믿음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처음 시작점인 입구에서 출발했던 시각에서 드디어 11시간 만에 무사히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후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등반 인증서 발급 센터에서 드디어 2회 차 등반 인증서를 뽑아서 챙겨 들고 제주 시내 숙소로 향했다.
이번 등반 후는 제주 시내에서 1박을 하면서 든든하게 흑돼지라도 챙겨 먹고 지친 몸을 휴식하자고 일정을 잡았으니 한결 여유롭게 마무리된 한라산 등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