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작 읽기
제목은 동화 느낌 나는 '기차의 꿈'이라는 소설을 만나고 영화까지 보았다. 동화 같은 몽글거림은 없지만 뭉클함이 남은 독서였다.
작가 데니스 존슨은 1949년 ~2017년의 생애주기로 현대 미국 문학에서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는 설명이 남아있다. 다양한 권위 있는 문학상도 수상하며 묵직한 작품활동을 해낸 작가로 알려졌다. 특히 '예수의 아들' 등의 단편집으로 잘 알려졌다고 해서 바로 대출예약을 해두고 이어지는 독서를 기대 중이다.
데니스 존슨은 "더티 리얼리즘"의 정수로 평가받았다고 하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기차의 꿈' 전반에 흐르는 주제와 너무도 부합되어서 잘 이해되었다. 더티 리얼리즘(Dirty Realism)은 1970~80년대 미국 문학에서 등장한 중요한 사조로, 화려한 수사나 낭만주의를 걷어내고 삶의 가장 밑바닥, 지저분하고 평범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문체적 특징을 말한다니 너무 적절한 설명에 각인시켜 두었다. 바로
데니스 존슨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일 것이다. 기차의 꿈 발표 시기가 2002년 중편으로 발표, 2011년 단행본 출간되었다니 사조의 줄기로 이해할 수 있겠다.
'기차의 꿈' 소설 역시 화려한 영웅의 연대기가 아니고 평생 육체노동을 하며 가족을 잃고 홀로 늙어가는 노인의 하층민의 삶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더티 리얼리즘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인다.
원작에서 주인공 로버트 그레니어는 주변인 같은 소심한 노동자로 살다가 글래디스와 사랑을 하고 산골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며 경제적인 부분은 버거운 벌목현장과 철로 교량작업을 하는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살아낸다.
어쩜 그런 삶의 궤적들이 소설 제목처럼 기차와의 연관성을 뗄 수 없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레니어가 만나는 갖가지 노동자들이 묘사되는데 이상스레 그들의 삶 조각조각이 안쓰럽고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삶이었다. 열심히 온몸의 사력을 다하며 문명의 발전을 위해 애쓰지만 그들은 문명의 혜택에서는 한발자욱 밀려나는 밑바닥 삶을 전전긍긍하는 묘사들이 자꾸 마음에 닿았다. 어쩜 그 당시 문학적 사조가 그런 시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니 많이 수긍되고 흥미로워졌다. 각각의 사연으로 떠밀려온 노동자들의 삶이 측은했는데 특히 중국인 노동자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비겁한 방관자가 된 그레니어는 죽을 때까지 무거운 죄책감과 그림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다. 행복한 가족들과의 시간은 너무도 짧아서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아내 글래디스와 딸 케이트를 잃은 사건은 그의 긴 생애 중 하나의 거대한 비극이지만, 소설은 이를 담담하게 서술해져서 더 먹먹하기도 하였다. 특히 소설에서는 딸 케이트는 사고 당시 생후 4개월의 아주 어린 아기였는데 영화에서는 상실의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딸의 나이를 약 2살 정도로 설정하여 아빠와 교감하는 장면을 늘렸는데 회상씬에서 로버트 그레니어의 고통과 슬픔이 극대화되어서 마음이 아팠다.
원작 소설이든 영화이든 주인공 로버트의 삶은 너무 외롭고 처연해서 먹먹해지는 장면이 많이 느껴졌는데 책이나 영화 모두 높은 평점을 주게 되었다.
무심한 듯 서술되는 글귀마다 내 삶에서 연결되는 실타래도 엉겨있고 납득되며 위안도 되고 괜스레 견디는 게 삶이라는 숙연한 명제를 혼자 되뇌기도 했던 독서였다.
특히 영화에서 소중한 보금자리가 화마로 폐허가 되었고 아내와 딸도 죽었지만 묵묵히 떠나지 않고 그 땅을 지키는 뚝심과 순응이 공존하는 느낌이 감동적이었다. 그 부분의 장면에서 문득 나의 내면의 한켠이 그곳 모닥불 앞 그레니어 앞자리에 있는 듯 몰입되는 외로움이 왠지 평안해지는 마음도 있어서 좋기도 하였다.
원작 소설이 거칠고 칙칙한 표현들이 전달되었다면 영화는 많이 순화되고 색채감도 느껴지고 따스해지는 표현기법이 느껴졌다.
특히 주변 인물과 서브플롯의 배치가 흥미롭게 느껴졌으니 코우트니 밥이라는 소설 속 인물은 원작에서는 그레이니어의 이웃이자 기행을 일삼는 원주민 캐릭터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이그나티우스 잭'이라는 이름의 친절한 상점 주인으로 바뀌어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을 하며 슬픔을 나누는 인물이 되었다.
클레어 톰슨은 원작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미망인이었으나, 영화에서는 산불 감시탑에서 근무하는 여성으로 설정이 바뀌고 엄청 지적이고 멋진 캐릭터로 그려졌다.
기차의 꿈을 읽으며 인생의 대서사를 느끼며 이해하는 순간들을 담아보는 시간이 좋았고 근대 문명에서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양새는 크게 다르지 않고 외롭고 아프고 혼자 겪어야 하는 사명감에 대해서 되새겨보았다.
결국 우리들 삶이 죽음을 향해 달리는 항해라면 고요하고 평온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생각하기도 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