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전작 읽기- 3월] 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by 리단쓰

3월의 한강 작가 소설은 < 희랍어 시간 >이라는 온통 시적으로 적힌 소설이었다.

주변에 희랍어 시간의 구절이 너무 좋아서 필사를 하고 있다는 지인들을 보면서 그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장면마다 묘사가 시적으로 느껴지는 간결미와 함축미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희랍어를 가르치는 그와 희랍어를 배우러 온 그녀의 움트는 사랑이야기가 주제라고 할 수 있을까?

희랍어 시간은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시공간을 모두 담고 있는 의미 있는 단어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어떻게 표현했든 희랍어 시간 소설 속 그와 그녀는 분명 사랑을 시작하는 게 맞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입니다'라고 책 뒷면의 규정이 크게 와닿았다.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라는 말이 희랍어 시간 소설의 전부를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리고 한강 작가의 소설에 자주 나오는 '박새'라는 매개체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약하디 약해 보이고 작은 새인 박새를 약체인 주인공과 연결시키는 매체로 설정해 두는 의미가 무엇일까?

여러 번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요소였다.

박새를 보게 되고 쫓아내다가 다치는 그와 아무 말 없이 도와주는 그녀의 배려가 사랑으로 나아가는 물꼬가 되는 것으로 보였다.

소설 속 그와 그녀는 자신의 상실되어 가는 무언가를 극복해 나가는 탈출구로서 정한 것이 희랍어였고 그것을 매개체로 서로를 알게 되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당신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연인이었을까요? 당신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지 않았으나 내가 어리석었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사랑까지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 걸까요? p 44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p51


오래전에 끓어올랐던 증오는 끓어오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있고, 오래전에 부풀어 올랐던 고통은 부풀어 오른 채 더 이상 수포가 터지지 않았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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