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현실적으로 버겁디 버거운 '소년이 온다'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해 두고 떠난 추운 나라의 시간은 너무도 이해되는 선택이라는 생각에 흰 은 그곳에서 써내려 갔다는 것에 설득력이 가득이었다.
이국 땅 스산한 곳에서 오롯이 책임져야 할 14살짜리 아들과 머물며 학살의 증언 '소년이 온다' 작품도 자꾸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보냈으리라!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의 슬픔과 아픔을 아우르며 써 내려간 글들로 탄생시킨 '흰' 작품은 그만큼 깊게 다가온다.
소설인 듯 시 같은 느낌의 형식이라 술술 넘어가지는 않지만 한강 작가의 문체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깊은 이해는 못해도 다음 기회에 다시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한글을 알고 있으니 진도를 빼자는 마음으로 완독 하였다.
너무도 많은 울림을 주고 어쩜 그리 가슴 시리게 만드는 문장들을 펼쳐두는지 감탄스럽기도 하였다.
그중에서 내 일기장 한편의 숨겨둔 비밀의 장 같은 저력을 남겨주는 한 편의 글은 전체를 발췌하게 만드는 힘으로 기억해야겠다 싶어서 길게 기억해 둔다.
한강 작가의 은유적 표현 속 일침을 얻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게 많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역시 쐐기를 박아두는 문장들은 울렁거리는 소회를 남겨둔다.
나의 흰돌은 잘 영근 채 언제고 할 말을 할 수 있게 침묵의 미학을 지키고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게 되었다.
흰 돌
오래전 그녀는 바닷가에서 흰 조약돌을 주웠다. 모래를 털어낸 뒤 바지 호주머니에 넣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서랍에 넣어두었다. 파도에 닳아 동그랗고 매끄러운 돌이었다. 속이 들여다보일 듯 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하지는 않았다. (실은 평범한 하얀 돌이었다.) 가끔 그녀는 그것을 꺼내 손바닥 위에 얹어보았다. 침묵을 가장 작고 단단한 사물로 응축시킬 수 있다면 그런 감촉일 거라고 생각했다. p87
흰 뼈
인간이 살과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p88
경계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넘어오고 있는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p103
흰 것에 대한 단상을 연상시키며 죽음의 기색과 삶의 희망의 연결고리를 느껴가며 읽었다.
기본적인 죽음의 탐색이 기저에 깔린 한강 작가의 정서가 진하게 전달되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삶 속에서 어떤 체험들이 작용하였기에 이토록 시린 글들을 써내려 가는지 궁금한 독자가 되어서 집중하는 독서였다.